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규민
2019.05.30
스포일러 주의!
5월말, 며칠 뒤면 곧 6월. 다행스럽게도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의 밤공기는 아직까지는 시원하지만 엄연히 봄은 이미 갔고 오후 햇살은 땀을 부르는 초여름에 들어섰다. 추위를 잘 타는 필자는 겨울보다 여름을 선호하긴 하지만 살인적인 더위는 물론 보통 사람들처럼 버티기 힘들 뿐더러 싫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그런 더위보다도 더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것이 있는데 바로 타인의 냄새이다. 물론 사람이 아닌 다른 길거리의 쓰레기라던지 알 수 없는 냄새들도 코 끝을 엄청나게 괴롭히지만 영화관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으로서 그리고 다른 일상생활을 하면서 스쳐지나갈 사람들로부터 나는 냄새는 그야말로 다양하다. 각자의 체질이 다르기에 그에 따라 체취와 냄새들이 상상을 초월하고 그런 냄새는 다른 계절보다도 열과 더위가 가득한 여름에 더 빠르게 퍼지기에 여름은 확실히 그 어떤 계절보다도 냄새의 계절이다. 그래서 어쩌면 다행이라면 다행으로 영화라는 매체는 시각과 청각만으로(물론 4DX는 제외^^:) 사람들에게 다가서는데 <기생충>은 그 시청각적인 묘사를 엄청나게 극대화하여 마치 정말 냄새를 맡은 것 같은 공감각적인 연출이 느껴지는 듯한 소름돋는 2시간동안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람도 아닌데 마치 어떤 공간이 조금이라도 살 수 있는 공기와 햇살을 마시기 위해 저 높이 위치한 곳에 창문이 있다. 그 곳은 반지하라고 불리는 곳으로 그 창문을 통해서 그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그리고 그 창 너머 차와 사람들이 보이는데 가까워질수록 하체나 바퀴만 보이고 그런 시야와 함께 이런저런 소리와 소음들로 가득찬다. 그런 와중에 카메라가 기택(최우식)을 비추는데 그는 핸드폰을 들고 엄청난 고뇌를 하는 듯 보인다. 이것이 영화의 첫 시작. 그러고 얼마 안 지나서 그동안 궁금했던 기정(박소담)과 기택이 화장실 변기옆에서 코리안 포즈를 잡고서 스마트폰을 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바로 그동안 비밀리에 공유하여 썼던 와이파이가 암호화되어서 더이상은 쓸 수 없어져서 새로운 와이파이를 찾기 위한 몸부림의 찰나였던 것이다. 시작부터 그렇게 무료 와이파이를 찾는 모습에서 현재 한국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엿보이며 공감을 산다. 하지만 이야기가 무르익을수록 전원백수인 기택네 가족과 동익네 가족의 모습에서 엄청난 차이를 느끼게 되면서 대부분의 관객들도 어쩌면 몰랐을, 혹은 자신도 모르게 외면했던 기택네 가족과 같은 서민들의 참상을 지독하게 느끼게 된다. 우리가 매년 그 맘때쯤 더위보다도 쏟아지는 폭우에 불편을 겪었던 그 때에 우리보다 불편 그 이상으로 아파했을 그 모습을 뉴스로만 보면서 느꼈던 그 현실을 너무 참혹하고 서글프게 다가왔던 압도적인 그 장면은 정말로 이 영화를 꼭 봐야하는 이유 중 단연컨데 대표라고 할 수 있을만큼 절절하였다. 독님피셜로 다 알고 있겠지만 현제목 이전에는 "데칼코마니"라는 제목이었는데 그 또한 영화와 매우 잘 어울린다. 우리는 꼭 닮은 것만 같다고 하지 않기 때문인데 대칭점을 기준으로써 서로 다른 것이 마주하여 있을 때도 같다고 하는데 그런 점에서 기택네 가족과 동익네 가족은 매우 상반된 위치에서 엄청난 대구를 이루는 데칼코마니이다. 예를 들면 두 집안이 손님을 대할 때, 충숙(장혜진)은 기우의 친구가 산수경석을 가지고 기택네 방문했을 때 먹을거나 사오지라고 했지만 연교(조여정)는 아들의 생일파티에 초대하는 손님들에게 선물은 절대 가져오지 말라고 하는 태도나 서로가 사는 집의 위치에서 느껴지는 상층과 하층과 같은 모습이 연상되는 것에서 엄청난 대비를 느낄 수 있다. 그러면서도 <기생충>이라는 제목과 같이 동익네 가족을 숙주로 두고 모든 가족이 다 기생하면서 사는 모습에서 점차 닮아가는 것 또한 데칼코마니라고 볼 수 있는데 이 때에 처음에 그들이 마셨던 맥주가 값싼 맥주에서 비싼 맥주로, 그리고 나중에는 양주로 바뀌는 모습과 같이 수 많은 데칼코마니들을 확인가능하다. 봉테일이라는 표현을 감독님께서 싫어한다고는 하시지만 사실상 엄청난 세부묘사들이 상당한데 이는 또 한국인들이여야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이 많은데 영화의 포문을 열었던 와이파이부터 값싼 필라이트 맥주와 비싼 맥주로 볼 수 있는 삿뽀로 맥주, 대만카스테라나 산수경석과 같은 재물운을 준다는 미신요소, 학벌컴플렉스, 독도는 우리땅을 기반으로한 암기송, 반지하와 법 관련 서적들, 그리고 짜파구리나 스카우트, 미세먼지 등등 있는데 그 또한 나라에서도 사소한 차이로 계급 아닌 계급사회를 나뉠 수 있는 요소들로 재해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묘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면서도 친구 민혁(박서준)이 가져다 준 산수경석은 기우가 습관적으로 자주썼던 표현을 빌려서 상당히 상징적 요소라고 볼 수 있는데 그것으로 하여금 기택네가 취직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그것이 엄청난 희망을 가져다준 것처럼 보였지만 갈수록 알 수 없는 미로 속에서 헤매이면서도 숙주로부터 빠져나가는 것이 힘든 자신들의 모습을 떠올린 기우의 손에 마법처럼 떠오른 산수경석을 손에 쥔 그 순간을 보면서 엄청난 전율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런 기우는 결국 자신이 모든 일을 책임지겠다며 말하기도 하고 나중에는 자연으로 다시 돌려놓는 모습에서 결국 돌일 뿐인 존재에 대해서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허황된지를 깨닫게 해준다. 와이파이를 시작으로 공감을 향유하는 것으로 서서히 이야깃거리들이 진행된 듯 하지만 영화 내내 그들의 대사 속에서도 있고 실제로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것은 바로 그들의 '계획'이다. 와이파이가 끊긴 전원백수 가장인 기택에게 욕하면서 계획이 뭐냐고 묻는 아내 충숙의 대사를 시작으로 계속해서 그들은 끊임없이 계획을 갈구한다. 그 계획에 대한 생각의 태도로 기택네 가족을 살펴볼 수 있는데 우선 민혁의 부탁으로 포문을 열었던 기우는 N수생으로 시작은 했지만 결과를 제대로 맺지 못하는 사람으로 계속해서 실패와 시작을 반복 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기택은 한 번도 자신의 계획에 대해서 말하지 못하고 타인의 계획에 의해 행동하다가 나중에서 밝힌 그의 계획은 무계획이라는 것을 보건데 그에겐 살면서 계획이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을 뿐더러 그저 현재상황에 놓였을 때 살 수 있는 대처정도만 하는 인물로 마지막에 진정한 기생충처럼 가장 깊은 곳에 쳐박혀버리게 된 인물이다. 다음으로 충숙 또한 구체적인 계획은 말로 드러나진 않지만 행동으로 볼 수 있는데 또 하나의 가장이자 가족의 어른으로서 기택을 대신하여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으로 가족을 먹여살리는(피자박스 알바), 혹은 한국이라는 국가에서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가족을 지키는 것이 그녀의 계획이라고 할 수 있다. 충숙이 가정부로서 모든 것을 지켜보면서도 자신의 식구를 돌보는 것과 더불어 기택, 기우, 그리고 기정을 동익네서 탈출시키기도 하고 클라이막스에서 칼부림 속에서 몸을 던진 것 또한 충숙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기정은 가장 재능이 특출나서 다른 기택네 가족들과 달리 누구의 대체제가 아닌 독립적인 사람으로 드러나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계획적인 인물이어서 기택네 가족들보다 월등한 면모를 보이는데 이는 후에 가장 계획과는 무관해서 정말 의외의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기정의 죽음이다. 물론 자살은 계획된 죽음이지만 보통은 '죽음에는 순서가 없다'는 말처럼 대게는 죽음은 계획할 수 없는 의외이다. 그리고 생명 또한 의학을 벗어난 순간에 기적으로써 생존하기도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마치 죽은 줄 알았던 기우가 의외로 살게된 이유라 본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동익 또한 죽게 된 이유로 바라 볼 수 있다. 사실 엄청나게 뻔뻔하도록 모든 걸 속이고 나름대로의 계획에 맞추어 기생충처럼 동익네에게 붙은 기택네이지만 그들이 결코 속일 수 없었던 것은 냄새였다. 연교의 아들인 다송이가 기택, 충숙, 그리고 기정에게 같은 냄새가 난다고 했던 것을 빌미로 계속해서 기택만 유독 냄새에 신경쓰며 자신의 냄새를 맡게 되는데 사실 우리는 스스로의 냄새를 맡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상대의 행동으로 보아 눈치껏 알아차리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런 와중에 동익은 연교에게 말하길 기택은 넘을 듯 말 듯 선을 넘지 않지만 냄새가 선을 넘어온다고 말한다. 마치 오래된 무말랭이와 비슷한 표현하기 힘들지만 불쾌한 냄새가 기택에게서 난다고. 그것을 듣게 된 기택은 신경쓰이는 것 이상으로 집착하게 된다. 냄새는 그 어떤 형태로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선을 명확하기 구분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이다. 향수와 같은 것을 사용한다고 해도 영원히 지속되지 않고 본연의 냄새가 드러나기 마련. 따라서 사람들은 서로의 냄새에 익숙해져가기 보단 참는 것이다. 하지만 타인과의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서 그 어떤 보이지 않은 형태임에도 어떻게든 서로의 선을 벗어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감내한다. 그런데 만약 그 선을 넘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 선을 넘으면 누구도 예측불가능한 아이러니한 삶이 벌어지는데 그것이 지금 한국의 현실이고 <기생충> 은 그 이후에 삶까지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 선은 가장 금기시되는 살인으로 그 이후, 기정은 죽었고 동익을 죽인 기택은 홀연히 사라졌고 죽다살아난 기우와 운좋게 상황상 정당방위와 헤아림으로써 판결받은 집행유예로 보낸 것은 운이면서도 운이 아니다. 계속된 시작과 실패를 마주해야할 기우의 숙명. 놓아주었지만 계속해서 따라다니는 산수경석, 사실 그것은 민혁의 그림자로 여전히도 그런 삶을 꿈꾼다. 누구나 그런 부유한 삶을 꿈꾸기 떄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놓을 수 없는 것, 바로 가족인데 기우는 아버지 기택의 자취를 찾기위해 노력하는데 그 또한 엄청난 희망이면서 희망이 아니다. 기우는 기택을 위해 열심히 살아갈테지만,그 날을 기다리겠지만 그 날은 오지 않을테니까. 기택 또한 그런 날은 오지 않을테니까. 영화의 첫 시작에서 본 듯한 장면이 보인다. 반 지하 창문 너머를 비추고 핸드폰을 하는 기우를 비추는데 야속하게도 계절은 여름에서 계절로 변했다. 눈이 너무 내리는데 햇살 또한 비추지 않고 불도 켜지않고 있는, 슬프게도 그들의 삶은 열린 결말이 아니라 갇힌 결말이다. 삶은 계속되겠지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