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두통
2019.04.29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 당신은 누군가가 벽돌을 나르고 시멘트를 발라 지은 집에 살며, 홀로 집에 있더라도, 누군가가 만든 가구에 앉아 쉬고, 잠에 든다. 전파 또한 당신을 감싸고 있다. 그것으로 당신은 누군가와 연결되어있다. 전화를 하는 시간은 줄어도 핸드폰을 들여다 보는 시간은 늘었다. 역시 누군가가, 그것도 여러사람이 함께 만든 냉장고 안에는 많은 이들이 기르고 가꾼 음식이 있다. 홀로 식탁에 앉았지만 당신, 수많은 이와 더불어 먹고 마시며 잠든다. 당신은 사실로 혼자가 아니다. 하지만 당신은 혼자라고 느낀다. 나는 사랑할 사람이 없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도 없다는 생각이 들때, 길을 잃은 느낌이다. 그것이 사랑이었을까, 숱한 밤을 자다가 깨다가 이를 갈다가 기도한다. 곁에 누가 있어도 혼자라고 느낀다. 그 사람이 나를 몰라주어서 내가 그사람을 모르겠어서. 아니, 이유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곁에 누가 있을 때의 외로움은 더 지독하다. 분노까지 쌓인다. 당신은 사랑받을만한 사람이다. 당신은 행복할 자격이 있다. 당신의 인생은 소중하다. 그러나 사랑이 뭔가. 특히나 남녀간의 사랑이 뭔가. 나는 정말 사랑받을만한 사람이며 내 인생은 가치가 있는가? 그렇다면 모두가 제 짝을 만나서 행복하게 살게 되는가? 그렇지 않으면 그 인생은 문제가 있거나 미완인걸까? 소중하지 않은 인생과 사랑받지 못할 만한 사람이 도대체 있는가? 사랑이 없다면, 그 인생은 무엇이 되는걸까, 정말 이 실망, 이게 다일까? 나는 지쳐서, 사랑이야기는 이제 그만 하고 싶다. '사랑이 없는 시대' 라는 영화 트래일러의 문구가 내 몸에 가시처럼 박혔다. '리바이어던' 감독의 신작이다. 아직 리바이어던을 보진 못했지만, 그 영화가 무척 좋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사랑이 없는 시대'에 대한 변주는 여러 영화에서 시도되었다. 나는 좁은 머리와 얕은 경험을 굴려 어차피 사랑이 뭔지 고심하고 외로운 사람들을 보여주다가 애매하게 끝을 내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그 가시가 잘지만 질기다. 고마운 가시덕에, 나는 피곤한 몸을 끌고 조금 두렵고 귀찮은 맘을 안고, 주말 극장을 찾았다. 나는 이 시대가 사랑이 없는 것까진 모르겠으나 사랑을 하기에 매우 어려운 때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내 예상대로 지지고 볶는 파탄 난 부부를 보여준다. 보기만 하면 으르렁 거리고, 미워죽겠다. 내 인생을 망친 괴물같기만하다. 그러나 그들도 소중한, 사랑받기위해 태어난 사람들이라 그 와중에도 새로운 사랑을 찾았고 그것으로 드디어 행복을 누리며 새인생을 계획한다. 하지만, 거기에 우는 아이. 입을 틀어막고 어둠 속에 숨어 꺼이꺼이 우는 아이가 있었다.. 어느때고 눈물이 자꾸 흘러서 혼나는 아이가 있었다. 창밖의 사람들을 오래오래 바라보던 그 아이가. 아이는 재빨리 사랑 없는 세상을 탈출한다. 그날 아이는, 이혼을 하는 부모님이 누구도 자신을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이의 엄마와 아빠가 각자 새로운 사랑의 품 안에서 과거와 미래를 달콤하게 속삭이며 잠든 동안, 아이는 바깥 어딘가에 있었다. 아마도 드디어 실컷 울었으리라. 사랑이 없다면, 우리의 인생은 무엇이 되는걸까. 아이의 부모는 아이가 집을 떠난지 이틀이 지나서야 알게되고, 경찰에 신고한다. 경찰이라고 뾰족한 수는 없다. 원리원칙만 말한다. 그러다가, 자원봉사 수색단에 연락해보라고 조언을 한다. 부모(아이의 엄마다 사실. 아이의 아빠는 그냥 두면 올거라는 말을 되풀이한다.)는 자포자기하여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자원봉사 수색단에 연락한다. 자원봉사자들이 모여들고 움직인다. 이제 이 세계는 달라진다. 사랑이 있던 없던 달라진다. 아이의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던 사랑하지 않던, 그 부부의 사랑이 회복되던 서로를 용서하던, 그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지금 중요한 것은, 아이가 홀로 바깥에 있다는 사실, 이 추운 날씨에 아이가 홀로 어딘지 모를 곳에 있다는 것이다. 자원봉사단은 전쟁하지 않는 군대처럼, 일사천리로 매우 조직적이고 빠르게 사태를 파악하고 행동에 착수한다. 원칙을 지키고, 서로를 돕는다. 그 너른 벌판에, 안개낀 숲에서 조직적으로 아이를 찾고,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 장면에서 나는 드디어 울음이 터졌다. 차가운 마음으로 스크린을 보다가 가슴이 너무 뜨거워져서 숨을 쌔근쌔근 쉬었다. "알로샤!" "알로샤!" 우리는 너를 찾고있어, 알로샤. 알로샤는 그 소리를 들었을까? 혹시나 희미하게라도 듣지는 않았을까? 알로샤, 알로샤, 그 소리가 나를 부르는 것만 같아서 더 눈물이 난다. 나는 나 여기 있다고 대답하고 싶은데 목이 메인다. 자원봉사단의 적극적이고 조직적인 수색작업과 아이 아빠의 넋이 나간듯한 표정은 대조적이어서, 보는 내내 마음에 큰 울림이 되었다. 내가 눈물에다가 콧물까지 흘린 결정적 장면은, 아이가 숨어들었던 폐건물을 보여줄 때다. 유리가시가 사방에 깔려있고, 뚫린 벽으로는 하얗게 내리는 눈이 들이치고, 잿빛에다가 구정물은 여기저기 고여있다. 그 커다랗고 비어있고 위험한 공간은 어쩌면 내 마음에 확대경을 들이대 촬영한 것은 아닌지 뜨끔하고 만다. 아이는 거기 있었다. 거기서 혼자였다. 혼자라고 절실히 생각했을 것이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나는 영화를 보며 나의 할일을 찾았다. 나는 사랑이 무엇인지, 사랑이 어디에 있는지 찾기보다, 지금 자원(自願)할 것이다. 사랑에 자원할 것이다. 사랑의 환상을 지울 것이다. 상식적이고 친절한, 성실하고 적극적인 시민이 될 것이다. 영화속 자원봉사단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기본은 어느 시대, 어느 곳에나 필요하다. 러시아에도, 이 세계에도, 내 인생에도. 중요한 것은, 누군가 홀로 이 추운 바깥에 있다는 것이다. 혼자가 아닌데 혼자라고 생각하며 울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보러 가야지. 한번더, 한번더. **극장에서 이 영화를 관람한다는 황홀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