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JC
2018.07.31
무력하고 간절한 건냄, 시간이 걸려도 그대 반드시 행복해지세요
무력하고 간절한 건냄, 시간이 걸려도 그대 반드시 행복해지세요 __ 단지 내 한 노인의 고독사, 바이올린을 그만둔 딸내미, 실종된 노인을 찾는 안내방송, 태풍에 다치고 죽은 사람들을 보도하는 뉴스가 정말 아무렇지 않게 흘러간다. 이기적이게도 그 수많은 누군가의 아픔은 단순한 가십거리로, 몇 초 뒤 사라져 갈 탄식 한번으로, 신경도 쓰이지 않는 배경음으로 환원된다. 모르는 이의 아픔에 아파할 만큼 우린 한가하지 않다. 또는, 우리의 아픔도 결국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될 뿐인 거다. 할아버지의 죽음에 났던 눈물은 흔적도 없이 날아갔고 이젠 그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지- 건조해진 투로 생각할 뿐이다. 태풍이 지나가고 언젠간 대부분 제자리를 찾는다. 그 말은 그러니까 제자리란 원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집 안 곳곳을 장식하고 있는 여러 제품들처럼, 동네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생명체나 물건들처럼 막연히 주어진 자리에서 세상을 이루며 살아간다. 그러면서도 적당한 우울함을 성냥처럼 간직한 채 때때로 불을 켜 마음속 지하실로 내려가는 우리. 그곳에서 우린 닮고 싶지 않았던 아버지의 모습, 끝내 이뤄지지 못한 꿈, 바다처럼 깊이 사랑하진 않았던 당신을 비춰본다. 그러고는, 마침내 쿡 하고 저려오는 마음을 조금 무심하게, 동시에 조금 아련하게 느껴내곤 한다. 산책에 나갔던 엄마가 꽤나 늦게 돌아오셨다. 물어보니 평소보단 멀리, 하지만 그리 멀진 않은 곳으로 드라이브를 다녀오셨다고. "소리 좀 한번 크게 지르고 왔어." 지나가듯 말하던 당신의 한 줄에 나는 얼마나 먹먹해졌던가. 내가 당신에게 최대로 줄 수 있는 행복 한 줌은 당신에게 필요한 백사장이 되기엔 턱 없이 부족하다는 걸 안다. 결국 당신은, 당신의 힘으로 행복해지는 수밖에 없는 거다. 그러나 때때로 당신의 내면에서 파란색이 흘러나올 때, 나는 외면할 수 없는 슬픈 감정에 사로잡힐 밖에.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하니 아주 멀리, 멀리멀리 날아갈 수는 없었던 엄마. 나도 언젠가 당신이 부재할 시간의 한복판에서 팔랑거리는 나비를 본다면, 한번쯤은 '엄마 맞죠?'하고는 멀리멀리 자유롭게 떠나가라며 그 연약한 날갯짓을 쫓아갈 수도 있겠다. 그러나 당신은 내 주변을 맴돌며 또다시 그리 길진 않은 적당한 지름 속을 배회하겠지. 죽어서도 요시코의 꿈에 계속해서 나왔던 그녀의 남편처럼. 깊이, 바다보다 더 깊이 사랑한 당신. 어떻게 이 아득한 가사는 무려 <이별 예감>이라는 노래의 일부가 되는 걸까. 노래를 내고 8년 뒤, 42세의 나이로 거짓말처럼 죽은 등려군은 무엇을 예감했던 걸까. 그런 사랑을 하지 못했으니 그래도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는 요시코의 말. 그런 사랑을 노래한 가수는 의미심장하게도 이른 나이에 세상을 등졌다. <비포 선셋>의 마지막 장면, 셀린의 왈츠는 작은 유언처럼 보이기도 했다. 또는 영원한 천국의 문처럼. 그 사랑이 아니고서야 살아갈 수 없다는 몸부림은 실은 정말로 위험한 것이다. '그래선지, 사람들은 일부러 그런 사랑을 하지 않는 걸까'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실제론 그런 사랑이 웬만해선 나타나지 않는 거지. 아빠가 중환자실에 입원했을 때 엄마가 아빠에게 '사랑한다'는 단어가 섞인 문자를 보낸 걸 우연히 봤다. 엄마가 아빠에게 썼다는 문자라고 하기엔 너무 생경한 말이었다. 아들 된 입장으로 이런 말이 정말 죄송스럽지만, 나는 지금도 그 말이 사랑보단 사랑해야 한다는 의무감, 그리고 그동안 살아온 정이라고 느껴진다. 뒤늦게, 남편이 죽은 지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요시코는 대수롭지 않게, 그러면서도 최초로 이렇게 고백하는 것이다. 바다처럼 깊이 사랑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고. 죽기 직전이 되어서야 셀린의 할머니는 셀린에게 고백했던 것이다. 내가 평생 사랑한 남자는 네 할아버지가 아닌 다른 남자였다고. 나는 왜 한번이라도 바다처럼 사랑할 수 없는 걸까. 나는 왜 바다처럼 사랑하는 그 사람과 살 수 없는 걸까. 그 막막한 문장을 일기장 저편에 묻어둔 채 그녀들은 살아가고 있었던 것일 테다. 얼마 전에 역대급 더위를 맞아 집 안 곳곳에 선풍기를 비치하겠다며 엄마가 야심차게 원 플러스 원으로 주문했던 선풍기 중 한 대가 부러졌다. 간신히 테이브로 땜빵한 뒤 사용하고 있다. 또 그 전 날엔 방의 문 손잡이가 고장 나서 새로운 것을 사다가 교체했다. 02 월드컵이 열렸던 해에 이사와 18 월드컵이 열린 올해까지 살면서 이 집도 참 여러 가지가 변했다. 현관, 화장실, 방, 싱크대는 자꾸만 낡아져서 야금야금 집의 돈을 갉아먹었다. 끊임없이 고쳐 살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그 16년 동안 나라는 사람 역시 정말 많이 변했다. 02년, 축구선수가 꿈이었던 나는 스포츠 기자라는 조금 타협한 꿈을 내놓았다가 이 역시 툭 버려둔 채 지금은 무언가를 꿈꾸고 싶단 꿈을 꾸며 살고 있다. 그래, 료타의 말처럼 어디 되고 싶은 어른이 되는 게 쉬운 일인가. 아이일 때 역시 되고 싶은 아이로 살지 못했는데. 다들 하루하루 타협하고 수정하며 산다. 자기 맘대로 바뀌곤 하는 날씨 속에 사는 우리는 그냥 그 속에서 적응하며 사는 수 말고는 없다. 이 영화는 그래서, 결코 우리에게 진전을 요구하지 않는다. 꿈은 이뤄지지 않고, 바다처럼 깊이 사랑하는 사람도 없고,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아프고, 가끔 소리 한번 크게 지르고 싶은, 가슴속을 꾹 막고 있는 각자만의 사연 역시 어디에나 있다. 하지만 동시에 딱 한 발자국 걸어가도록. 반복되는 일상 앞에서 무력해지지 말라며 조심스럽게 손 하나 뻗고 있는 것이다. 엄마가 그런 말을 한 적 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벽을 마주하게 되는데 그게 무서워서 돌아가려다 보면 더 큰 벽이 나오거든. 그냥 눈 앞의 벽을 넘어뜨리면서 가는 수밖에 없어." 엄마는 그렇게 태풍을 하나하나 넘어오며 살아오셨던 것 같다. 도망치지 않고, 무력하게 맞서서. 이 영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용기도 큰 것이 아니다. 그건 딱 한 번의 태풍을 마주할 눈빛이다. 흔들리는 눈빛이다. '태풍이 지나가도'가 아닌 그저 '태풍이 지나가고', 누구의 삶도 달라지는 건 없다. 싱고는 여전히 포볼을 노리며 타석에 들어설 것이고 료타는 계속 돈에 전전긍긍하며 아들을 만나러 올 것이다. 쿄코 역시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또다시 데이트를 하러 갈 것이고 요시코는 하루하루를 그래도 즐겁게 살아갈 것이다. 작년에 아파트 차원에서 집 앞에 있는 큰 나무의 가지를 쳤다. 잎사귀가 모두 없어져 추워 보였던 나무에게도 올해 들어 새로운 가지와 잎이 났다. 새롭게 돋아난 초록색이 오랫동안 버티고 선 줄기 위에 자리 잡아가는 모습. 태풍이 지나가고 잔해물들이 널려있는 남은 자리에도 새순은 돋아난다. 우린 어수선한 터전 위에 녹아들어 어떻게든 다시 내일을, 내일의 날씨를 맞이할 것이다. 여태 그래 왔듯이. 꿈꾸던 미래가 어떤 것이었건 잘 가 어제의 나 맑게 겐 하늘에 비행기 구름 나는 어디로 돌아갈까 잃어버린 건 없을까 잘 가 어제의 나 눈을 감고 불러보네 그 시절의 그대를 만나고 싶어서 그대여 나는 아직 기억해 그대여 나는 잊지 않을 거야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것 같아서 돌아보지만 그대는 없어 그대여 나는 아직 기억해 그대여 나는 잊지 않을 거야 그대여 내가 나를 믿지 못할 때에도 그대만은 나를 믿어주었지 꿈꾸었던 미래가 어떤 것이었건 헬로 어게인 내일의 나 놓아버릴 수 없으니까 한 걸음만 앞으로 한 걸음만 앞으로 또 한 걸음만 앞으로 -심호흡, 하나레구미 덧붙임. "아빠는 뭐가 되고 싶었어? 되고 싶은 사람이 됐어?" "아빠는 아직 되지 못했어. 하지만 되고 못 되고는 문제가 아냐. 중요한 건 그런 마음을 품고 살아갈 수 있느냐 하는 거지" "정말?" 이 마지막 질문에 료타는 "정말이야"를 세 번 반복해서 말한다. 그때 아까 집에서 싱고가 했던 "세 번이나 말하면 거짓말 같다"는 말이 생각난 료타는 어색하게 한 번의 "정말이야"를 덧붙인다. 되고 싶은 어른이 되지 못한, 되고 싶은 어른은 앞으로도 될 수 없으리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게 된 료타는 계속해서 되고 싶은 어른이 되고 싶단 바람을 품고 살아갈 수 있을까. 한 번의 정말이야는 가벼운 답이다. 두 번의 정말이야는 의지다. 세 번째 정말이야는 의심이다. 네 번째 정말이야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의심이 들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동시에 다시 한번 다져보는 깨지기 쉬운 의지. 세 번째 정말이야와 네 번째 정말이야 사이의 그 미묘한 차이. 료타는 그 틈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쯤 불가능하다는 걸 수도 없이 알아버린 나지만, 여전히 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는 살아가고 싶을 때 료타처럼 정말이야 네 번, 입으로 천천히 발음해보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