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CineVet
2019.08.14
'은희'라는 한 개인으로부터 뻗어나오는 1994년의 기억들, 흔적들, 그리고 아픔들.
<벌새> 언론시사 추천 후기 - "'은희'라는 한 개인으로부터 뻗어나오는 1994년의 기억들, 흔적들, 그리고 아픔들. 개인의 세계는 재창조되고, 개인은 세계 속에서 재탄생한다." ★★★★ - 거대한 사건, 혹은 시대 속에서 한 개인을 조명하는 영화들이 있다. <퍼스트맨>처럼 그 안에서 한 인간을 향한 골똘한 탐구를 담는 영화가 있는 반면, <박하사탕>처럼 개인을 거울로 삼아 시대상을 반영하는 영화가 있다. <벌새>의 화법을 표현하라면 후자에 가깝다. - 영화의 톤은 굉장히 건조하다. 배경음도 상당히 절제됐고, 카메라의 움직임도 단조롭다. <벌새>는 감정을 과장하거나 강요하지 않고, 다만 상황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특히 감독의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가 이런 세밀한 묘사를 가능하게 만든다. 영화의 표현이 섬세할수록, 현실감은 커진다. 그리고 그 현실감은 영화의 감정 속으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강요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생기는 감정은 이에 기인한다. - 영화의 구성또한 영리하다. <벌새>는 영화 전반에 걸쳐 일상적 상황들, 소소한 사건들을 통해 관객을 영화 속으로 끌어들인다. 그렇게 관객이 인물들에 이입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후, 큰 사건 속에서 인물들의 격동하는 감정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담담한 표현에도 앞서 마련한 기반 덕분에 관객은 인물들에 동화되고, 공감하고, 감동한다. 특히 김보라 감독은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공감할 보편적 아픔을 끌어와, 그 감정의 진폭을 키운다. - 영화의 가치는 '기시감'에도 존재한다. 장준환 감독의 <1987>이 가진 의의 중 하나는, 87년도에 있었던 6월 항쟁과 2017 개봉 당시에 뜨거웠던 촛불 시위, 이 30년의 간극을 영화로 엮어냈다는 점에 있다. 되풀이되는 역사를 조명하며 다른 시대의 이야기를 현대의 담론으로 끌어오는 영리함이 <1987>에는 있었다. <벌새>또한 1994년을 다루면서, 2014년에 우리가 겪었던 아픔의 정서를 다시 한 번 불러온다. 그때의 거대한 아픔 속에서 우리가 느낀 그 감정을, 김보라 감독은 '1994년도'란 도화지에 '은희'라는 붓으로 그려낸다. - 영화를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오프닝이 그 한 문장이라 생각한다. <벌새>는 902호를 두드리는 은희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문은 열리지 않고, 은희는 1002호로 이동한다. 1002호의 문을 두드리니 문이 열리고, 은희가 그 안으로 들어간다. 1002호의 문이 닫히고, 카메라는 줌 아웃하며 같은 모양의 문으로 가득한 아파트를 비추고 <벌새>라는 제목이 등장한다. 영화는 내내 은희네 집 대문을 지속적으로 비추지만 절대 몇 호인지 보여주지 않는다, 끝날 때 까지도. 영화에서 은희네 집이 몇호인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모든 집은 은희네 집이고, <벌새>는 그 시대를 살아간 1994년도의 은희들에게 바치는 영화로 존재한다. - 어떤 사건을 겪더라도, 그 안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은 제각기 다르다. 하지만 그 안에도 '보편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 지점을 바라볼 때 <벌새>는 1994년, 가장 보편적인 은희에게 전하는 헌사이다. 이것이 <벌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