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owlppami
2023.10.31
영감님의 꿈자리 이야기
미야자키 하야오가 또 은퇴를 번복하고 [바람이 분다] 이후 10년 만에 내놓은 작품입니다. 어쨌거나 거장의 복귀, 역대 최고의 제작비와 7년 이란 최장 제작 기간으로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제목 때문에 원작이 되는 책에도 관심이 쏠렸지만, 내용은 상관없습니다. 그냥 많은 영감을 준 책이라고 해서 극 중에 등장하고 제목으로 채용됐다고 하는군요. 딱히 홍보도 없었고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밖에는 정보도 없고, 일러스트는 새처럼 생긴 희한한 무엇. 정말 보기 전까진 무슨 내용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태평양 전쟁 중인 일본, 군수공장을 운영하는 부유한 집의 아들 '마히토'를 주인공으로 펼쳐지는 꿈같은 모험 이야기입니다. 오랜만에 지브리풍의 그림과 장인들의 손으로 이뤄낸 최고의 작화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꿈같은 모험". 환상적이고 놀라운 상상력의 세상...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일상적으로 잠잘 때 꾸는 그 꿈입니다. 두서없고 뜬금없이, 개연성을 따지는 것조차 의미 없이 상황이 펼쳐지고 당연하다는 듯 따라가는 그런 느낌의 것입니다. 대강 마히토가 모험을 겪고 성장하는 걸로 결론지을 수 있겠지만, 굉장히 산만한 구성의 이야기입니다. 앞서 말한 꿈에 대한 것처럼 개연성을 끼워 넣기조차 힘듭니다. 마히토 외의 캐릭터들도 하나같이 캐릭터성이 오락가락하는 통에 역할이 뭔지 계기가 뭔지 도통 이해가 어렵습니다. 이 작품을 어떻게든 설명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작품 외부의 것들, 미야자키 감독의 일화 등등 곳곳에서 끌어다가 해석에 붙이고 있습니다. 곧 극의 내용만으로는 뭐가 뭐인지 설명이 힘들다는 얘기입니다. 말이 좋아 '작가주의'라고 할까 그저 자다 꾼 꿈 얘기를 정제 없이 그대로 옮긴 듯한 불친절 그 자체에 매우 실망스러운 내용입니다. 딱히 주제가 무엇인지조차 흐릿하게 만드는 난해함은 그야말로 지브리 작품 통틀어 역대 최고, 아이 어른 가리지 않고 많은 이들에게 감명을 주었던 과거 명작들을 생각하면 그 실망감은 더욱 큽니다. 삶에 큰 감명을 받아 제목으로 쓰기까지 한 동명의 책만큼 이 작품이 그만한 감명과 영감을 관객에게 줄 수 있을까... 정말 큰 의문이 남습니다. 고집쟁이로 굳혀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이미지를 다시금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스즈키 토시오 프로듀서 역시 좋은 이미지는 아니죠. 그 고집을 위해 엄청난 시간과 제작비를 들였다는 것에서도 그렇고 끝끝내 후계자를 찾지 못한 채 무너지는 지브리 왕국의 모습을 보는 느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