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JE
2019.03.27
스포일러 주의!
<산책하는 침략자>보다 훨씬 절망적인 분위기 덕에 <예조>는 종전의 기요시 영화에서 보던 음침함으로 가득하다. 역시나 오프닝에서부터 일렁이는 커튼, 기이하게 화면을 분할하는 기둥이나 난간, 또는 격자무늬의 구조물, 맞은편 건물의 빛, 그리고 그림자. 피사체에 앞서 먼저 존재를 드러내는 그림자가 유난히 괴이하게 다가온다. 존재하는 듯 존재하지 않는 존재. 기요시의 유령, 혹은 영화론의 연장일까. 어찌 보면 야마기와가 호소하는 고통, 즉 심리적인 고통 역시 기요시적인 '유령' 같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기요시 영화에 대한 감상을 말할 때 '스미다'라는 단어만큼 (추상적이지만 또 그만큼) 적확한 표현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카메라의 세밀한 움직임과 밀도 높은 미장센으로 이루어진 숏이 유령적인 공기로 가득찬 공간을 형성하고, 단순히 서사에만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자체로 불길하고 불온하고 불안하게 스며든다. 기요시스러운 분위기가 탁월하게 퍼지는 만큼 (물론 개인적으론 <예조>보다 <산책하는 침략자>에 좀 더 찬탄스러운 지점이 있다고도 생각하지만) 조금 편협하게 말하면, <산책하는 침략자>가 <예조>를 위한 초석이 아닌가 싶을 정도의 감흥이 머문다. 이례적으로 경쾌했던 <산책하는 침략자>가 제목 그대로 산책자적인 시선으로 우리를 살폈다면, <예조>는 그 반대편, 그들이 보던 풍경 안쪽에서, 끝내 결말로 치달아야 하는 절망을 비춘다. 그럼에도 또 사랑. 아마도 <해안가로의 여행>에서부터 유난히 강조되는 기요시 월드의 사랑이 <산책...>에 이어 <예조>에서도 낭만과 절망 사이 어딘가에서 우두커니 멈춰선다. 이 유보적인 두 편의 묵시록은, 서로 정반대에 머물면서도, 마치 거울처럼 하나의 상을 이룬다. 어쩐지 그 자체가 <산책...>의 나루미와 신지, <예조>의 에츠코와 야미가와의 관계를 닮았다. 그러니까, <산책...>가 사실상 멜로드라마였듯, 호러의 장르를 더 취하고 있는 <예조> 역시 멜로의 연장에 놓여 있다. 세상보다 당신을 택하는 낭만. 모든 게 끝나는 (혹은 시작되는) 순간의 결합. 특히 후반부 화면을 거대하게 분할하는 집안의 벽 앞에서의 키스. 앞서 오프닝에서 두 사람은 그 앞에서 (동선이) 갈라졌다. 이어지는 테이크에서도 이중의 프레임과 같은 부엌 구조가 두 사람을 떼어놓고, 동선마저 반대로 향한다. 에츠코는 야미가와가 사라진 뒤에야 그가 있던 자리를 채우고 그가 보던 것을 바라봤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갈라지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가르던 것 앞에서 당당히 결합을 선언한다. 물론 여전히 (후경의) 세계는 분할되고 있으나, 두 사람만은 마지막까지 함께하려 한다. 클로즈업으로 다가선 카메라처럼, 어쩌면 두 사람만이 곧 세계다. 또한 "모두 죽음 직전을 살아간다"는 마카베의 말. 그의 말마따나 인간의 운명이 죽음이라면, 삶 자체가 곧 묵시록일진데, 그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끊어지지 않는 게 사랑이라면, 묵시록을 끝내는 유일한 방법도 사랑은 아닐까. 마치 한 편의 씻김굿과도 같던 <해안가로의 여행>처럼, 혹시 기요시의 사랑은 <큐어>나 <회로> 등에서 그려오던 지독한 절망에 대한 일말의 (자기 반성적인) 위로는 아닐까. 더 없이 절망적인 풍경으로 그려졌지만, 사실 빗속에 남겨진 두 사람은, <산책하는 침략자>만큼이나 절망이 아닌 희망의 지속인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