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수리남영역
2019.08.27
스포일러 주의!
'변신' 초간단 리뷰
1. 김홍선 감독의 영화들은 장르는 제각각이지만 꽤 한결같은 구석이 있다. 스릴러를 만들건 케이퍼무비를 만들건 장르에 대한 애착은 많은 사람이다. 다만 그가 가진 개성은 딱 거기까지라고 생각한다. 그는 공포영화를 만들건 케이퍼무비를 만들건 스릴러를 만들건 장르영화를 참 좋아한다. 영화 '변신'을 보고, 감독의 이름을 확인하기 전까지 나는 "이 영화 만든 사람, 공포영화 참 좋아하는 사람이네"라고 생각했다. 이름을 확인하고 더 확신이 들었다. 그는 공포영화를 참 좋아한다. 딱 거기까지다. 2. '변신'은 꽤 신선한 소재를 가지고 있다. 헐리우드에서 꽤 많이 리메이크된 공포영화인 '신체강탈자' 시리즈(돈 시겔의 '외계의 침입자', 필립 카우프만 '우주의 침입자', '아벨 페라라 '바디 에이리언', 로버트 로드리게즈 '패컬티', 올리버 히르비겔 '인베이전' 등)에 오컬트를 끼얹은 것 같은 발상은 하우스 호러가 더해지면서 아주 그럴싸한 공포영화가 만들어 질 발판을 깔았다. 이 좋은 기반에 감독은 좋아하는 공포영화들의 시각적 공격으로 분위기를 가중시킨다. 이것은 '엑소시스트' 이후 등장한 당시 오컬트 영화 속 악령부터 한국 고전 호러영화 속 처녀귀신(혹은 '여곡성'의 시어머니 귀신)까지 다채롭다. 그런데 앞서 말한대로 감독은 공포영화를 좋아하고 많이 본 사람이다. 바로 그게 이 영화의 큰 문제다. 3. 우선 하우스호러의 배경이 되는 '집'에 대해 알아보자. 2층부터 지하실까지 있는 저 집은 누가 봐도 미국의 주거형태다. 저주받은 집을 배경으로 한 하우스호러가 잘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미국의 집들이 크고 넓기 때문이다. 한국의 보편적인 주거형태는 넓어봤자 대형 아파트가 일반적이다. 그래서 '변신'의 배경은 차라리 72평형 아파트에서 층간소음으로 촉발되는 것이 더 한국적이었다. 게다가 도심지에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마을 구조에서 저런 집이 있었다면 무단침입해서 즐비한 동물 사체를 확인하기 전에 냄새 때문에라도 민원이 들어왔을 것이다. 민원까지 아니더라도 동네 부녀회장이 반상회 참여를 독려했을 수 있고 누가 찾아와도 얼마든지 찾아올 수 있었다. 땅이 넓은 미국은 어느 집에 사느냐에 따라 이웃과의 교류가 적을 수 있다. 하우스호러는 이런 특징에서 비롯된다. 한국의 주거특징을 감안한다면 '변신'의 배경이나 이야기 시작은 지나치게 서양적이다. 4. 백번 양보해서 "그런 집에서 살 수 있고 그런 이웃이 있을 수 있지"라고 생각해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는 것은 지하실의 보일러다. 그 집을 언제 지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애시당초 저런 보일러를 쓰는 집이 있을 수 있는지 의문이다. 설령 과거에 저런 보일러를 썼더라도 결국 나중에는 가스보일러나 석유보일러로 교체했을 것이다. '나홀로 집에'의 케빈이나 겁낼 법한 보일러가 21세기 한국의 집에 버젓이 등장하는 지점은 정말이지 정신이 번쩍 든다. 넓은 아량으로 여기서 더 양보해서 그런 보일러가 있을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만약 그랬다면 관객의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것을 감안해 그저 '배경'으로 남았어야 했다. 미국 가정에서나 봤을 법한 보일러에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부여하는 것은 "그만 용납해라"는 압박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 보일러야 말로 감독이 이 오컬트물의 한글화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5. 이것저것 다 용납하기 어려워도 재미만 있으면 그만이다. 앞서 말한대로 이 이야기는 꽤 신선한 크로스오버다. '신체강탈자' 시리즈가 가지고 있던 '불신의 공포'를 고스란히 재현하면서 시각적으로 밀어붙이는 시도를 한다. 그런데 그 신박했던 '불신의 공포'는 뒤로 가서 희석이 되고 이미지만 남는다. 이것저것 복잡하고 정교한 틀을 세워놨지만 작가가 감당하지 못해 결국 시네마틱한 연출로 클라이막스를 떼우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문제는 그 시네마틱이라도 세련되고 강렬했다면 다행이다. 나는 이 영화에서 인위적으로 흩날리는 낙엽이나 붉고 푸른 조명들을 보고 "레트로풍 연출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촌스럽다는 얘기다. 좋게 본다면 80년대 B급 공포영화를 재현했다고 볼 수 있지만 감독의 전작들을 떠올려보면 '그냥 촌스런 연출'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6. 결론: 장재현 감독이 그렇게 고민해서 '오컬트의 한글화'를 이룩했는데 김홍선 감독이 이 영화로 다시 '서구화'시켰다. 어쨌든 일반 관객들이 무서워한다니 다행이다. 만약 이 영화가 손익분기점을 넘기고 성공을 거둔다면 '불신의 공포'와 무서운 이미지들의 덕으로 돌려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지금의 결과물보다 더 무서운 녀석이 될 수 있었다. 그걸 못한 것은 감독의 수위조절인지 능력이 거기까지였던 건지 따져봐야 할 지점이다. 추신) 둘째 딸 현주(조이현)를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지하실 갔다가 사라졌는데 가족들 아무도 거기에 의심하지 않는다(만약 가짜가 돌아다녔다면 관객들에게도 그걸 보여줘야 한다). 게다가 첫째 딸 선우가 그러고 있는 자리에 둘째가 없으면 누구라도 이상하게 생각해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다. 마지막 장면은 현주가 죽어서 우는건지 중수(배성우)가 죽어서 우는건지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현주는 주워온 자식이 분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