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8.3/이런 거 보고 싶어서 본 거고, 보여줄 만큼 보여줬으니 된 거고.

8.3/이런 거 보고 싶어서 본 거고, 보여줄 만큼 보여줬으니 된 거고. / 정해진 대로 보이스피싱에 당한 뒤 허무하게 자살해서 주인공에게 동기를 마련해주는 엘로이즈도, 주인공을 쫓는 동시에 해설해주는 역할을 맡았기에 엄마가 자살했음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주인공을 따라다니는 베로나도, CIA 국장씩이나 지낸 인물이 벌벌 떨지만 않았다 뿐이지 잔뜩 쫄아서 입이 마르도록 주인공을 극찬하는 모습도, 그밖에 좀 알 만한 인물들이 하나같이 주인공에 대해 언급할 때 혀를 내두르는 모습도, 유사한 다른 작품들과 조금이라도 차별화하기 위해 썩 와닿지 않는 꿀벌이니 여왕벌이니 하는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어도, 액션에 신경쓰느라 정작 이야기는 반쯤 놓아버렸다 해도, 이런 모든 전형적이고 작위적이며 엉성한 그림들이 제이슨 스타뎀의 캐릭터와 액션을 부각시키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다면 죄다 충분히 참작 가능. / 사람 줘패는 것부터 해서 건물 입구로 당당히 처들어가 불도 지르고, 차에 매달아 바다에 수장도 시키고, 자길 잡으러 온 현역 비키퍼 요원도차 어렵지 않게 제압하고서 태워 죽이고, 바로 죽이냐 아니면 몇 군데 부러뜨리고 살려주냐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자기 앞을 막아서면 적이고 뭐고 간에 가차없이 조져버리기도 함. 뭔가를 함에 있어 망설임은 커녕 미세한 머뭇거림조차 1도 보이질 않음. 제이슨 스타뎀 특유의 과묵하고 무뚝뚝한 매력이 잔뜩 응축되다 못해 외려 극한의 무색무취의 경지에 이른 듯한 느낌이었음. 어쨌든 그런 제이슨 스타뎀의 '비키퍼', 애덤 클레이는 이렇다 할 대사 없이도 정말이지 너무나 의지되고 빠져드는 캐릭터였음. 보여주는 행보는 여느 은퇴한 레전드 요원의 무쌍 찍는 복수극 그 자체였지만, 그중에서도 완벽에 가까울 정도의 언행일치를 보여주며 하고자 마음먹은 걸 그리 어렵지 않게 반드시 해내버리니까 갈수록 신뢰가 제곱으로 쌓였음. 애덤 클레이만의 개성을 하나만 꼽으라 하면 망설임 없이 제이슨 스타뎀이라 답할 수 있을 정도로 배우를 알맞은 곳에 데려와서 요긴하게 잘 활용했음. / 주인공의 미친 듯한 포스와 카리스마에 비하면 다수의 빌런들은 한없이 초라해 보일 뿐임. 보통은 꼭대기에서 사람들 부려가며 여유를 부려야 할 회장님류 캐릭터는 내내 노심초사하고 있고, FBI니 특수부대 출신 용병이니 등등은 쪽도 못쓰고 나가떨어지며, 현역 비키퍼 요원마저 상대가 되질 못하고, 과거 비키퍼 요원을 죽여본 적 있다는 실력자조차 주인공에게 긁힌 상처 몇 개 내고 비명횡사하는 게 고작임. 심지어는 미합중국의 대통령마저 방에 숨어서 벌벌 떨어야 할 뿐임. 참으로 싱거운 빌런들이지만, 이런 영화에선 빌런들이 먼치킨 주인공을 위한 들러리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해 줄수록 영화의 재미가 쭉쭉 올라가는 법임. 쎄 보이거나 있어보일 수록 주인공의 압도적인 무력 앞에 맥없이 나가떨어질 때 더 극적인 쾌감을 느낄 수 있고, 다들 한방컷 당하다가 한 두놈 정도만 주인공과 몇 차례 겨루며 상처 좀 내주면 그걸로 충분함. 그런 면에서 영화 속 빌런들은 다들 본분에 맞게 제 역할을 다해줬고, 영화도 빌런을 적절히 잘 써먹었음. / 제이슨 스타뎀이야 말할 것도 없고, 그 외 대부분의 캐릭터들이 대부분 자기가 해야 할 만큼은 해주는 가운데, 죽은 엘로이즈의 딸 베로나 캐릭터는 영 별로였음. 제도권에 소속된 경찰 등의 신분으로서 일단은 범죄자이긴 한 주인공을 잡으러 다니지만 사정 봐줄 것 다 봐주며 마지막에는 기꺼이 눈 앞에서 놓쳐주는 조력자에 가까운 캐릭터인데, 지금껏 비슷한 류의 캐릭터들을 꽤 다수 봐왔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게 별로였음. 뚜렷한 매력이나 개성, 철학도 없이 그저 시시한 농담 따먹기만 일삼고 클리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며 주인공의 뒤를 쫓기 바쁨. 이야기 흐름상 주인공이 신뢰하는 몇 안 되는 인물이란 설정이기에 제이슨 스타뎀이 막판 부랴부랴 그윽한 눈빛으로 끄덕거려줬을 뿐, 주인공을 돋보이게 해주는 조력자로서 급이 다르고 충분치 못하단 느낌이 강하게 들었음. 너무 밋밋하고 개성없는 인물이었고, 캐스팅조차 그닥 어울리지 않았음. / 야심차게 '킬링 유니버스'를 표방하며 세계관을 확장시킬 여지를 남겨뒀음. 중간에 애덤 클레이를 제거하기 위해 비키퍼가 보낸 현역 요원이 보기좋게 당하자 비키퍼 측은 중립을 지킨다는 식의 언급이 나오고, 일단은 비키퍼 세력이 전면으로 나서진 않음. 이 모습을 보며 속편이 계속 나온다면 <존 윅> 시리즈의 3편, 4편에서처럼 언젠가 비키퍼가 보낸 요원들과 애덤 클레이가 처절하게 싸우는 장면이 연출되겠다 싶었음. 개인적으로 먼치킨이란 설정이면 먼치킨답게 큰 어려움 없이 시원시원하게 몰살시켜버리는 걸 선호하기에 매 싸움마다 고전을 면치 못하는 존 윅보단 애덤 클레이의 스타일이 좀 더 취향임. 마침 <존 윅> 시리즈가 멋드러진 최후를 보여줬으니 새롭게 갈아탈 수 있는 킬링 유니버스의 확장이 더욱 기대되는 바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