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은택
2024.05.19
.
'영화 속의 숭고'라는 제목의 <수색자>와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예시로 들며 '숭고'에 대해 탐구하고 있는 이윤영님의 논문 초반부에서 말하길, 칸트와 버크 왈 안전함을 느껴야만, 안도감을 가져야만 숭고의 감정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또 숭고는 크기와 관련이 있으며, 특히나 에드먼드 버크의 논의에서는 숭고가 '시각적인 것'과 큰 관련이 있다 말한다. . 5페이지쯤 읽었을까. 딱 이러한 논지만으로도 아라비아 로렌스의 많은 부분이 아주 명쾌해지는 기분이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1부와 2부가 상영본에서 이미 인터미션을 사이에 두고 구분되어 있는데, 1부에서는 승승장구하는 영웅서사의 전형을 보여주고, 2부에서는 다치고, 실패하고, 유린 당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더군다나 로렌스가 1부에서 다우드와 기심의 죽음에서 'Joy', '즐거움'을 느꼈다고 말하는 대목은 즐거움 그 자체라기 보다는 안전지대에 있는, 집행자로써의 숭고함을 느꼈던 탓인지도 모르겠다. 이 숭고함은 경외의 감정을 갖게도 하지만 자아도취, 자만에 빠지게 하기도 한다. 그 숭고함의 대상이 바깥에 있지 않고 내부에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우드와 기심의 죽음은 영웅서사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순례이게 되고, 그들의 숭고한 죽음 앞에서 즐겁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는 다시 로렌스와 예수와의 여러 연관성들을 되짚어볼 때 4복음서를 다른 시각으로 재점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각설하고, 숭고함의 대상이던 '아라비아'(혹은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종국엔 어떻게 안전함을 잃어갔는지, 또 그의 죽음을 두고 초라함 외에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지에 관해 생각해보는 것이 더 바람직해 보인다. 확실히 그의 죽음은 너무나 초라했고, 그의 죽음을 둘러싼 그 요란한 장례식마저도 초라해보였다. 그는 한때 영웅이었지만, 결코 평범치 않아 온갖 오해에 시달리기 일수였으며, 그를 가까이서 지켜본 이들은 그에게 상처 받았거나, 상처 주었거나, 그를 이용했거나, 그에게 실망한 이들뿐이며, 정작 그의 친구들이라 할만한 이들은 모두 아랍에 있으니 웅장하고 요란한 장례식이라하여도 어찌 초라하지 않을 수 있을까. 또한 실존 인물인 T.E.로렌스는 자서전을 남겼는데, 그와 그의 저서를 둘러싼 이야기들은 그가 허풍쟁이었거나 과장되었고 아랍편에선 그가 실제론 아무런 역할도 해내지 않은 인물이라 말하며 심지어 그를 아는 이가 아무도 없다고 말한다. 그러니 <아라비아 로렌스>를 한켠으론 '숭고함에서 초라함으로 옮겨가는 과정'이라는 시각에서 얘기해 볼 수 도 있을 것이다. . . . 또 한켠으로 알리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그는 마치 저승사자, 환영의 형상으로 등장한다. 극중에서 알리는 로렌스의 최측근으로 로렌스의 여정을 거의 모두 함께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한켠으론 로렌스가 죽음, 또는 환영과 친구 맺고 동승하였다고 볼 수 도 있을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끝이 어쨌던간에 그의 영웅적 행보에 비해 너무나 초라한 영국에서의 죽음은 아라비아라는 죽음의 환영에서 벗어나 그토록 바라던 평범한 삶을 누렸기 때문에, 어쩌면 이것이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말하고자 하는 (개인으로써 최대치의)영웅서사는 아닐까. 거대담론 내부로 깊숙히 침투하였다가, 몸성히 빠져나오는 것. 뭐 하여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