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사과
사과

사과

2018.09.02

태양을 훔친 사나이

01. <태양을 훔친 사나이>를 봤다. 당시 일본의 패배 의식과 관료주의에 대해서 생각을 하면 영화에 대해 이해를 쉽게 할수 있다. 이 영화를 보며, 패배감 혹은 대상없는 분노의 직접적인 표현을 보며 <버닝>을 떠올렸다. 사람들은 <버닝>이 한국 청춘의 분노와 현실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고 했다. 이 영화는 원자폭탄이라는 실체를 만들어 패배감과 분노를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그것만으로 이 영화는 의무와 목적을 달성했다. 02. 앞서 영화는 의무와 목적을 달성했다고 했다. 영화의 목적은 간단한다. 영화의 출구는 없다. 영화 속에 동시대 젊은이들이 갇히는 것, 타 세대의 공감이 목적일 것이다. 인물은 이미 분노가 가득차 있는 상태에서 관객을 만났다. 그것을 애초에 배출될 생각은 없다. 그렇기에 엔딩쇼트는 폭탄을 들고 도심을 걷는 주인공의 얼굴로 선정한 것이다. 감독은 삶의 의지를 잃은 주인공이 폭탄을 도심한복판에서 들고 돌아다니길 원했을 것이다. 이유는 패배감은 당시의 젊은 이들은 갖고 있기에 그들의 공감대를 얻고, 그 외의 계층이 알아주길 바랬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왜 알아주길 바랬는지에 대해 생각해야한다. 자신들은 죄없는 세대라 생각했을 것이다. 아버지 세대에서 벌어진 일들과 결과와 여파로 인해 자신들이 가지게 될 의식에 대한 억울함과 함께 말이다. 그리고 그것에서 벗어나야 자신들의 새로움이 시작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03. <태양을 훔친 사나이>의 인물만 놓고 본다면, 영화는 그리스 신화 속 하늘을 날고 싶었으나 추락한 이카루스에 대한 은유일지도 모르겠다. 밀랍으로 붙여 만든 날개로 미궁에서 탈출했으나, 태양 가까이 비행해서 떨어져 죽은 이카루스 말이다. 자신이 어찌할바를 모르는 것을 쥔 사나이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04. 안타까운 것은 그것이 지금은 한국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어디로 어떻게 왜 가야할지 모르는 지점이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