리뷰

카시모프
2023.01.18
전쟁이란 무엇인가
2차 대전이 끝나고 80년이 다 되어간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3차 대전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고, 핵무기 등 예전보다 훨씬 발전된 무기들 덕분에 3차 대전이 일어난다면 인류가 멸망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비록 근 몇십 년 동안 세계적으로 큰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다. 일본은 극우가 재집권하고 아베가 저격당하면서, 평화헌법을 개정해 전쟁이 가능한 나라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더 드러나고 있다. 중국은 대만을 공격한다고 위협을 하고 있다. 북한은 여전히 미국에 큰소리치고 있다. 세계는 점점 전쟁을 준비하는 듯 하다. 러시아, 중국, 북한, 일본 사이에 낀 대한민국은 정말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 누구나 한 번쯤 제목은 들어봤을 일본 명작 애니메이션 <아키라>를 만든 오토모 카츠히로 감독은, 굉장히 사실적인 그림의 만화가 겸 애니메이션 감독이다. 당시 만화는 일본인을 서양인처럼 눈을 크게 그리고 과장하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오토모 카츠히로는 일본인을 정확히 일본인처럼 그렸으며 여성에 대한 성적인 과장도 전부 배제했다. 그런 오토모 카츠히로의 작풍은 후대에 일본 만화의 새로운 풍조를 가져왔고, 일본 만화의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 그리고 애니메이션 <아키라>는 전 세계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끌며 '저패니메이션'의 황금기를 이끈 만화이자 애니메이션이 되었다. 최근에는 이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에 '2020년 도쿄 올림픽 중지'라는 글귀가 벽에 쓰여 있어서, 2020년의 코로나19 팬데믹의 예언이 아니냐는 농담이 돌아 화제가 되었다. 오토모 카츠히로는 일본의 '전공투 세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전공투 세대란, 당시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68 혁명의 영향으로 일본에서 일어난 68~70년에 걸친 좌익 폭력 학생운동권 세대를 말한다. 이들은 우익정부에 맞서서 시위를 하다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경찰에 맞서 싸우면서 점점 폭력적으로 변했는데, 일본은 한국과 달리 60살 이후의 나이 든 세대가 더 진보적이고 그건 전공투 세대의 역할이 크다. <아키라>에 나오는 정부와 폭주족들의 싸움은 그것을 오마주한 것이다. <아키라>는 얼핏 보면 사이버 펑크 디스토피아 시대의 초능력 병기를 만드는 SF물이지만, 그 내용에서는 아직도 무리하게 시민들을 탄압하고 시민을 전쟁병기로 활용하고자 하는 군국주의를 비판하고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아키라>만큼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런 오토모 카츠히로의 작품 중에 <메모리즈: MEMORIES, 1995>라는 훌륭한 애니메이션이 있다. 이 작품은 후에 <애니 매트릭스>, <철근 콘크리트>를 만들게 되는 일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STUDIO 4℃의 작품이다. <메모리즈>는 총 3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옴니버스 애니메이션으로, SF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그 안에도 역시 군국주의에 대한 비판이 강하게 들어가 있다. 그리고 원작과 각본은 세편 전부 오토모 카츠히로지만 감독은 세편이 다 다른 만큼, 각기 다른 스타일의 애니메이션 3개를 감상할 수 있다. --------------- 그녀의 추억(彼女の想いで, Magnetic Rose) <그녀의 추억>은 <아키라>의 작화 감독 보좌, <마녀 배달부 키키>의 원화를 맡았던 모리모토 코지가 감독이다. 모리모토 코지는 또한 STUDIO 4℃의 창립자다. <아키라>의 유명한 오토바이 추격 장면은 이 사람 작품인 만큼 애니메이터로써 오토모 카츠히로의 신뢰를 받고 있다. 음악은 <카우보이 비밥><천공의 에스카플로네>로 유명한 일본 애니메이션 음악계의 거장인 칸노 요코가 맡았다. <그녀의 추억>은 첫 씬부터 또 한 번의 오토모 카츠히로의 '코로나19 예언'이 나와서 화제가 되었었는데, 주인공이 타고 있는 우주선의 이름이 '코로나'호라서다. 코로나라는 단어는 원래 천문학에서 천체의 '플라스마 대기'를 나타낸 것이라 흔한 단어 긴 하지만, 우연의 일치 치고는 재미있다. 우주선 코로나는 조난신호를 받고 구조를 하러 찾아간다. 그러나 그 조난신호는 어떤 음악으로 되어있었는데, 파로 푸치니의 '나비부인' 오페라였고 신호가 나오는 곳은 우주 쓰레기들이 모여있는 곳 한가운데 있는 어떤 커다란 인공 행성이었다. 승무원인 하인츠와 미겔은 그 안으로 사람을 구조하기 위해 잠입한다. 그 안에는 겉보기완 다르게 아주 화려한 바로크 양식의 오페라하우스처럼 꾸며져 있다. 우주 오페라하우스는 아무도 없는 듯 보이고 오래되어 망가져 보였으나, AI 컴퓨터는 작동하는 듯 보인다. 그들 앞에 시종 드는 로봇이 나와서 하인츠와 미겔에게 "음식이 준비되었습니다, 마님."이라는 말을 한다. 이 대사는 뒤에 이어지는 내용에 대한 복선이기도 하다. 그들은 음침한 분위기의 우주선 내부를 살피지만 홀로그램과 환상으로 현실과의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 최취 병기(最臭兵器, Stink Bomb) <최취 병기>는 <공각기동대>의 원화와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연출 콘티 원화에 참여했던 오카무라 텐사이의 감독 데뷔작이다. 오카무라 텐사이는 감각 있는 화면 연출과 개그감 있는 연출로도 유명하다. 이 애니메이션은 블랙코미디 장르로, 전쟁준비를 하는 일본, 또 그러면서도 미국에 종속된 일본 현실의 모습 등에 대한 풍자를 가득 담고 있다. 이 애니메이션은 1994년 미국에서 실제로 일어난 '글로리아 라미레즈 사망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글로리아 라미레즈는 자궁경부암 말기의 심부전으로 리버사이드 종합병원 응급실로 이송됐고, 디아제팜, 미다졸람, 로라제팜 등이 투여되었고 심장제세동기를 사용했다. 그러자 그녀의 입과 몸과 혈액에서 과일향이 나는 마늘냄새가 나기 시작했고, 그녀를 치료하던 의사나 간호사는 물론이고 병원 직원들까지 23명이 고통을 호소하며 쓰러졌고 5명이 입원했다. 글로리아 라미레즈는 암환자였으며, 45분 후 사망했다. 사망 후 병원 직원의 집단 히스테리 증상, 혹은 새로운 바이러스라는 가설이 있었으나 사실은 그녀가 암 선고 후 몸에 바르던 DMSO크림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지금은 독성 성분이 있다고 밝혀져 금지된 크림이지만 당시에는 통증을 완화해준다고 해서 운동선수, 암환자 등이 많이 애용했었다. 그것이 전기충격을 가해져 DMSO4로 바뀌고 황산 디메틸이 생겼다는 것이다. 병원 직원들의 증상은 황산 디메틸을 흡입했을 때와 유사한 증상이었다. <최취병기>에 나오는 노부오는 심한 감기에 걸려있다. 감기약을 먹고 주사를 맞고 출근했지만 증상은 나아지지 않는다. 제약회사이기 때문에 아직 나오지 않은 좋은 감기약이 없나 물어보던 노부오는 실수로 다른 약을 먹고 휴게실에서 잠들고 만다. 한참을 잠들고 일어난 그는, 모든 병원 직원이 죽어있는 끔찍한 현실과 마주하게 되고 병원 본사의 지시로 개발 중인 그 약을 들고 급히 도쿄로 향하게 된다. 자신이 그 죽음들의 원인이라는 것을 모른 채. 그의 이름인 노부오(信男)는 믿을 수 있는 남자라는 뜻이다. ------------- 대포 도시(大砲の街, Cannon Fodder) <대포 도시>는 마치 프랑스 만화를 보듯 독특한 수작업 그림체인데, 이 작품은 오토모 카츠히로가 직접 감독을 맡았다. 도시 전체가 적을 향해 대포를 쏘는 일을 하고 있고, 한 소년이 아침에 일어나 잠들기까지의 대포 도시의 일상을 그린다. 전체가 원테이크로 되어있는 것처럼 연출해, 마치 이 일상이 끝없이 이어질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유럽식 그림체와 인물을 보면 2차 세계대전의 나치를 연상시키지만 대포를 쏘는 장군들의 제국주의 제복을 보면 러시아나 일본이 연상되기도 한다. 소년은 대포의 포탄이 종을 울리는 시계 소리를 들으며 일어난다. 후다닥 일어나서, 자기가 가장 존경하는 장군의 초상화 앞에서 경례를 한다. 학교로 가면사 하는 인사는 '다녀오겠습니다'가 아닌 '쏘고 오겠습니다'이다. 거리에는 이달의 표어인 "쏴라 쏴, 힘이 닿는 한, 마을을 위해서 (撃てや撃て、力の限り、町のため)"가 넘쳐난다. 이 도시의 모든 집들의 지붕에는 대포가 설치되어있다. 이 도시는 전쟁이 일상이 된 군국주의 국가를 극단적으로 풍자한다. 모든 언어와 기술, 문화는 전쟁용어이며 전쟁기술이며 전쟁문화다. 아이들의 가장 큰 꿈은 훌륭한 장군이 되어 적들을 섬멸하는 것이다. 어른들은 시큰둥하고 영혼 없이 퀭한 눈으로 각자의 할 일을 하고 있다. 포탄을 만들고 포탄을 쏘는 일이다. 군국주의는 군사력을 국가 최우선 순위에 두고 침략과 약탈을 하기 위해 전쟁을 국가의 근간으로 삼는 이념이다. 우리가 잘 아는 군국주의 국가는 나치 독일, 일본제국, 북한 등이 있다. <대포 도시>는 그러한 전쟁을 일삼는 군국주의의 야욕이 국민들을 어떻게 피폐하게 만드는지 보여준다. ------------------ 전쟁은 인간 역사에 없었던 적이 없다. 우파가 각 국가의 수장이 된 지금, 전쟁의 그림자는 더 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심기를 건드린 것은 알지만, 그것이 과연 전쟁까지 일으켜야만 해결될 문제였을까? 서방국가들은 러시아의 경제를 제재하겠다고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전쟁 중에 가장 경제가 멀쩡한 곳은 러시아다. 일본 역시 2차 대전 패망 후 완전히 망가진 나라에서, 한국전쟁을 빌미로 군사물자를 대량 생산함으로써 나라가 다시 설 수 있는 기초가 되었다. 전쟁이라는 것은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히면서 자신에게 이득을 가져온다. 그렇기 때문에 심지어, 전쟁을 할만한 적이 아닌데도 비난하고 적으로 돌린다. 그것이 그저 자신들에게 이득이 되니까. 수많은 사람들의 이해가 얽혀있는 세상에서 단순하게 '평화롭게 삽시다'라는 말로 전쟁을 하지 말자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타인의 불행이 내 행복이라는 마음은 당장 눈앞의 이득만 생각하는 일이다. 전쟁, 그것은 모두가 자멸하는 지름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