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라씨에이
2023.09.22
7.9/범상치 않은 제목 어그로가 약과로 보일 정도의 정신나간 텐션을 자랑하는 말장난 및 병맛드립, 여전히 뻔뻔한 의도적 조악함, 그 와중에 점점 정돈되고 균형잡혀가는 그의 영화.
7.9/범상치 않은 제목 어그로가 약과로 보일 정도의 정신나간 텐션을 자랑하는 말장난 및 병맛드립, 여전히 뻔뻔하기 그지없는 의도적 조악함, 그리고 그 와중에도 점점 정돈이 되고 균형이 잡혀가는 듯한 백승기 감독의 영화 세계. / 대한민국 어딘가의 야산과 공장지대를 미국 텍사스로 둔갑시키고, 말의 잔해 정도가 달려있을 뿐인 인형옷을 진짜 말인 것처럼 그럴 듯한 효과음까지 넣어서 타고 다니며, 대한민국 지폐가 프린팅된 사각빤스 입은 사람들을 노예로 설정해 두고서 비장한 음악만 깔아놓고 한참을 걸어다니게 함. 게다가 총에 맞아 잘려나간 손가락과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피는 손가락을 대놓고 굽힌 다음 피 대신 케첩통 다 보이게 쭉 짜서 표현하고, 영어 대사들은 신통하게도 의미는 통하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엉터리 일색임. 오프닝 시퀀스부터 기대를 저버리지 앉는 뻔뻔한 b급 말고 c급 표현들이 난무하는데, 어이없고 황당하면서도 이 맛에 보는 거란 반가움과 뒤에는 어떤 병맛들이 펼쳐질까란 기대가 동시에 피어올랐음. 그리고 오프닝은 정말 맛보기 수준이었을 정도의 병맛스러운 c급 연출 및 드립들이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끊임없이 펼쳐졌음. / 뻔뻔한 병맛 연출들이 수시로 등장해서 실소를 유발해주는 가운데, 막 눈에 띄는 표현 없이 인물들끼리의 대화만이 오가고 있을 때도 그렇게 지루하진 않았음. 주구장창 입으로만 떠들고 있더라도 대사들이 끊임없이 병맛스러워서 그 어이없는 대사들을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본은 해줬기 때문임. 항복을 gg로, 멸망을 타노스로, 말 하지말라는 대사를 뮤트로, 상업영화진출을 3대 영화 체인으로 대체해서 표현하는 식의 가성비 좋고 번뜩이는 초월번역들이 마치 <오늘도 평화로운> 속 웃음 포인트였던 탕수육 아저씨의 사자성어 활용을 떠올리게 했음. / 다들 대놓고 뻔뻔함을 다량 섞어가며 연기하고 있는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빚갚으리오 역의 손이용 배우만이 첫등장부터 나름대로 진지하고 극영화스러운 연기를 보여줌. 물론 대사 내용을 자세히 들어보면 죄다 헛소리 일색이지만, 그 폼에서만큼은 의외의 카리스마가 느껴졌음. 첫등장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롱테이크와 긴 대사들을 소화하면 홀로 오랜 시간 동안 떠들고 있는데, 언뜻 <장고: 분노의 추적자> 속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모습이 아주 조금은 오버랩될 정도의 그럴 듯해 보이는 카리스마를 보여줬음. 한편 <장고: 분노의 추적자>에서 사무엘 잭슨이 맡았던 스티븐의 포지션을 연기한 배우 역시 빚갚으리오에 버금가는 인상을 남겼음. 빚갚으리오의 옆에서 "예스, 마스터" 정도의 비교적 짤막한 대사만을 보여줬지만, 그 말투나 제스처 등이 원본과 묘하게 높은 싱크로율을 자랑한 덕에 뜻밖의 재미와 활약을 보여준 씬스틸러였음. 어쨌든 백승기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연기에 대해 논하고 호평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음;;; / 막판 총 겨누기로 시간을 끄는 듯하다가 한 차례 비틀며 앞서 깔아둔 회전무술 떡밥을 기어이 회수해서 적을 처리하는데, 여전히 병맛스러운 연출이 펼쳐지고 있는 가운데서도 잠깐이지만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음. 병맛에 기대서 흐지부지 끝낼 법도 하건만, 나름대로 장르적인 쾌감을 선사해준 마무리라서 좀 더 인상적으로 남았음. / 영화 촬영 현장을 제대로 경험해본 적이 없어서 보통 영화를 볼 때 촬영현장이 어땠을 지가 잘 그려지지는 않는 편인데, 백승기 감독의 영화는 볼 때마다 마치 촬영현장 한가운데 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이 들곤 함. 워낙 날 것의 장면들로만 구성돼 있어서 저 상황에선 어떤 식으로 찍었을 것이며, 어떤 에피소드가 있었으며, 변수 발생 시 어떻게 대처했을지까지 절로 그려지는 느낌임. 경험해보지 않았는데도 해당 현장을 겪어본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서 괜히 내 노력이 들어간 영화처럼, 직접 참여했던 것만 같은 착각이 들고, 근거없는 애착이 좀 생기기도 함. / 사실 이 모든 게 잔고와 친구들의 영화 촬영 과정이었다는 허무하지만 소소하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반전. 그리고 그 상태에서 또 한번 벽이 허물어지며 찐 현실세계 속 백승기 감독의 촬영현장이 펼쳐지고, 엔딩크래딧과 함께 메이킹 필름까지 나오는데, 이를 보면서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의 엔딩이 떠올랐음. 영화란 것에 진심인 사람들이 모여 조금은 어설프고 없어보이더라도 꿈과 열정으로 즐겁게 영화를 만들어 나가는 짠하고도 멋진 모습들. 가뜩이나 촬영 시기마저 코로나 시국과 겹쳐서 더더욱 녹록치 않았을 것이 눈에 훤했기에 그 마음들이 좀 더 찐하게 와닿았음. / 2022년 bifan에서 놓치고, 2023년 bifan에서도 놓쳤다가 드디어 극장개봉을 통해 볼 수 있게 된 영화임. 마니아층이 형성된 백승기 감독의 영화 중에서도 유독 반응이 뜨거운 느낌이길래 궁금했는데, 보고 나니 납득할 수 있었음. 뭔가 전작들에 비해 날 것의 병맛스러움은 유지하면서도 장르와 서사가 밸런스를 이룬 듯한 느낌이 약간이나마 들었기 때문임. 물론 백승기 감독 영화는 <오늘도 평화로운>과 <인천스텔라>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긴 하지만, 이번 영화는 여러모로 조금은 더 정돈된 느낌이 들었고, 다소 실망스러웠던 전작 <인천스텔라>보단 훨씬 괜찮게 봤기에 확실히 다르게 느껴졌고, 덕분에 차기작에 대한 기대도 상승했음. / 영화 내내 말 울음 소리랑 발굽 소리 쓸데없이 성실하고 꿋꿋하게 넣고 있는 게 은근 킬포였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