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필그리미지'는 십자군 전쟁 시기에 전통적으로 보호해오던 성물을 로마로 옮기기 위해 떠난 아일랜드의 수도승들과 프랑스 수도승과 군인들의 이야기다. 톰 홀랜드, 존 번탈, 리처드 아미티지 같은 유명 배우들을 내세운 이 영화는 시대적 배경에서 있을 법한 픽션 이야기를 전개하며, 신앙과 구원에 대한 상당히 흥미로운 시대극을 선보인다. 요즘 중세 배경 영화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이 영화의 의상과 미술, 그리고 피 튀기는 액션 시퀀스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아일랜드의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 삼는다는 점에서 시각적으로는 언제나 신비로운 기운을 주다가, 망치와 칼로 서로의 목을 베는 잔인한 전투들에서 십자군이라는 깃발 아래서, 신앙을 명분으로 살육을 일 삼은 시대상을 이 이야기 속에서 잘 반영한 것 같다. 여기서만으로도 영화의 주제를 엿볼 수 있다. 신앙의 이름으로 무엇을 해야하는가에 대한 탐색이다. 신앙의 이름으로 생명을 살릴 것이냐, 죽음을 불러올 것이냐. 믿음이라는 희망과 구원이라는 두려움의 균형을 어떻게 유지할 것이냐. 위험천만한 모험을 떠나는 수도승들과 군인들의 행동과 말 속에서 영화는 이러한 주제들을 던진다. 이 영화는 세 가지 언어, 아일랜드어, 프랑스어 그리고 영어를 모두 사용한다. 이는 단순히 고증을 위한 것은 아닐 것이다. 각 언어마다 영화 속에서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일랜드 수도승들은 아일랜드어로 서로의 평안을 기원하며, 프랑스인들은 프랑스어로 전쟁과 희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이 두 세계는 영어라는 중간지대에서 만난다. 하지만 점차 영어의 비중이 줄고 소통이 단절되기 시작하며, 캐릭터들은 각자 만의 세상, 다시 말해 각자가 생각하는 신앙과 구원의 관념을 더욱 더 고집한다. 거기서 영화는 대립과 대비를 만들어내며, 믿음으로 폭력을 행사한 중세의 이야기 속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관객들에게 신앙의 본질을 묻는다. 배우들의 연기는 모두 탁월했다. 세상 물정 모르던 아이에서 점차 자신의 신앙심을 굳혀가는 톰 홀랜드, 강경한 신앙 뒤에 있는 어두운 면들과 내적 갈등들을 조금씩 드러내는 리처드 아미티지, 그리고 대사 없이도 카리스마와 깊은 과거를 암시하는 존 번탈까지 정말 훌륭했다. 존 번탈의 캐릭터는 영화 내내 상당히 모호하게 묘사되고, 아마 영화는 굳이 친절히 설명 안해도 관객들이 알아서 상상하길 바랬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맥락과 정보가 있었으면 괜찮았을 것 같다. '필그리미지'는 기독교가 돌을 맞던 장면으로 시작하여, 기독교가 돌을 던지는 시대로 넘어간다. 어느 종교를 믿던 이 종교에 대한 신앙과 두려움, 그리고 구원 혹은 해탈에 대한 기원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야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영화는 액션 어드벤쳐의 공식으로 그런 주제들을 다루려고 한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하고 싶다. 캐릭터들을 조금 더 깊게 다루고, 이야기도 조금 덜 뻔하게 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으나, 현재까지도 유효한 주제를 이야기하기에 걸맞은 시대상에서 그 시대상과도 어울리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짜기도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