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KinoDAY
2023.09.29
<당나귀 EO>의 여정을 굳이 지켜봐야 하는 이유
이 당나귀, 뭔가 다르다 <당나귀 EO>는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의 19번째 장편 영화로, 로베르 브레송의 <당나귀 발타자르>(1966)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주인공은 당나귀다. 이름은 EO. 카메라는 그의 여행을 조용히 뒤따른다. 동물보호단체에 의해 서커스단으로부터 구조된 EO. 그는 농장에서 일하기도 하고, 축구팀 마스코트도 됐다가, 소지지 공장에서 간신히 탈출하며 폴란드에서 이탈리아까지 여행한다. 줄거리만 놓고 보면 이 영화를 봐야 할 이유가 선뜻 와닿지 않는다. 당나귀의 시점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대사도 적고, EO가 가는 곳마다 사건이 단편적으로 묘사되기 때문에 옴니버스 영화를 보는 듯한 이질감도 있다. 장소가 달라질 때마다 연기하는 당나귀도 바뀌다 보니 더욱 그렇다. 중간중간 VR 게임을 하는듯한 실험적인 구도가 삽입되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고요한 다큐멘터리에 가까워서 지루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스콜리모프스키 감독은 친절하다. 자칫 지리멸렬할 뻔한 예술 영화의 속살을 음미할 문을 슬쩍 열어준다. 오프닝이 그 문이다. 붉은 조명 아래에서 EO는 파트너인 '카산드라'(산드라 지말스카)와 함께 관능적인 공연을 펼친다. 파편화된 이미지의 연속이기는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EO와 카산드라는 동물과 인간의 경계를 넘어서는 호흡을 보여준다. 바로 이 지점에서 굳이 당나귀의 눈을 빌려 인간 세상을 관조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있다. (...) 즉, 죽음과 폭력의 이미지가 넘쳐나는 영화에서 EO는 대사 없이 말한다. 가장 흔하고 초라하게 죽는 당나귀의 여정을 통해서 동물은 물론, 인간 사회의 문제도 찾아 해결할 실마리를 구하라고. 결국 <당나귀 EO>는 한 구원자, 메시아의 여정을 되풀이하는 이야기나 다름없다. 바로 이것이 평범해 보이는 한 당나귀 여행을 눈여겨 지켜봐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가장 낮은 곳에서 모순덩어리 인간 세계를 관조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