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m.blue
2019.08.22
<우리들>로 세상 곳곳 ‘우리’였던, ‘우리들’인 누군가의 마음을 쓰다듬어주신 윤가은 감독님의 새로운 영화가 바로 오늘 개봉했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기다렸다. 유달리 시사회 기회가 닿지 않았던 터라 개봉하기 만을 손꼽아 기다렸다가 냉큼 관람했는데 역시는 역시. 이번에는 ‘우리’의 다른 결을 포착하여 담아내셨다.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아직 모든 것을 담담히 받아들이지 않아도 될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아프도록 침착한, 햇살보다도 반짝이는 아이들에게서 어른들의 어리석음을 보았고 내가 흘려보낸 지난날의 상처를 마주해 버리고 말았다. _ 이 영화엔 시작부터 ‘우리’가 없다. 엄마와 아빠는 하나를 코앞에 두고 싸운다. 오빠인 찬 역시, 신경은 쓰이는 듯하지만 애써 외면한다. 하나는 그럴 수 없다. 하나에겐 아직 ‘우리 가족’이라서, 하나가 서 있는 그곳은 ‘우리 집’의 ‘우리 부엌’인데 그 누구도 ‘우리’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 그때부터 줄곧 하나의 집안에서 싸움이 일어날 때마다 카메라의 앵글은 하나의 눈높이에만 맞추어져 있다. 모두가 앵글에 걸친 채로, 아주 위태로이 흐릿해진 채로 서서 각자 하고 싶은 말을 내지른다. 하나는 불안한 눈으로 그저 ‘밥을 먹으라’고 말한다. 그게 전부였다. 하나가 이 영화 안에서 ‘우리’로서 존재하는 순간은 유미-유진 자매를 만나면서부터 또는 그들과 있을 때뿐이다. 셋은 다른 환경을 가졌고, 성격도 다르지만 ‘집’에 대한 생각만큼은 서로 비슷하다 여기고 있었다. 그런 생각도 잠시, 그들은 서로를 보며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다르다는 것을. 바닷가에서 하나와 유미가 서로를 향해 화를 내며 싸우는 장면에서 생각했다. ‘너희들이 이렇게라도 참지 않고 내지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어려서 서툰 것과 지나치게 성숙해서 참는 것은 다르다. 나는 하나와 유미가 차라리 어려서 서툰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지나치게 성숙해서 모든 것을 참아왔다. 그것이 철저히 깨졌던 순간은 중후반부, 바닷가에서였다. 그리고 그 후 그들은 그제야 완벽한 ‘우리들’이 되었다. 상처를 머금고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고 하는 친구가 아니라, 솔직히 내보일 줄도 아는 <우리들>이 된 것이다. _ 섣부르게 안아주지 않아서, 섣부르게 손잡아주지 않아서 이 영화에게 정말 고마웠다. 가만한 눈빛이 그 모든 행위를 대신할 때가 있는데, 이 영화가 내게 그랬다. 네모난 스크린 안에서 있는 힘껏 나를 안아주고, 다독여주다가, 손을 잡아주기도 하고 가만히 눈을 봐주기도 하는 것 같았다. 그때의 나를, 그 언젠가의 나를, 심지어는 오늘의 나도 그곳에 있었기에 많이 울었다. 그 언젠가 지금보다는 어렸을 때 내가 느꼈던 감정들, 앞으로 조금 더 크더라도 완전히 다 잊어버리지는 못할 어떤 기억들. 과거의 우리들과 우리 집, 미래의 우리들과 우리 집이 만나 나는 하나가 되기도, 유미-유진이가 되기도, 때로는 선이, 때로는 지아가 되기도 했다. 정말 고맙고 고마운 영화다. _ 나는 이 영화가 단순히 아역배우를 내세워 유년 시절을 떠올리게 만든다는 이유로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들> 때도 마찬가지였듯이, ‘아이들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는 지금, 여기, 현재의 세계’이기 때문에 좋은 영화이자 더할 나위 없이 충분한 거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꾸 들여다보아야 한다. 잘 가고 있는지, 상처받거나 혹은 누군가에게 상처 주고 있진 않은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