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수리남영역
2019.10.21
스포일러 주의!
'신문기자' 간단 리뷰
1. 일본에 대해 최근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생각이 있다. 이것은 지극히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며 경우에 따라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비난할 수 있다. "일본은 동아시아 주요 국가(한국, 중국, 대만, 일본) 중 정치적으로 가장 미개한 나라다. 그들은 역사적으로 '집단적 저항'을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에 주체적으로 시민의 권리를 찾는 방법을 모른다. 게다가 그들은 순종적인 것을 미덕으로 삼는 민족이다". 그들은 전쟁 직후 왜곡된 역사를 배우며 지속적으로 선동 당한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에도 '일부 사람들'은 현 정권에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들이 힘을 얻기에 일본인들은 '문제의식'에 대해 너무 둔감하다. 어릴때부터 왜곡된 역사로 선동 당한 국민성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다른 나라'인 우리나라나 중국이 밀어붙이고 비난한다고 될 일도 아니다(때문에 이 글도 큰 의미는 없다). 그들 스스로 바뀌어야 한다. 2. '신문기자'는 부정한 비리를 일삼는 내각과 이를 막으려는 일부 양심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것은 지난 정권 때 한국에서 제작된 일부 극영화들과 닮은 꼴이다. 때문에 한국 관객이라면 이런 영화가 낯설거나 새롭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어느 관객이건 영화의 디테일에 이의를 제기하긴 좋다. 실제로 존재하는지 모르겠지만 '내각정보실'이라는 기관은 "옛날 국정원과 닮았네"라고 생각할 수 있다. 고급 인력들이 모여서 트위터에 거짓선동하고 가짜뉴스 배포하는 꼴이 대충 그렇다. 그런데 '정보'라는 단어가 들어간 이 기관은 생각보다 별로 똑똑해 보이진 않는다. 언론의 취재활동과 기사 배포에 대해 '사전통제'가 아닌 '사후공작'을 진행한다. 그토록 막강한 권력을 가진 기관이라면 우리나라 군사정권 때처럼 윤전기 옆에 서서 검열을 진행하면 될 일인데 그걸 안 한다. 혹시 '민주주의의 형태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안 한다고 이해해볼까 했지만 이미 '바보가 아니면 다 알아볼 정도의 노골적인 조작'을 일삼는데 뭐 겁나서 숨겠는가. 3. 그 밖에 내각정보실은 겨우 한다는 게 신상정보 유출하고 트위터에 거짓정보 쓰고 가짜뉴스 배포하는 수준이다. 공작활동이라기엔 지나치게 어설프다. 게다가 민간인 사찰도 제대로 못해서 그걸 경찰에 의뢰한다. (저 옛날 국정원도 어설픈 짓 많이 했지만) 영화 속 내각정보실은 심각한 수준이다. 혹시 국정원을 벤치마킹해서 만든 가상의 기관일까. 여기에 심각한 문제는 영화 중반까지 트위터의 영향력이 꽤 크다는 점이다. 일본사람들이 실제로 트위터를 얼마나 신뢰하는지 모르겠다. SNS는 여론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거르는 장치 또한 없기 때문에 거짓선동의 장이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트위터리안과 대중들은 그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트위터상의 정보에 대해 절대적인 신뢰를 하진 않는다(일부 사람들 제외하고). 그런데 이 영화에서 트위터의 영향력은 너무 막강하다. 실제로 일본사람들이 SNS나 커뮤니티상의 정보에 대해 이토록 절대적으로 신뢰를 하는지 궁금하다. 4. 트위터에 대해 궁금한 이유는 주인공 요시오카(심은경)에 대한 영향도 크다. 사실 영화 중반까지 보면서 "쟤 기자 맞아?"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뭔가 인상은 쓰고 심각하게 고민은 하는데 중반까지 대세에 미치는 영향이 전혀 없다. 그저 기사는 킬 당하고 트위터에 끄적이는 것이 전부다. 그리고 트윗에 달리는 답글 반응을 보고 괴로워한다. 나는 SNS 플랫폼 시장에서 트위터는 '한 물 간 SNS'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트위터보다는 인스타그램이나 텀블러 등 사진 중심의 SNS가 더 인기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아직도 트위터가 대세구나"라고 생각하다가도 중반까지 지나칠 정도로 트위터에 의존해서 의아하게 봤다(그러고 보니 '날씨의 아이'에서는 야후에서 만든 '듣도 보도 못한 SNS'가 등장했던 것 같다). 5. 스마트폰과 트위터가 대세를 이룬다는 시대지만 정작 '언론'은 지나칠 정도로 퇴보해있다. 정부의 비리를 까발리는 기사가 등장하는 장면은 심야시간에 기사를 마감하고 윤전기 돌리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새벽시간에 신문배달부가 서점과 가판대에 신문을 깔아두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사실 그 장면만 그대로 떼어다가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더 포스트'나 한국영화 '1987'과 편집해도 어색하지 않은 수준이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나는 일본의 인터넷 보급률이 대체 얼마인지 궁금해졌다. 우리나라의 절반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저 장면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실시간 검색어가 올라가는 포털사이트나 출근길에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는 시민들, 학생들의 모습이 등장하는게 더 그럴싸했다. 영화가 내내 가져온 무게감을 유지하기 위한 의도라고 생각해봐도 저 장면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국내 언론만 해도 종이신문은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은 상태다. 대형 메이저 언론마저 광고수익을 유지하기 위해 종이신문을 내며 대부분 언론사는 온라인과 SNS로 뉴스를 배포한다. 6. 요시오카가 근무하는 언론사의 시스템은 꽤 그럴싸했다. 특히 진노 부장(키타무라 유키야)으로 대표되는 데스크의 시스템은 한국의 기자들도 꽤 공감했을 것이다(그러고 보니 빨간펜도 꽤 오래된 방식이다). 모든 언론사의 기사는 기자의 이름을 달고 나간다. 그러나 그 기사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람은 기자 위에 부장과 편집국장이다(물론 나중에 기자도 책임을 진다). 그러니 이상한 기사가 등장했을 때는 기자를 욕할 것이 아니라 데스크를 욕해야 한다. '언론사 데스크'로서 진노 부장은 꽤 괜찮은 사람이다. 균형을 지킬 줄 알고 때로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요시오카가 여기에 저항하는 것은 언론을 소재로 한 영화 중 꽤 전형적인 구조('스포트라이트'에도 등장했다). 다만 '신문기자'의 경우에는 이 구조가 앞뒤 맥락도 없고 너무 전형적으로 묘사돼 재미가 없다. 7. '신문기자'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은 "요시오카의 아버지는 '오보' 때문에 자살했다"는 것이다. 기자가 오보 때문에 목숨을 끊으려면 꽤 복잡한 전제가 따른다. 사회부 기사의 경우 가능한 일인데 오보 때문에 누군가 재산상의 피해를 입거나 무고한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다. 자신의 오보 때문에 파장이 생길 경우 어떤 기자들은 죄책감에 목숨을 끊기도 한다.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선배들에게 들은 이야기다. 그런데 요시오카의 아버지가 쓴 기사는 말 그대로 '오보가 된 기사'에 불과하다. 대중들의 비난이 있었겠지만 그 또한 잠깐이다(인터넷 보급률도 낮은 나라인데). 여담이지만 우리나라 모 언론사의 경우 '오보' 때문에 인지도를 얻고 지금은 메이저 언론사로 성장했다. 8. '신문기자'는 극적 전개로는 꽤 뛰어나다. 영화를 보면서도 "대학을 짓는 게 왜? 총리가 뒷돈 챙겨먹었나?" 정도로 생각할 수 있는 음모에 더 엄청난 것을 심어둔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충격을 줄만한 사건'을 찾아서 그려낸다. 이건 일본 관객뿐 아니라 한국 관객도 충격을 받을 일이다(아마 한국 관객이 더 충격을 받을지도). 때문에 중반까지 심심하던 전개는 뒤로 갈수록 격해진다. '신문기자'는 계속 봐야 재미있는 영화다. 여기에 '정의의 편이 패배했다'는 식의 결론도 흥미롭다. 아마 한국영화였다면 어떤 피해를 보고서라도 정의가 승리하는 전개를 보여줬을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꿈도 희망도 없다. 아마 감독이 생각한 일본의 미래가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9. 결론: '신문기자'는 장점과 단점이 명확한 영화다. 그런데 내 경우에는 단점이 더 많이 보인다. 분명 동종업계 종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딴 세상 기자의 이야기'같다. 윤전기 돌아가는 현장에도 직접 가봤고 일간지 마감도 해봤는데 이 영화는 '아득히 먼 옛날 이야기'같다. '인터넷 시대에 기자'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정말 먼 이야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