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어느 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다. 세 자녀는 어머니가 생전 남긴 미술품들의 처분을 놓고 견해 차이를 보인다. 그녀가 살았던 집과 그 안의, 미술관도 탐내는 수많은 소장품들은 이제 무심하다. 살던 이는 떠났지만 그것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다만 더 이상 같은 의미로 존재할 수는 없을 뿐이다. 남매는 결국 집을 팔기로 결정한다. <여름의 조각들>의 가장 귀한 장면을 택하라고 하면 단연 마지막의 파티를 언급해야만 할 것이다. 영화 초반 75세 생일을 맞은 어머니와 가족들의 단란한 식사와 대화, 그리고 10대들의 자유로운 파티는 어딘지 대조적인 장면처럼 보이지만 그 성격으로 보나 사람들을 향하는 영화의 시선으로 보나 별 차이가 없다. 같은 공간의 다른 사람들. 한 세대가 지나가고 또 다른 세대가 자리를 채운다. 남매의 태도이기도 하지만 영화가 작중 미술품들을 헤아리는 모습 역시도 그것이 언젠가 지나가고 낡아버린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자의 시선이다. 그리고 그 흘러감의 속성, 인생과도 맞물리는 그 성질이 자연스레 녹아 있는 것이 <여름의 조각들>의 오프닝과 클로징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줄리엣 비노쉬 같은 당대의 배우들을 데려다 놓고도 배우와 캐릭터를 돋보이게 만드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집이라는 공간 자체가 사실상 주인공에 해당하며 집 안의 그림과 꽃병 같은 것들이 캐릭터가 된다. 무언가가 휩쓸고 간 자리에 남아 있는 그것들이 곧 어느 여름의 조각들이 된다. 이제 그 해 여름은 모두에게 다르게 자리 잡힌다. 누군가는 여전히 파리에 살며 그곳과 그 계절을 추억하고, 누군가는 차마 처분하기 아까웠던 그림 하나를 간직하며 또 누군가는 단지 파티를 연다. 박물관에 남은 또 다른 흔적들은 박제된 채로 사람들의 시선을 오래도록 받을 것이다. 예술이 지나간 자리에는 무엇이 남을까. 무엇보다, 삶이 지나간 자리에는 무엇이 있을까. 삶이 결국 지나가버려야만 하는 것이라면 오늘의 우리는 스스로의 삶을, 그리고 그 유한성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여름의 조각들> 속 여름의 시간은 개별적 삶의 여정을 함께했던 것들이 어떻게 타인과 공유되고, 향유되며 마침내 문화가 되는지를 감각적이되 소박한 시선으로 미련 없이 비춘다. 로저 에버트는 이 영화에 대한 글을 쓰면서 에롤 모리스의 다큐멘터리 <게이트 오브 헤븐>(Gates of Heaven, 1980)의 한 대목을 이렇게 인용해놓았다. "Death is for the living, and not for the dead so much." 일어난 일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그 일을 겪은 그들 각자에 대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