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리 님의 영화 <조커> 리뷰 - 키노라이츠
범죄 / 2019

2019.10.02 22:38:08
사유 없이 폭력을 다루는 유해함
*스포일러 포함



“현실의 일이나 사상이 담길 수는 있지만, <조커>는 80년 전과 마찬가지로 가상의 인물과 세계에 대한 이야기다. 가장 심기가 불편한 부분은 백인 남성에 대한 비뚤어지고 다른 기준이다. 백인 남성이 300명 이상을 죽이는 <존 윅 3: 파라벨룸>을 보며 관객들은 웃고, 통쾌해하고 함성을 질렀다. <조커>를 다른 시선으로 보는 이유가 솔직히 이해되지 않는다." 토드 필립스 감독의 말이다. 그가 <조커>에서 <택시 드라이버>와 <코미디의 왕>의 오마주를 등장시키며 존경의 뜻을 내비치기도 했던 마틴 스콜세지는 자신의 영화 속 인물과 사람들이 동질감을 느끼는 것에 대해 “자신은 관객들이 그 영화들의 주인공에게 몰입할 줄 몰랐다”라고 이야기한다. 베니스 국제 영화제 황금사자상과 같은 가시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조커>가 실패작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틴 스콜세지는, 물론 마초적이며 폭력적이고 정신분열적인 남성이 등장하는 영화를 계속 만들어왔지만, 자신이 창조한 캐릭터에 관객들이 과몰입하는 것을 경계했다. 특히 <택시 드라이버>의 개봉 이후 벌어진 모방범죄 사건 이후 이러한 경계심이 더욱 강해졌을 것이다.

반면 토드 필립스는 이러한 경계심이 없다. 물론 영화감독이 영화 밖에서 벌어지는 모방범죄 사건을 영화 제작 과정에서 예방해야 할 의무는 없다. 그러나 마틴 스콜세지나 <다크 나이트 라이즈> 상영 때 벌어진 ‘조커’ 모방범죄 사건 이후 <조커> 북미 개봉의 여파를 염려하는 언론들처럼 경계심을 갖는 일은 영화가 폭력, 범죄, 마초적 남성성, 테러 등을 어떻게 담아내야 하며, 그것과의 거리두기를 어떻게 시도할 것인가에 대한 사유를 가능케 한다. 하지만 <조커>에는 이런 사유가 없다. 토드 필립스 감독의 발언은 영화에서 폭력을 어떻게 보여주는지에 대한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존 윅>이나 <조커>나 어차피 영화라는 가상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주장하지만, 두 사례는 전혀 다르다. 전자는 뉴욕과 같은 현실 속의 공간들을 배경으로 하지만 그 세계는 완전한 창작물이다. 후자의 경우 고담이라는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사용하지만, 그곳에서 벌어지는 폭력들은 현실의 폭력들에서 가져온 것이다. <조커>의 맹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조커>는 마치 자연재해처럼 갑작스레 고담을 뒤덮은 절대악으로서의 조커를 그려온 앞선 영화들과는 다른 노선을 취한다. 이번 영화는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이라는 개인이 어떻게 조커라는 희대의 악당이 되었는지, 그 기원을 탐색하는 작품이다. 아서는 코미디언을 꿈꾸는 광대이다. 그는 광대 분장을 하고 폐점 세일을 홍보하거나 아동병원의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는 일을 한다. 동시에 코미디언의 꿈을 놓지 않기 위해 조크 노트를 적기도 한다. 또한 그는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지 오래되지 않았다. 그는 정기적으로 상담사를 찾지만 별 효과는 없다. 그리고 그는 몸이 불편한 노모와 함께 살고 있다. 고담의 재벌 토마스 웨인(브래트 컬렌)의 집에서 가정부로 일했던 노모는 금전적인 도움을 바라며 편지를 쓴다. 그리고 아서는 수많은 이들에게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폭력을 당한다. 폐업 세일을 홍보하던 아서는 길거리의 청소년들에게 광고판을 빼앗기고 폭행을 당한다. 술 취한 지하철의 화이트칼라들은 그를 비웃는다. 상담사는 그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고, 광대들을 관리하는 회사의 사장은 어처구니없는 사유로 그를 해고한다.

<조커>는 123분 동안 아서 플렉이 놓인 위치가 폭력의 한가운데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영화가 묘사하는 대로라면, 아서는 분명 폭력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 그리고 아서는 아무도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며,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의 폭력을 저지르기 시작한다. 영화가 덜컹거리기 시작하는 것은 이 부분에서 시작된다. 아서가 저지른 첫 살인, 토마스 웨인의 금융회사에서 일하는 세 명의 백인 남성 화이트칼라를 죽인 이후, 아서의 광대 분장은 일종의 상징이 된다. 이것은 일종의 자본에 대한 혁명과도 유사한 이미지로 그려진다. 아서의 마지막 살인은 그가 존경해오던 코미디언 머레이 프랭클린(로버트 드 니로)이다. 머레이는 스탠드업 코미디 무대에 서 웃기만 하는 아서의 영상을 자신의 쇼에서 공개하며 그를 웃음거리로 만들고, 그 이후에 아서를 쇼에 출연시킨다. 아서는 그 자리에서 세상이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음을 토로하고 머레이를 총으로 쏜다. 그의 이 두 살인(그 사이에 다른 살인들도 존재하지만)은 고담에서 벌어진 폭동의 기폭제가 된다. 아서는 정치에는 관심이 없으며 시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폭동의 한가운데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사람들의 환호성을 받는다.

영화의 마지막에 가면 아서가 어느 정신병동에 수감되어 상담을 받고 있는 장면이 등장한다. 아서는 상담사에게 “아주 큰 조크가 생각났다”라고 이야기한다. 여기서 아서는 모든 폭동이 마무리되고 복수의 살인사건의 범인으로써 체포된 것일까? 혹은 그가 말한 ‘큰 조크’가 그 장면 직전까지 벌어진 영화의 모든 사건이 그의 머릿속에서 벌어졌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인가? 사실 이것을 판별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영화의 중후반부 즈음, 아서의 애인처럼 보이던 소피(재지 비츠)는 사실 아서가 스토킹 하던 옆집의 여성이었을 뿐, 아서와는 제대로 대화도 해본 적 없는 인물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이 장면에서 아서가 정신착란을 겪고 있으며, 자신이 만들어낸 환영을 실제라고 여긴다는 것이 드러난다. 이 지점부터 영화가 보여주는 대부분의 것이 실제로 벌어진 일인지에 대한 의심이 간다. 이 지점을 통해 영화가 아서 플렉이라는 캐릭터를 동원한 인셀 (INvoluntary CELibate, 비자발적 독신주의자) 케이스 스터디라는 알리바이가 주어지는듯하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 병동 복도를 걸어가는 아서의 걸음걸이엔 붉은 발자국이 남아 있다. 아마도 자신을 상대하던 상담사의 피일 것이다. 아서는 결국 사람을 죽였다. 그 장면까지 도달하는 과정이 아서의 뇌 속을 탐험하는 듯한 환영이던, 정신병동에 수감되기 전 그가 실제로 저지른 일인지는 중요치 않다. <조커>는 관객으로 하여금 아서 플렉의 뒤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니며 영화 내내 그만 보게 한다. 종종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로 그로테스크하게 과장된 아서의 몸동작을 로우 앵글로 담아내며 그의 불행에 관객이 동참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아서 플렉을 따라가는 동안 관객의 시야에 다른 캐릭터의 입장은 보이지 않는다. 다시 말해, 영화 내부에는 아서 플렉이라는 인물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나마 아서의 행동에 대한 비판을 시도했던 인물인 머레이는 그에게 죽임을 당한다.


결국 <조커>에는 아서 플렉을 바라보는 시선이 존재하지 않는다. 토드 필립스는 아서라는 폭력적인 세계 안에 관객을 깊숙이 집어넣는다. 때문에 <조커>는 인셀에 대한 케이스 스터디와 향후 배트맨이 활동하게 될 세계관에 대한 인트로, 조커라는 악당에 대한 단순한 기원담의 영역에만 머무는 영화가 아니게 된다. 물론 이 영화가 관객이 조커에 동참하도록 하는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몇몇 관객이 자신과 조커를 동일시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영화는 관객이 조커에게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충분히 조성하고 있다. 이는 폭력에 대한 성찰과 사유 없이 조커라는 폭력의 이미지에만 심취한 토드 필립스의 계산착오이며, 기원담이 불필요했던 미지의 절대악에 대한 탐구를 스콜세지의 영화들을 비롯한 온갖 클리셰 범벅으로 스케치해 놓은 것이 불과하다. 때문에 <조커>는 감독이 스스로 드러낸 사유의 부재가 영화를 얼마나 납작하게 만드는지 보여주는 케이스일 뿐이다.


p.s. 토드 필립스는 DC 다크 유니버스(DC코믹스의 빌런이나 안티히어로 캐릭터들의 영화화)를 제안했다지만,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웨인 부부의 사망 장면은 너무나도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속 같은 장면을 연상시키기에, 만약 <조커>가 성공한다면 DCFU 세계관에 은근슬쩍 편입시키려는 시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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