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스포일러 주의!

'아틱' 초간단 리뷰

1. 문명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고 발전했다. 그 얘기는 다시 말해 문명은 무슨 수를 써도 인간 중심적이라는 것이다. 그 안에서 인간적이지 않은 것들에 대한 배려를 시도한다고 해도 문명이 인간 중심적인 것은 막을 수 없는 일이다. 이는 문명으로부터 벗어난 인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자연으로 탐험을 떠난 인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명에 기대서 산다. 그리고 자연으로 떠난 인간의 최종 목표는 '문명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문명은 그만큼 모든 곳에 있으며 모든 것을 아우른다. 그렇다면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문명으로부터 떨어진 곳에서 인간은 얼마나 강인한 생명력을 가질 수 있으며 문명으로 회귀는 얼마나 고통스러워야 하는가. 이는 당연하게 누리는 일상이 얼마나 큰 고통을 머금어야 이뤄지는 것인지 보여주는 것과 같다. 2. 영화 '아틱'의 주인공 오버가드(매즈 미켈슨)는 북극 한 가운데 조난됐다. 영화는 그가 어떻게 조난됐으며 문명사회에서 뭘 하던 사람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마치 돈 시겔 감독의 '알카트라즈 탈출' 속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어디서 왔고 뭘 했는지 중요하지 않다. 그는 그저 북극에 고립됐고, 살아서 나가면 될 뿐이다. 그러니깐 '아틱'의 세계에서 이 남자는 문명에서 온 남자가 아닌 문명의 바깥에서 시작하는 남자다(우리는 그가 사람들과 어울려 도시문명에서 사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이 남자에게는 칼과 부서진 비행기, 최소한의 생존도구가 있다. 그러나 이는 문명사회의 물건이라고 볼 수 없다. 그 기능은 동굴과 구덩이, 발톱과 같다(심지어 이 남자에게는 한동안 불도 없었다). 3. 이 남자가 문명으로 돌아가려는 활동은 소극적이었다. 하루에 한 번씩 전파 신호(문명사회의 것)를 감지하려는게 활동의 전부다. 이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방향조차 알 수 없는 북극에서 섣불리 보금자리를 버렸다가는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자신을 구조하러 온 헬기가 난기류에 부딪혀 추락하게 된다. 남자는 조종사 한 명을 구하지만 부상이 심각하다. 그리고 그는 몇 가지 문명사회의 물건을 얻는다(불, 지도, 썰매, 컵라면). 그제서야 그는 북극을 탈출해 돌아가려고 한다. 사실 부상당한 조종사에 대한 책임을 지려는 의도도 있어 보인다. 이 남자가 생존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데는 몇 가지 계기가 있다. 문명사회의 도구를 얻었고 자신 때문에 부상당한 사람을 구해줘야 한다. 그러나 도구와 의지를 가지고 길을 떠나기에 북극은 그리 녹록치 않다. 이때부터 '문명사회로의 회귀'는 고통의 연속이다. 4. 영화(=자연)는 오버가드를 극한으로 몰아넣는다. 문명의 바깥에서 태어난 이 남자가 문명으로 돌아가는 길에 최선을 다해 훼방을 놓겠다는 심산이다. 이는 다시 말해 인간이 문명으로 돌아가는 길은 고통스러워야 한다는 주장과 같다. 인간이 당연한 듯 누리는 편리는 수많은 고통을 통해 얻어진 것이다. 그런데 그 고통은 원래 인간의 것이 아니다. 인간이 문명으로 돌아가 편리를 얻는 과정에서 파괴된 것은 자연이고 고통을 얻는 것은 동물들이다. 영화는 그 관계를 자연스럽게 인간으로 변화시킨다. 이는 당연한 메시지다. 자연이 파괴돼서 동물이 고통받고, 그 다음 차례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배경이 북극인 점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5. '아틱'은 기어이 오버가드와 부상당한 조종사가 문명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비록 또 다른 헬기가 이들을 발견했지만 생사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자연과 인과(因果, 혹은 신)는 인간의 생사에 대해 크게 궁금해 하지 않는다. 그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갈 뿐이며 오버가드는 북극 어딘가의 한 점에 불과하다. 인간이 문명에서 살 수 있는 이유는 수많은 점들이 모여서 자신들을 보호해가며 살기 때문이다. 문명은 인간이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방어장치와 같다. 이 방어장치는 자연을 공격한다. 자연 역시 방어장치를 가지고 있다. 결국 문명사회 이후 인류의 역사는 자연과의 끝없는 방어로 이뤄진 것이다. 이것은 오버가드가 문명으로 돌아가려는 이유와도 같다. 자신을 방어해야 한다는 명분 때문이다. 6. '아틱'에서 인간이 문명으로 회귀하는 길은 고통스럽다. 자연 안에는 인간만 사는 것이 아니고 문명 안에서는 인간만 살기 때문이다. 오버가드는 질서를 거슬러 문명으로 돌아가려 한다. 그것은 그의 생존본능이기 때문이다. 본능과 질서는 충돌한다. 질서의 힘은 강력하고 본능은 무릎을 꿇는다. 이는 인간이 자연의 질서를 넘보지 말아야 하는 이유와 같다. 문명사회는 이미 많은 부분 자연의 영역을 넘봤다. 자연은 아주 조용히 자신들의 질서를 바로 잡을 것이다. 인간을 품고 있는 자연이 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 인간을 버려야 한다고 판단한다면, 그는 언제고 인간을 버릴 것이다. 재앙은 그때 시작된다. 7. 결론: '아틱'은 베어 그릴스의 생존기와 같은 영화다. 다만 생존환경이 훨씬 더 처절할 뿐이다. 북극의 질서에서 인간은 필요하지 않은 존재다. '아틱'은 인간이 문명으로 회귀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이야기다. 자연(=북극)에게 문명은 큰 재앙이기 때문이다. 영화 '아틱'은 결국 자연과 인간의 싸움을 다룬 영화다. 치열하게 살려는 인간과 그를 살려두지 않으려는 자연의 싸움이다. 참 얄궂게도 영화는 승자를 보여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