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 2019

2019.10.13 02:29:05
시각적인 폭주로 표현한 현대사회의 몰개성
제72회 칸영화제 비평가주간과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미드나잇 패션에 초청받은 로어칸 피네건 감독의 영화 <비바리움> (2019)은 벨기에 출신 화가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의 작품과 네덜란드 출신 판화가 모리츠 코르넬리스 에셔(Maurits Cornelis Escher)의 작품 특징을 '비바리움’이라는 공간의 특성과 결합해 개성을 상실한 현대 사회를 이야기한다. 현대사회에서 사회 구성원은 과학 및 기술 영역뿐만 아니라 기타 영역에서의 발전 덕분에 본인이 원하는 스타일이나 추구하는 가치관을 개성 있게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렇지만, SNS와 같은 가상 세계에서 수없이 올라오는 게시물을 보면 외관상 화려하지만, 결국 특정 트렌드를 너도나도 따라 하며 개성 없이 소비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로어칸 피네건 감독은 이와 같은 몰개성적인 개인들을 열거했을 때 환기되는 획일성에 대한 공포를 관객들도 느낄 수 있도록 관찰이나 연구를 목적으로 특정 생물이 살아가는 환경 조건을 작은 규모로 재현해 사육하는 비바리움의 공간적 특성을 전반적인 콘셉트로 설정했다. 또한, 이에 충실하기 위해 감독은 전체적인 공간적 특징의 경우 르네 마그리트의 1947년에 시작해 1965년에 완성된 회화 시리즈 ‘빛의 제국(L'empire des lumières)’과 1953년 작품 ‘골콩드(Golconda)’에서, 그리고 후반부에 펼쳐지는 순환적 공간의 경우 모리츠 코르넬리스 에셔의 1953년 작품 ‘상대성(Relativity)’에서 받은 영감을 토대로 미장센을 구축했다.

우선, <비바리움>은 숙주 역할을 할 수 있는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는 기생 행동을 하는 뻐꾸기의 새끼가 동료를 살해해 성장하는 푸티지로 시작한다. 이후 탁란(托卵) 행동을 목격한 학생이 새끼 새가 다른 새끼 새를 죽인 이유를 묻는 질문에 주인공 '젬마(아모겐 푸츠)'가 그냥 자연의 섭리일 뿐이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이렇게 완성된 시퀀스 하나는 관객에게 이 영화의 이야기 전개 방식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식을 공고히 전달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 영화는 무개성의 공포를 보여주기 위해 뻐꾸기가 탁란하는 과정 자체를 야기 전개 방식의 뼈대로 삼았으며, 관객이 획일성에 대한 공포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목표를 논리성을 배제한 채 오로지 시각적인 체험의 관점에서 달성하겠다고 애초에 마음을 먹고 있었다. 오프닝 시퀀스가 마무리된 다음 장면에 집을 사기 위해 수상한 부동산 중개인 '마틴(조나단 아리스)'을 찾아가는 젬마와 그녀의 남편 '톰(제시 아이젠버그)'이 등장하고, 마틴은 두 사람에게 똑같은 모양의 교외 주택이 들어선 '욘더'라는 개발구역에 있는 9호 집을 소개한다. 9호 집은 꽃이나 텃밭을 가꿀 수 있는 마당도 갖췄을 뿐만 아니라, 굉장히 모던한 가구들이 기본 옵션으로 설치되어 있는 좋은 집이다. 그러나 꺼림칙한 분위기를 감지한 젬마와 톰은 집 구매를 포기하고 욘더를 떠나려고 하지만, 계속 9호 집 앞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강제로 여기에 갇히게 된다.

욘더를 벗어나기 위해 집의 지붕으로 올라간 톰의 시선에는 누가 봐도 획일화된 집들이 끝없이 이어져 펼쳐졌을뿐더러 모양이 크게 다르지 않은 구름이 하늘에 수놓아져 있었다. 집의 경우, 교외의 고독함을 표현한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빛의 제국’ 속 주택의 구도를 반영한 것처럼 9호 집을 정면으로 담아낸 장면과 두 사람의 집과 똑같은 집들이 펼쳐진 광경을 버즈 아이 뷰로 담아낸 장면이 상호작용을 통해 다양성이 소거된 사회가 얼마나 고독하고 무서운지 보여준다. 구름의 경우, 중절모에 레인 코트 차림의 사내가 떼로 등장하는 작품 ‘골콩드’를 반영해서 각양각색의 형태를 잃은 구름을 하늘에 빈틈없이 채워 무개성이 야기하는 두려움과 위압감을 강화한다. 다만, 중반부에 젬마와 톰이 정체불명의 아기를 키워야 한다는 갑작스러운 설정이 추가되어 혼란을 일으킨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 의무가 된 양육이 획일적이고 기계적인 사회적 행동을 상징하므로 이 설정도 마찬가지로 <비바리움>이 전달하고자 하는 공포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후반부에는 개성이 사라진 공간 때문에 미치기 시작한 젬마가 욘더에서 벗어나기 위해 성인이 된 정체불명의 소년을 쫓다가 2차원과 3차원 사이의 경계가 사라진 미지의 공간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 공간은 가상과 현실의 벽을 무너뜨린 모리츠 코르넬리스 에셔의 작품 ‘상대성’을 연상시킨다. 작품 ‘상대성’처럼 동일한 모양을 이용해서 틈 없이 공간을 채우는 ‘테셀레이션’을 활용해 순환성을 띤 미지의 공간을 구축했으며, 그 공간을 반사와 회전의 기법을 통해 빽빽하게 네 가지 공간으로 분할한다. 정신없이 공간을 돌아다니는 젬마는 끝이 보이지 않는 기계적이고 획일적인 생활양식 네 가지를 목격하며 욘더를 탈출할 수 없음을 직감하고 만다.

소년에서 어른이 된 정체불명의 남성은 유유히 두 사람의 차량을 타고 욘더를 벗어나 마틴이 있는 부동산중개소에 도착한다. 그리고 그 남성은 마틴으로부터 '마틴'이라는 이름을 물려받으며 또 다른 부부를 맞이한다. 이와 같은 순환적인 전개의 궁극적인 목표는 관객에게 보여주고자 한 시각적 공포를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지속시킴으로써 겉으로만 다양하고 실질적으로 개성이 함몰된 현대사회를 경계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과 연관이 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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