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제트별
2019.09.24
깨달았다 한들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매일매일 대중문화에 허우적거리며 희로애락의 감정을 꿀꺽꿀꺽 삼키는 나에겐 여러모로 꽤나 충격적인 작품이었다. 정직하게 서사를 따라가다간 수몰되기 십상이고, 개연성보다는 상징성을 따지는 게 차라리 속 편한 구성이나 한 번 보고는 아니 두세 번 더 본다 해도 알게 될 거라 자신은 없으며, 영화가 내포하고 있는 요소들(특히 대중문화 부분)의 직시로 뭔가 번쩍하고 새로운 시각을 손에 쥐게 된 느낌이 들었다. 객관적인 사실을 제외하고 영화의 느낌이나 해석엔 옳고 그름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역량 부족으로 이 작품에 대한 해석에 과부하가 걸렸고 개인적인 해석을 시도할수록 내가 영화를 해석하는 건지 영화가 나를 해석하는 건지 그 난해함에 표류되어 어느새부턴가는 그냥 나름의 고뇌를 치우고 뭉텅이 자체를 즐기려 미소만을 잔뜩 머금은 채 관람했다. 꽤 많은 것들을 담고 있는 영화의 호수 아래에서 무언가를 퍼올리면 퍼올릴수록 손가락 사이사이로 순식간에 빠져나가기 일쑤였으나, 퍼내는 손이 따끔할 만큼 섬뜩하게 와닿았던 건 대중문화를 저격하는 부분이었다. 개인적으로 음모론은 싫어하지만 사소한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건 좋아하는 이 묘한 모순점을 여기서 특히나 느꼈는데, 스스로의 민망함에 실실거리며 적당한 합리화의 물안경을 쓰고 뭔가 더 건져보기 위해 호수 안으로 빠져들어갔다. 살면서 당연히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있다. 대중문화엔 분명 본래의 것과는 다른 목적이 있을 거라고. 문화의 ‘본래 목적’을 운운하는 게 참 웃기기도 하지만, 당장 우리나라의 5공 시절 3S정책처럼 문화의 이면엔 결코 순수하지 않은 도구성이 기분 나쁜 웃음을 짓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눈과 귀를 가리는 그런 차원을 넘어 특정 부류만을 위한 직접적인 메신저 역할까지 한다면? 도구성에 도구성을 얹은 초도구성이 문화의 뿌리였다면? 그리고 의미에 목매는 당신에게 무의미라는 최후의 갈증을 내려준다면? 거기에 영화는 아주 깔끔하게 반박하지 못할 막타까지 선사한다. ‘그래서, 그렇다면 네가 뭐 어쩔 건데?’ 극중 샘이 조각조각을 모아 나름의 퍼즐을 완성했지만, 탐정 뺨치는 시도로 찾고자 했던 것을 찾았지만, 당도한 곳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더불어 그가 ‘현실에서의’ 마지막 도착지도, 지독하리만치 잔인하고 ‘현실적인’ 결말이었다. 허나 그런 결말과 대비되는 샘의 마지막 미소는 서글프다기보다는 오히려 너무나 당연해서 공감되는 느낌이랄까. 나 역시 다르지 않다. <트루먼 쇼>에서의 시청자들처럼, <트루먼 쇼>를 보고도 생각했던 것처럼 생각했다. ‘그래서 다음 영화는 뭘 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