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관계와 연대에 관한 영화 _ 지금 같은 시기라면 '그녀들의 이야기'는 문제의 처음으로 되돌아간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있다. 부연하자면 '한국인이라면 봐야 할 영화' 같은 건 없다고 여기는 편이다. 좋은 영화는 특정한 소재로도 능히 배경을 초월한 보편적인 전달력을 지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허스토리>는 대체로 민족적 정서나 감정에 열을 올리는 대신 1990년대 당시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있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시작의 가치를 드높인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때, 지난 이야기 무엇 하러 들추냐며 핀잔할 때, 창피하지도 않느냐며 폄하할 때, 당시로서는 이미 성공한 사업가였던 '정숙'이 겪는 물적, 심적 어려움은 관객이 기대할 승리와 반전의 쾌감보다는 좌절감을 안겨준다. 그것은 2018년, 지금도 그때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딱히 나아지지 않았다. <허스토리>는 승리의 드라마도 아니요, 반전의 쾌감을 주는 법정 영화도 아니며 역사의식을 고취하는 계몽적 서사도 아니다. 그러나 엄마에게 반항적으로 툴툴대던, '정숙'의 딸 '혜수'가 수요집회에서 마이크를 쥐고 선 모습은 <허스토리>의 다른 의미를 짐작하게 한다.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정숙'에게서 딸 '혜수'에게로 목소리가 옮겨가는 순간, 영화는 뿌듯함과 감격의 표정으로 무대를 지켜보는 동료들 곁에서 선글라스를 낀 채 가만히 딸을 바라보는, 머리 희끗해진 '정숙'에게 잠시 시선을 둔다. 그러니까 이야기는 시대를 타고 사라지지 않고 흐른다는 이야기, 를 하고 싶은 것이다. 내 멋대로의 추측이지만 그렇다. 수 년 간의 단조로운 공판 과정보다 <허스토리>에서 눈에 띄는 건 상기의 모녀지간과 같은, 인물들의 관계다. '정숙'과 '혜수', '정길'과 아들, '귀순'과 그녀의 옛 소학교 교사, '정숙'과 변호사 '상일'의 관계처럼 영화 속 인물들은 각자의 사연을 통해 공감, 이해, 화해, 응원, 그런 것들을 서로 나눈다. 사건 자체보다는 대화의 내용과 양상이 중요히 여겨지는 이 영화의 힘이다. 소재 자체에 매몰되지 않고 차근차근 관계를 성장시켜 가는 것. 섣불리 앞서나가지 않고 아픈 현실을 직시하되 일말의 희망을 남겨둔 <허스토리>의 맺음이 마음에 든다. 실은 약간의 곁가지처럼 여겨졌던 맨 마지막 신을 제외하면 말이다. 중급 규모 이상의 한국 영화에서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성비의 캐스팅 앙상블 역시도 이 영화에 동하는 이유다. <허스토리> 속 처음의 목소리는 결말에 이르러 지금 여기, 오늘날 그것에 왜 귀를 기울여야 하는지를 비로소 설득력 있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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