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규민
2019.09.14
올해 초에 보았던 <아사코>를 보면 (영화자체적으로 의도하기 때문이긴하지만) 하나의 일이 두 번씩 반복하면서 극이 진행된다. 근데 생각해보면 그 영화가 아니여도 다른 영화 속에서도 존재하는 이야기 속 복선이라는 장치로 하여금 사건을 전개해나가는 과정에서 어떤 일이든 최소 두 번은 반복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근데 그 복선이 잘 드러났든 안 드러났든, 알아챘든 못 알아챘든간에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좋은 영화는 그 반복에서의 위화감은 느껴지지 않음은 물론 연출이 뛰어나다는 걸 새삼스레 떠올렸다. <벌새> 를 오프닝부터 엔딩까지 끝까지 완주하고 나면 그 일들이 얼마나 유기적인지 얼마나 촘촘하게 묘사되고 있는지 영화가 끝난 후에 수 많은 생각들이 연결고리를 만들어가는데 소름이 돋는다. 그러니 간곡하게 말씀드리지만 한 번 더 관람하긴 권한다. 최소 두 번은 보시길 말이다. 오프닝부터 몰아친다. 다급하게 아무리 두들겨도 초인종을 눌러도 열지않는 문 앞에서 울부짖으며 엄마를 부르는 소녀. 그렇게 소리치던 소녀가 잠시 운을 뗀다. 고개를 올려보더니 한 층을 다시 오르고 다시 초인종을 누른다. 두드림도 없이 단 번에 문이 철컥 열린다. 현관문 앞에 서서 심부름을 다녀온 소녀에게 사 온 야채가 시든 것 같다며 이거밖에 없었냐며 묻는 엄마를 바라보는 소녀의 표정에선 좀처럼 그 두려움을 다 숨길 순 없었지만 엄마에게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꿈이 아니길 바라는 안도감으로 집으로 들어오고 그렇게 문이 닫힌다. 소녀의 현관문 밖 앞으로 줌 아웃을 하면서 타이틀이 뜨고 장면이 전환된다. 대부분이라면 익숙하다 못해 친숙할 공간인 학교에서 다시 시작하는데 은희의 시선에 맞춰지면서 그 공간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진다. 그리고 영화는 앞으로 소녀가 발 닿은 여러 공간과 손 닿는 타인들과의 관계에 집중하게 만든다. 중학교 2학년 소녀인 은희를 중심으로 수 많은 관계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특히 가족을 하나의 묶음으로 비춰지기보다는 가족 구성원 한 인물마다의 관계의 차이에서 은희의 섬세한 감정묘사를 따라가는 것이 상당한 묘미이다. 그렇지만 90년대 가족안에서 배제할 수 없는 남성의 가부장제를 정확하게 드러나는데 그 묘사는 단순히 가해자-피해자로의 시선이 아니라 모두가 그 제도안의 피해자임을 바라보게 한다. 그렇기에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우는 모습을 보이는 은희 아빠와 오빠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그들도 피해자라는 인식을 주는 것이 아니기에 면죄부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쩌면 조금은 은희가 언니 수희와의 관계가 적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겠지만 같은 방을 쓴다는 점과 함께 이부자리에 누웠을 때 나누는 대화는 다른 가족들과는 나누지 못할 대화나 말들을 나눈다는 점에서 어느정도의 유대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이후에 성수대교 붕괴사건에서도 은희와 수희의 관계가 묽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위와 같은 가족 구성원을 보았기 때문에 가장 두드러지도록 독특한 건 은희 엄마다. 보통 다른 영화였다면 애틋하게 그렸을 모녀관계가 <벌새> 속에서는 그려지지 않는다. 오프닝에서 엄마를 애타게 불렀던 은희는 극 중 한 번 더 엄마를 목놓아 부른다. 눈 앞에서 분명 또렷하게 보이는 엄마를 부르지만 은희는 엄마로부터 그 어떤 대답도 몸짓도 돌려받을 수 없었다. 똑같이 은희는 그런 일들에 대해 엄마에게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모녀의 관계에서 유대감이 없지 않음을 또 여러 장면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감독은 소위 한국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표현한 모성을 신화적으로 표현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엄마'라는 호칭이 있기에 할 수 있는 만큼으로의 여성으로, 사람으로 묘사한 것이다. 그렇기에 은희 엄마는 은희의 눈을 맞출 수 있던 것이다. 나아가 가족 구성원으로 벗어난 다른 관계 속에서 은희라는 소녀가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바라볼 수 있다. 일단 친구 지숙을 통해서 비단 은희만이 홀로 아픔을 겪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단순하게 개인의 고통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유리라는 후배친구를 통해서 누군가를 좋아하고 싫어한다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을 은희가 배웠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남자친구였던 지완에게 그렇게 단호하게 말할 수 있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의 표현과 느낌을 보여주었던 한문학원 영지선생님은 놓칠 수 없는 가장 큰 존재이기도 하다. 김새벽 배우가 맡은 영지 선생님이 은희에게 어떤 존재인지 보여주는 여러 순간들이 존재하지만 가장 놀라웠던 건 '손'이 주는 의미였다. 사실 은희가 처음으로 자신의 손을 보았던 건 온가족과 함께 떡집에서 일을 하고서 집 거실바닥에 앉아 떡을 팔아 번 돈인 지폐를 세고 세어 먼지로 더럽혀진 손을 지긋 바라볼 때다. 그 때의 은희는 무슨 생각을 했을지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적어도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자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그런 은희는 그 손으로 나쁜 일들을 한다. 담배를 피고 도둑질(뽀리까리)한다. 그런 일들을 지나 친구 지숙이나 남자친구 지완과의 관계가 틀어지는 여러 순간 속 은희는 영지 선생님으로부터 큰 힘을 받게 된다. 그 때 은희에게 힘들고 우울할 때 손가락을 보라고 말한다. 손가락 하나를 하나씩 움직이는 그 손을 보라고. 그 손은 움직일 수 있다는 말이 뒤에 은희에게 삶을 지탱하는 원동력으로 다가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시간이 지나고 지나 성수대교 붕괴사건 후에 은희는 다시금 손을 본다. 그 때 영지 선생님이 했던 말을 기억하면서 손가락을 움직인다. 그리고 은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해나가는 걸 볼 수 있다. 은희와 타인과의 관계도 주목할 필요가 있지만 은희가 있는 공간에도 은희의 감정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학교나 집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편안함을. 하지만 영지 선생님이 세상을 떠나고서의 은희가 닿을 공간들은 이전과의 차이가 날 것이다. 앞으로 은희가 어떤 세계를 마주하게 될 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싫어질 때나 힘들고 우울할 때, 그 공간의 구애받지않고 스스로 극복해나갈 것이다. 나는 앞으로의 은희가 궁금은 할지언정 더이상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은희는 하루만큼 더 어른이 될 것이다. + 벌새 명대사 제조기인 김영지 선생님 명대사 베스트3 1. 자기를 좋아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는 것 같아. 나는 내가 싫어질 때, 그냥 그 마음을 들여다 보려고 해. 이런 마음들이 있구나. 나는 지금 나를 사랑할 수 없구나, 하고. 은희야, 힘들고 우울할 땐 손가락을 봐. 그리고 한 손가락 한 손가락 움직여. 그럼 참 신비롭게 느껴진다.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은데,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어. 2. 은희야, 너 이제 맞지마. 누구라도 널 때리면 어떻게든 맞서 싸워. 절대로 가만 있지마. 알았지? 3.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 날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어.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 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