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스포일러 주의!

'킬링 디어'는 정말 간단하면서도 너무 어려운 영화였다. 학교 선생님이 분명히 언급하는 것처럼 이 영화는 이피게네이아 이야기를 차용하지만, 여기엔 신탁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마틴은 신의 분노를 전하는 예언자가 아니라 인간의 독기를 발산하는 '리골레토'의 몬테로네 백작에 더 가깝다. 마틴은 당신의 아들, 딸, 부인이 모두 죽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부인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별다른 증상을 보이지 않는다. 증상이 뒤늦게 나타났을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자식들이 끔찍한 우연의 장난에 휘말렸다고 해도 역시 말이 된다. 오만함 그 자체인 스티븐을 단 한 순간도 옹호하고 싶진 않지만, 어쨌든 인간은 완벽하지 않아 공통 원인에 의한 질병 가능성을 끝까지 버릴 수는 없기도 하다. 영화는 인간의 비극으로 가득하다. 나는 이 영화에 니오베 왕비와 메두사호의 뗏목 이야기가 섞여 있다고 생각한다. 이피게네이아는 신에게 제물을 바치지 않아 생기는 비극이지만, 니오베 왕비는 본인이 완벽하다고 단언하는 인간의 독선과 오만이 자초한 비극이다. 안나가 섹스 전에 준비하는 기묘한 자세는 이상하게도 제리코의 그림 '메두사호의 뗏목'의 어느 시체처럼 보인다. 메두사호는 어떤가, 신화적 징벌보다 더 끔찍한 인간성의 재앙 아닌가. 이 영화는 신화의 탈을 뒤집어쓴 인간에 대한 폭로에 가깝다. 이 영화에서 인간의 무기력함에 대한 절망은 늘 가장 잔혹한 장면에서 터진다. 말 그대로 펄펄 뛰는 심장의 모습은 역설적으로 그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만 볼 수 있다. 마틴이 스티븐의 팔을 물어뜯을 때 그의 악마성보다는 묶은 인간을 향한 묶인 인간의 마지막 발악처럼 보인다. 가족의 머리에 두건을 씌우고 눈을 감은 채 빙빙 도는 스티븐의 모습은 서로를 향한 완벽한 무지 상태에서 벌어진다는 점에서 재난에 가깝다. 이처럼 이 영화는 업보를 말하는 대신 그들의 '할 수없음'을 말한다. 마틴의 말이 우연의 장난이라고 앞에서 말했다. 마틴이 스파게티를 먹으면서 하는 말은 '당신들도 똑같이 당해야 한다'는 말임과 동시에 '나 역시 같은 인간'이라는 고백이다. 죽음을 앞두고 온갖 아첨을 떠는 가족의 모습은 '살고 싶다'는 인간적 본능이 끔찍하게 반영된 모습이다. '네가 죽으면 슬퍼할게'라고 말하는 대신 '네가 죽으면 너의 mp3를 쓸게'라고 말하는 킴의 모습은 솔직해서 역겹기 그지없다. 밥의 몸에서 피가 흘러내릴 때 아무도 울지 않는다. 그들은 애도하는 대신 살아남았음을 안도한다. 남은 가족들과 마틴이 식당에서 마주쳤을 때 그들은 대화를 나누지 않으며, 그때 흘러나오는 곡은 얄궂게도 요즘 자주 듣던 바흐의 요한수난곡이었다. 인간의 아들(밥)이 죽은 후 하느님의 아들의 죽음에 대한 곡이 흘러나오다니, 정말 끝간데 없이 지독한 감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