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션 / 2018

2019.08.10 14:02:21
맞춤식 한국형 재난영화의 영리함
경제 불황으로 인한 장기 실업을 대변하는 주인공 용남(배우 조정석)은 현시대 청년 그 자체다. 온전한 취미인 클라이밍은 "사람 구실"과는 전혀 상관없는 애물단지로 취급당하고,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 사회에서 누나가 주는 미용비 만 원은 굴욕에도 불구하고 한없이 소중하다. 어머니의 칠순 잔치에 모인 친인척들에게 위로 아닌 위로를 받고 화를 겨우 삭이면서도 당당하게 어머니를 등에 업지 못한 채 주변인으로 돌아다닌다. 게다가 칠순 잔치 현장에서 우연히 만난 동아리 후배 의주(배우 임윤아)에게 과거에 이어 또 다른 거짓말을 하며 기만한다. 재난 상황이 닥치자 자신이 가진 모든 지식과 기술을 동원하여 망설임 없이 헤쳐 나가지만 건물에 갇힌 학생들을 보면서 갈등하고 목적지를 눈앞에 두고 갈 방법이 없어 통곡한다. 재난 영화에서는 찾을 수 없는 주인공이자 상업 영화에서는 등장하지 않을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다. 현실성은 또 다른 주인공 의주와 주변 인물들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상황에서도 꼼꼼하게 드러난다. 종편 방송의 건강 예능에서 등장하는 수퍼 푸드에 관심을 가지는 어머니, 원하는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 리모컨 전쟁을 벌이는 부부, 예식장에서 남은 음식을 비닐에 담아 가고 남은 술을 배낭에 넣어가는 모습에서 2층 피트니스센터에 붙여진 건너편 건물 1층 고깃집 연기에 대한 경고문, SNS와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얻고 도움을 청하는 10대 소녀, 건물을 힘겹게 오르고 난 뒤에 오는 손떨림 등. 지나치기 쉬운 부분까지 섬세하게 표현된 현실성은 용남과 의주의 탈출기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이 사소하지만 꼼꼼한 차이점이 기존 한국형 재난 영화의 틀을 깨뜨리는 특이점으로 전환된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덕목은 용남과 의주로 대변되는 현 세대들을 따뜻하면서도 가볍게 위로한다는 것이다. 취업문에 가로막힌 용남은 동아리 동기의 말 그대로 이미 재난을 겪는 중이다. 지진과 폭염 등의 자연재해 문자도 자본으로 치환되는 삶의 무게에 점차 무덤덤해지는 사회 자체가 일종의 재난이다. 앞선 세대가 만든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지만 뜻을 펼치기엔 너무 높은 장벽을 넘어야 한다. 그만큼 힘들게 넘었기에 다른 장벽을 넘을 힘과 의지가 생기지 않고, 그럴 여유도 없다. 웬만하면 한곳에 오래 머물고 싶지만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예식장 부점장인 의주는 예정된 시간을 넘긴 손님들에게 나가달라는 말을 하지 않고, 많은 알바들과 함께 대기한다. 언제 나갈 지도 정확하지 않기에 예정 없는 기다림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때 점장이 알바들을 퇴근시키고 의주만 남겨 놓는다. 그리고 시작되는 성추행에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한다. 업무 외 시간에 메시지를 보내 난감하게 하나 역시 머뭇거린다. 힘들게 넘어 자리 잡은 일터를 벗어나기엔 장벽이 점점 높아져 쉽지 않음을 알기에 견디는 것이다. 취업을 하지 못해도, 취업을 하더라도 각자가 처한 상황은 재난에 가깝다. 그야말로 "헬조선"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재난 속에 살고 있는 두 사람 앞에 눈에 보이는 재난이 발생하면서 역량을 발휘한다. 평소에 쓸모없다고 여긴 동아리 활동과 놀이터 철봉 훈련(?)이 특별 상황에서 유용하게 쓰인 것이다. 자신의 능력이 험난한 장애와 장벽을 넘을 수 있는 힘을 부여하고, 취업과 삶의 무게로 대비되는 현실을 타파하는 청년의 모습과 겹친다. 밤늦게 학원에 갇힌 아이들 - 2014년 4월 16일의 사건을 보면서 안타까워하는 모습이나 눈앞으로 다가온 재난을 잠시나마 멈추기 위해 기꺼이 날아온 드론들은 이기주의와 물질만능주의에 매몰된 세상에서 청년들이 가진 공감과 참여 정신을 형상화한다. 힘을 주어 강조하다 오히려 거부감이 일어날 이야기를 적당한 긴장감과 웃음으로 은은하게 풀어놓으며 공감하는 세련된 화법이 인상적이다.


일반적인 재난 영화로 보아도 꽤 재미있다. 어설프게 매달리고, 위태롭게 달리는 주인공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매 장면을 충실하게 연출한다. 가스 테러를 일으킨 사연을 최소화시키고, 주요 인물도 두 사람으로 한정 지어 곁가지를 없앤다. 아쉽게도 가족의 모습을 보여야 하는 강박이 극의 흐름을 끊어 놓기도 하나 적절하게 넘어갈 수준이다. 가스라는 설정을 통해 기존 작품에서 선보인 물리적 파괴를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충분히 재난 상황을 연출할 수 있게 만들었으며, 유명 유튜버의 카메오 출연과 드론 그리고 SNS를 활용하여 현시대를 반영한다. 조정석과 임윤아는 제 역할에 맞는 연기를 통해 공감과 집중을 유도하고, 고두심과 박인환은 특별한 역할이 아님에도 극에 감정을 불어넣는다. <엑시트>는 <부산행>과 마찬가지로 한국형 재난 영화의 새로운 길을 제시한다. 시대를 반영하는 방법이 심각하고 진지한 비판만 있는 것이 아님을. 따뜻하면서도 가볍게 툭툭 치는,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이 가능한 설정과 감정으로 이뤄진 영리한 작품이다. 물론 재미있는 상업 영화다. "··· --- ···" 이거 하나만은 확실하게 각인시키는 훌륭한 민방위 교보재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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