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우리의 환대

클라라는 선을 밟지 않고 길을 가기 위해 앞을 봐 줄 동행자가 필요했다. 루카스라는 외부의 적을 지정함으로써 테오-아네스 부부는 내부의 싸움을 멈췄다. 짐승 무리는 길 위의 따분한 일상 속에서 지하실의 특별한 환상을 내심 꿈꾼다. 그 어둠 속에서 아직 사냥꾼이 되지 못한 마커스는 라이터 불로 지난날 아버지와 친구들의 사진을 비춰 본다. 친구는 기본적으로 신용 관계라는 점에서 신앙과 유사하다. CCTV 아래서 우리는 다시는 예전의 우리가 되지 못할 것이다. 앞을 보지 않고 걷는 동물이 거리거리 넘치는 지금 여기서도 빗나간 총성은 쓸쓸히 울려 퍼진다. 젊은 여자가 섹스를 하기 위해 필요한 건 마음의 준비뿐이다. 전화기 너머에서 루카스를 기존 모임으로부터 끌어낸 나디아의 자신감 넘치는 대시는 그녀 경험상 틀린 적 없었을 그 사실로부터 비롯됐을 것이다. 또한 그녀마저 결국 루카스를 추궁하게 한 것도 그 경험적 사실 맨 서두의 수식어 '젊은'의 범위에 있었을 것이다. <더 헌트>에 나오는 유난히 잦은 전화 장면들은 수신자와 발신자 중 한쪽 범주만 보여 준다. 수화기를 든 이쪽 소속이 보이는 가운데, 반대편의 저쪽 소속이 목소리로만 연결된 상태로 진행된다. 이 교섭의 통화 결과로 수-발신자 두 진영은 함께할 것인지 갈라설 것인지 편을 고른다. 거절에 대한 보복을 겪은 후 사회적 약자로 분류되는 계층을 다시 가까이하기는 쉽지 않다. 사슴의 계층에 속해 있음을 자각한 남자의 지혜는 끌림에도 불구하고 여자가 먼저 다가올 여지를 원천 봉쇄하는 것이다. 현대 도덕관 아래 아이나 여자처럼 치외 법권으로 지정된 무리 바깥은 유죄 추정의 총알을 피해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총구에 데여 본 남자는 길의 추위를 견디는 편이 차악임을 안다. 페미 산업은 전세의 까방권을 후세가 무임 계승하고 휘두른다는 점에서 홀로코스트 산업과 비슷한 행태를 보인다. 모두에게 패배가 예정된 게임, 2 등 시민뿐이다. 유죄 추정, 다른 말로 마녀사냥은 그 자체로도 야만적이지만 구타 유발 인정 풍토 조성 즉, 인민재판을 조장한다는 점에서 더없이 천하다. 예를 들어 자칭 '쒸눼퓌일' 사이에서 현대에 와 조성된 관크 문화가 있다. 주변 관객에게 부동 자세로 시체처럼 정적을 지킬 것을 명령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천차만별인 그 기준 중 자기 것에 따르지 않는 관객을 물리적 완력으로 제압하는 짓을 영웅적 행위 aka 참교육이라고 여며, 누군가가 나서서 그따위 짓거리를 하는 걸 보거나 들으면 통쾌해 한다. 작금의 인터넷 익명 영화 커뮤니티에는 대나무 숲이 필요할 뿐인 사회 부적응 관종 찐따들이 모이고, 관크썰을 올리는 건 여기서 따봉을 한가득 받는 손쉬운 방법 중 하나다. 결국 지옥은 사적 제재로 이루어진 곳이다.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타인에게는 턱없이 엄격한 프로불편러는 그 정반대에 있는 평범한 악보다 덜 악하지 않다. 운이 따라 극장에서 이따위 지적 하층민들과 상종하는 일이 가급적 없길 바랄 뿐이다. 21:55 씨네Q 신도림 (씨네필) 9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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