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잘못된 도시락 배달은 감정을 싣고

아마도 5년 전, 4월의 어느 날 제목만 보고 포스터를 보고 봄철에 어울리는 인도식 로맨스 영화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감상했던 영화 런치박스. 스토리라인만 봤을 땐 사랑방 어머니와 손님이 얼핏 생각나기도 했기에 엄청나게 기대했었다. 하지만 로맨스보다 인생의 씁쓸함과 잔잔함이 여백의 미로 다가오는 작품이었다. 영국 왕이 인정하고, 하버드 대학에서 연구했을 정도로 오차 없는 인도 뭄바이의 도시락 배달 서비스( Dabbawalas )의 실수로 잘못 전달된 도시락을 받는 정년퇴직을 앞둔 사잔. 그 도시락은 일로 바쁜 남편과 소원해진 관계를 회복하고자 각별한 정성을 기울여서 만든 일라의 도시락이었다. 너무나 맛있는 도시락에 감동받은 사잔은 도시락 전문점에 퇴직 사실을 통보하며 고맙다는 말을 하게 되고, 일라는 깔끔하게 비운 도시락을 보면서 남편을 기다리며 꽃단장을 하지만, 웬일인지 남편은 별 반응도 없고 자신이 만든 적 없는 콜리플라워가 들어간 도시락이 맛있었다는 말만 한다. 다른 사람에게 배달되었다는 걸 알게 된 일라는 위층 이모의 충고를 받아서, 도시락이 잘못 갔다는 쪽지와 함께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을 보내지만, 다시 받은 쪽지는 너무나 무례하게도 음식의 간이 너무 짜다는 답변뿐. 정성스럽게 쌌던 도시락에 이어 이번에도 고맙다는 말은커녕, 무례한 사잔의 멘트에 위층 이모는 매운맛을 보여주라며 고추를 보내고 일라는 쪽지는 생략하고 매운맛이 가득한 도시락을 보낸다. 매운맛이 가득한 도시락을 맛보고 바나나 2개를 먹으면서 간신히 속을 달랜 사잔은 도시락의 맛 평가가 아닌, 이 도시에는 바나나 몇 개로 배를 채우는 사람들이 많다며 자신 주변의 이야기를 쪽지에 담기 시작한다. 그렇게 잘못 배달된 도시락으로 시작된 인연은 편지를 서로 주고받고, 일라가 해준 음식을 사잔이 먹으면서 점차 가까워져 간다. 어쩌면 서로 얼굴을 보지 못했기에 더 쉽게 마음속의 말들을 주고받을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자신의 고민거리를 터놓거나, 조언을 해주면서 서로 의지해주던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공간에 있지만, 마치 같은 공간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그리고 어떤 사건을 계기로 두 사람에게는 직접 만나야 할 상황이 다가온다. 과연, 두 사람은 만날 수 있을까? ​영화상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각자 다른 외로움을 지닌 사람들이다. 사잔은 아내를 사별하고 정년퇴직을 앞둔 인물이며, 저녁시간엔 담배를 피우며 단란하게 식사하는 가족의 모습을 훔쳐보는 걸로 외로움을 달랜다. 일라는 일에 바쁘고, 핸드폰만 쳐다보는 남편과의 권태기에 외로움을 느끼며, 위층 이모와 대화하고, 귀여운 딸을 바라보면서 외로움을 달랜다. 딸은 부모님의 심상치 않은 상황을 눈치 보면서 외로움을 느끼고 인형과 논다. 사잔의 후임으로 들어온 샤이크 또한 고아 출신에 온갖 거짓말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젊은 세대이다. 그에게는 일단 결혼과 직장이라는 목표가 있고, 결혼 상대자가 있기에 외로움을 버틸 수 있다. 아픈 아빠의 병수발을 드는 일라의 어머니와 15년째 식물인간 상태인 남편을 돌보는 위층 이모 또한 외로운 사람들이다. 외로움의 무게는 어떻게 다가오는지, 때론 예고 없이 태풍처럼 몰아닥치는 공허한 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를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잘못 탄 기차가 목적지로 데려다줄 수도 있다는 대사처럼 사잔과 일라의 연결고리가 된 도시락 또한 잘못 배달되어 갔었다. 하지만 그것을 계기로 두 사람은 가까워지게 된다. 절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삶 속에서 깊은 슬픔과 좌절을 겪지도 하지만, 때론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일들이 이뤄지기도, 우연히 만들어낸 필연이 기적처럼 생기기도 한다. 인생은 알 수 없는 운명에 의해 흔들리기도 하지만, 그 알 수 없음이 때로는 정답이 될 수도 있다. 삶은 그런 것이다. 그렇기에 더욱 진한 감정의 여운이 남았던 영화이기도 하다. 첫 장편 데뷔작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리테쉬 바트라 감독의 세련된 연출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며, 그의 앞으로의 작품들이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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