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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개봉한 영화 <엑소시스트 : 믿는 자>는 데이빗 그린 고든 감독이 연출과 공동 각본을 맡은 작품입니다. 윌리엄 피터 블래티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요. 제가 얼마 전 포스팅한 1973년 개봉 작 <엑소시스트>와 직결되는 후속편이며, 리부트 3부작의 첫 번째 작품이기도 하죠. ​ 극 중에서는 1973년 영화에 출연한 엘런 버스턴과 카메오로 출연한 린다 블레어가 출연하여 1편의 후속작임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자. 그럼 영화 <엑소시스트 : 믿는 자>에 대한 리뷰 포스팅을 시작하겠습니다. 1973년 작 <엑소시스트>는 전설로 남은 작품입니다. 대단한 상업적 성공을 거둔 것은 물론 평단의 호평 속에서 여전히 ‘최고의 공포영화 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데요. 이 작품이 영화 문화에 남긴 영향 역시 무시할 수 없습니다. ​ 수많은 아류작이 등장했고, 속편만 해도 5편까지 만들어졌어요. 구마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신부와 악마의 대결, 빙의된 자들의 뒤틀리고 오염된 신체, 불순한 언어 등은 <엑소시스트>의 상상력에 빚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 <엑소시스트: 믿는 자’>2023)는 이 걸작의 정통성을 잇는 후속작을 자임하는 또 한편의 영화입니다. 2018년, 1980년대 슬래셔 무비의 전성기를 열었던 <할로윈>(1978)의 속편을 제작하면서 호평을 받았던 데이비드 고든 그린 감독이 이번에는 구마물의 전설에 도전했습니다. 연쇄살인마가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해치는 슬래셔 무비는 비교적 복제 가능한 코드를 가지고 있는 반면, 선과 악의 경계를 탐구하며 인간의 근원적인 공포를 자극하는 구마물은 ‘공기와도 같은 두려움’에 접근해야 한다는 점에서 만만치 않은 시도였을 것 같은데요. ​ <엑소시스트 : 믿는 자>는 원작이 남긴 유산 안에서 장르 관습을 반복하고 뒤틀면서 나름 흥미로운 장을 열었고, 원작과는 사뭇 다른 세계관을 선보였습니다. ​ 그러면서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함께 이야기해 보자고 제안하는데, 덕분에 무섭다기보다는 성찰적이 되고 있는 느낌이었어요. 이 패기 있는 도전의 성공 여부에 대한 평가가 사람마다 달라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야만스러운 건 흑인 주술이 아니라... ​ 원작 <엑소시스트>는 이라크 북부의 한 유적지에서 구마 신부가 악마 ‘파주주’의 동상과 마주 보며 시작되죠. 파주주는 메소포타미아 신화에 등장하는 악마인데, 서구 기독교 중심 세계관에서 보자면 이교도의 신인 셈입니다. 그렇게 아랍 지역은 하나님의 뜻이 미치지 않는 이교도의 땅, 미개하고 죄가 서린 땅으로 그려지고 있는데요. ​ 파주주의 저주는 ‘타락한 도시’ 뉴욕으로 옮겨옵니다. 남편과 이혼한 뒤 혼자 딸 리건(린다 블레어)을 키우고 있는 크리스(엘런 버스틴)는 새 영화에 출연하기 위해 뉴욕으로 이사를 했죠. ​ 새집에서 사랑스러운 딸이 갑자기 욕설을 내뱉고 온몸을 뒤틀며 발작을 일으킵니다. 아버지가 없는 집에서 어머니와 딸은 ‘비정상적으로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간악한 기운이 침투하기 좋은 공간으로 부상하게 되죠. <엑소시스트>는 2차 세계대전 뒤 유례없는 풍요를 누리며 보수화되었던 미국 사회가 1960년대 변혁의 시기를 지나면서 경험하는 문화적 전환과 그에 따른 가치관의 혼란을 공포의 자양분으로 삼고 있습니다. ​ 그리하여 악마 들린 소녀의 신체는 기독교와 이교도, 구세대와 신세대, 남성과 여성 등 전통적인 질서를 지탱했던 각종 이분법을 교란시키는 불온한 대상이 되고 있는데요. ​ 이런 혼돈을 바로잡을 수 있는 건 오로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아들, 즉 남성 사제들이라는 설정은 지금 보면 꽤 낡은 모습이죠. 50년이 지나 <엑소시스트 : 믿는 자>에 깜짝 등장한 크리스가 리건에게 행해진 구마 의식을 돌아보며 “가부장적 의례”라고 평가하는 건 일종의 블랙 코미디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엑소시스트 : 믿는 자> 역시 ‘이국적인’ 나라에서 시작됩니다. 그곳은 바로 아이티. 할리우드 공포영화에서 일반적으로 사악한 부두교의 땅, 불가사의한 좀비의 땅으로 다뤄지던 나라죠. ​ 주인공 빅터(레슬리 오덤 주니어)는 만삭인 아내와 아이티를 여행 중입니다. 그곳에서 아내는 흑인 여성 주술사의 축복을 받게 되는데요. 기존의 공포영화 문법에 익숙한 관객들이라면 이 ‘축복’이 불행을 가져올 것이라 기대하며 불안을 느끼게 되죠.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우리는 주술사의 기도가 결국은 ‘성스러운 기적’으로 이어진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 작품 속에서 야만스러운 것은 흑인들이 행했던 주술이 아니라 백인들의 노예무역과 노예제라 볼 수 있습니다. 아이티는 스페인에 이어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거쳤고, 이곳에서 대농장을 경영했던 백인 제국주의자들은 원주민을 멸종시킨 섬에 아프리카에서 납치한 흑인들을 정착시켰죠. 그런데 18세기가 되면서 노예들의 혁명이 일어나고 세계사 최초로 흑인 근대국가가 건설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아이티에서 행해진 놀라운 역사라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 그러나 이후 미국이 다시 아이티를 식민화했고, 미국 대중문화 속에서 아프리카 서부에서 납치돼 서인도제도로 팔려온 흑인들과 함께 들어온 부두교와 그 사제(주술사)는 악마화되어 버렸습니다. 백인 중심의 미국 사회에서 흑인들의 종교가 가진 역능은 폄하되고 축소되어야 했기 때문이죠. ​ ‘믿는 자’가 흑인 여성 주술사의 존재를 반복적으로 등장시키면서 도전하는 고정관념 중 하나가 바로 이 지점입니다. 덕분에 우리는 아프리카 디아스포라 공동체가 일궈온 문화의 힘을 그 영적 세계 안에서 새롭게 만나게 되는 설렘을 느낄 수 있는데요. 미국의 여전한 인종차별... 영화 <엑소시스트 : 믿는 자>는 이처럼 지정학적 스테레오 타입, 인종 및 젠더 재현, 그리고 종교의 의미 등을 새롭게 탐색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가 원작 ‘엑소시스트’와 극적으로 달라지는 부분은 구마 의식 그 자체라 볼 수 있는데요. ​ 원작에서는 두 명의 권위 있는 남성 사제가 행했던 구마 의식을 이제는 빙의된 두 소녀를 구하고자 하는 공동체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이어받게 됩니다. 고뇌에 찬 남성 사제가 악마와 독대하는 고독한 싸움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하는 공동체적 의례가 클라이맥스를 장식한다니, 영화가 무섭지 않은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어요. ​ 영화에서 흑인인 빅터의 딸 앤절라가 실종되었을 때, 저는 백인인 캐서린이 함께 실종됐다는 사실에 어쩐지 안도의 마음을 느꼈습니다. 미국 사회가 소녀들의 실종을 가볍게 여기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죠. 이런 감각을 만들어내는 인종차별은 그 자체로 공포라 말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두 배로 늘어난... ​ 빙의된 존재가 둘로 늘어나게 되면서 모든 것이 두 배로 늘어난 느낌입니다. 사운드 효과, 시각 효과도 꽉꽉 욱여넣었으나, 공포까지 두 배로 늘어나지는 않은 모습이에요. ​ 캐서린을 연기한 아역 배우 올리비아 오닐의 연기가 그나마 인상적이지만 모든 연출이 엑소시즘을 소재로 한 호러물에서 익히 봐왔던 장르적 장치 안에서 맴돌고 있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어요,. ​ 프리드킨 감독의 <엑소시스트>(1973)에서 악령이 씐 딸을 구하기 위해 엑소시스트를 찾은 엄마 크리스를 연기해 아카데미와 골든글러브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엘런 버스틴이 다시 한번 크리스 역으로 등장하지만 두 작품을 시리즈로 연결 짓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해 보였습니다. 앤젤라는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아이티에서 토착신에 의해 축복을 받은 전력과 함께 무신론자의 아버지의 믿음은 종교적 힘과 믿음까지 더해져 악령과의 싸움에서 겨우 살려 낼 수 있었습니다. ​ 그렇다면 캐서린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는 극장에서 직접 확인하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참고로 쿠키 영상은 없으니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면 극장을 나가시면 됩니다. ​ 결국 이렇게 영화를 제작할 거면 굳이 리부트를 할 필요가 있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게 만드는 작품이었어요. 더욱이 오리지널 캐릭터들까지 왜 섭외했는지도 의문이네요. ​ 플롯이 전개될수록 혼란만 유도시키고 역시나 오컬트 호러 장르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공포 빈도와 장르적 쾌감이 거의 바닥에 떨어져 있다는 지점이었어요. 과연 이 작품이 1973년 <엑소시스트>의 세계관과 함께 한다는 것이 옳은 일일까라는 생각도 들게 만들었던 작품이었습니다. 악마들의 활약도 예상보다 적었으며, 서사 자체가 잘린 모습이었기에 두 시간이란 러닝타임이 상당히 길게 느껴졌던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컬트 마니아분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지... 저 역시 완성도를 떠나서 오컬트 마니아로서 반갑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후 두 작품이 제작될 텐데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제발 이번 1편의 아쉬움을 완벽하게 보완하여 제작했으면 하네요. ​ 그럼 지금까지 영화 <엑소시스트 : 믿는 자> 솔직한 후기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