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당신들에서부터 나 자신까지, FULLASHBACK

얼마 전 호아킨 피닉스와 루니 마라의 약혼 발표 소식을 접했다. 영화 <막달라 마리아: 부활의 증인>을 찍으며 사귀기 시작했다는데, 그 이전에도 함께 했었던 <그녀>에서의 둘의 관계가 떠올라 괜스레 흥미롭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도 너무나 좋아하는 이 두 배우의 예쁜 소식을 손에 꼭 쥐고 본 <돈 워리>는 영화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굉장히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영화는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당해 전신마비가 된 알코올 중독자가 카툰 작가로 재기하는, ‘존 캘러핸’의 실화를 다루고 있다. 한글 제목은 어쩔 수 없이 <돈 워리>로 줄였겠지만 실제 존 캘러핸의 자서전 제목이기도 한 영화의 원제<Don't Worry, He Won't Get Far on Foot>은 그의 삶과 그 자신을 관통하는 듯하여 훨씬 울림이 짙다. 사실 이런 실화를 펼쳐내는 영화들은 대부분 크게 새롭지 않다. 실화 주인공들의 삶이 영화라는 그릇 안에 온전히 담기지 못할뿐더러 영화가 취하는 구성이 그들의 치열함을 지루함으로 역류시켜버릴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필수적으로 따라붙는 ‘감동 실화’ 딱지는 오히려 그들의 이야기를 욕되게 하기도 한다. 해서 이런 암초들을 부숴버릴 돌파구가 필요한 법인데, 호평을 받는 작품들은 가장 직관적으로 효과가 나타나는 ‘배우’로 그 추진력을 얻는다. <스트롱거>에 제이크 질렌할이 있었다면, <돈 워리>에는 호아킨 피닉스가 있다. 더이상 무슨 대단한 수식어가 또 필요할까 생각이 들 정도로 호아킨 피닉스는 아주 강력하고 진득한 특유의 에너지를 지닌 배우다. 진중함과 무거움으로 가득 차 있어 보이면서도 때로는 실없고 나사 하나가 빠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그가 스크린 속에서 수많은 인물들로 재탄생될 때면, 의도하지 않아도 몰입의 끈이 마음을 꽉 조인다. 이 작품에서도 사고 전의 존과 사고 후의 존 이 두 방점을 기준으로 내외면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러닝타임에 띄워 흘려보내는 열연이 그저 감탄스러웠다. 그의 연기는 이 영화가 가진 구성 방식과도 꼭 맞게 결합되어 시너지를 내는데, 구스 반 산트 감독은 순행적 구성을 탈피하고 여러 시점을 분산 배치함으로써 극에 생기를 불어넣었고, 호아킨 피닉스라는 날개를 단 ‘각 시점의 존’은 그렇게 영화와 함께 날아올랐다. 더불어 눈에 띄었던 건 심심찮게 등장하는 클로즈업이었다.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게 아닌가 착각이 빼꼼 고개를 들 만큼 감독은 인물들의 표정과 행동에 주목하는데, 특히 카메라가 호아킨 피닉스의 얼굴로 스크린을 크게 채울 때면 별다른 이입 준비는 필요치 않았다. 존을 내면화하고 나면 주위의 인물들도 안으로 폭 들어온다. 루니 마라가 분한 ‘아누’는 사실 분량이 많지는 않지만 첫 등장서부터 분위기를 찍어누른다. 또한 두 배우가 실제 연인이기에 그 케미는 딱히 힘을 주지 않아도 빛을 뿜는다. 조나 힐이 맡은 ‘도니’도 숨은 주역이다. 조나 힐은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의 이미지가 매우 강하게 박혀있었는데, <돈 워리>에서와 같이 진중한 역할도 소름이 끼칠 정도로 소화해내는 걸 보면 정말 대단하다. 도니의 도움을 받으며 한칸 한칸 내딛는 존의 발걸음은 관객에게도 하나의 여정이었을 것이다. 1단계, 2단계, 3단계를 거쳐 존도 도니도 가장 좋아한다는 12단계까지, ‘치유’라는 깃발을 들고 조금씩 전진하는 그들을 바라보면서 가슴이 따스해졌다. 삼엽충에서부터 네안데르탈인으로 맺는 존의 한 카툰처럼, 알코올 중독자에서 카툰 작가로 당도하는 존의 삶처럼, 사과와 용서를 당신들에서부터 자신 스스로에게까지 뻗는 존의 손처럼, 과거부터 현재를 전체적으로 되짚고 비추는 그런 이야기들이 나의 마음에 차올라 넘실거렸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삶의 꼬리를 물고 되돌아가봐도, 머리를 세우고 앞으로 나아가도, 언제나 그 양쪽의 끝은 ‘나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