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은택
2024.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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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이 영화는 무엇보다 누군가에게 말함으로써 움직인다. 정확히는 플래시백이 '말'을 뒷받침해주며 작동한다. 어떤 사건과 시간에 관련된 진술과 증언, 고백과 약속들을 둘러싼 언어적 환경은 거짓과 날조, 그리고 오해 뿐이지만 플래시백에는 아무런 거짓도 없다는 듯이 말이다. 이 영화 속에서 대부분의 플래시백은 고백과 동시에 소환되어 말의 자리를 대신하는 반면 몇몇은 말과 별도로 놓여져 고백에 일종의 해석이 섞이면서 진술과 플래시백이 충돌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가정부나 등산용품점 친구의 경우가 그런데, 그렇다면 아야코가 플래시백 이후에 검사의 신문을 받으며 여러차례 반복해서 말하는 "좋은 아내가 되려고 했다"와 같은 말들이 철저하게 플래시백 바깥에 놓여져 있다는점이 인상적이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문득 사람의 목숨이 오갈만한 사랑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어쩌면 나에게도 그런 사랑이 올까부터 사랑과 생명의 무게를 저울질도 해보고, 끝에는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타살을 각오하는 것과 자신을 사랑하지 못해 자살을 실행하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에게 사랑 받고 싶어하는 것이 욕구라면,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학습된 것은 아닐까. 영화는 분명 어떤 특정한 사건과 밀접한 플래시백들이 주를 이루고, 플래시백을 중심으로 한 많은 것들이 이 영화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해보이는건 현재의 시간에서 사건을 인식하는 방식에 있어보인다. 과거는 언제나 투명하고, 이를 바라보는 현재의 시선에는 언제나 불순물이 끼어있다. 영화 작동에 대한 찬가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러한 방식은 어쨌든간에 해석과 논평의 자리로 관객을 적극적으로 초대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