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로니
2024.07.20
엑스맨은 인간에 관한 이야기였다.
엑스맨은 인간에 관한 이야기였다. 뮤턴트가 아니었다면 어땠을지 상상해 보기도 하지만, 태어나는 순간부터 함께해온 이 능력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의 일부라는 것. 때로는 끔찍한 고통과 상처를 남기더라도 그것까지 내가 감당해야 하는 몫이라는 것. 자식이 나와는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은 시련을 겪지 않도록 나부터 맞서싸워야 한다는 것. 진정 관용은 불가능한 것일까. 끊임없이 뮤턴트와 인간의 공존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이야기해온 엑스맨이지만, 이 시리즈는 그러한 희망에 대해 무척 회의적인 태도를 보인다. 아무리 엑스맨이 온갖 위협으로부터 인류를 지켜주더라도 조금이라도 위협이 될 것 같으면 인간들은 언제나 그들을 억압하려 든다. 센티넬을 만들고, 뮤턴트를 구금하고, 끝내 제거한다.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이렇게까지 상황을 극단적으로 그릴 필요가 있었나 싶기도 하다. 당연히 한순간에 완벽한 공존을 이룰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좀 더 희망적인 주제를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동시에 과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이야기가 너무 어둡다고 말할 자격이 있는지 반성하게 된다. 살인 로봇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학살하지 않을 뿐, 과연 우리 사회가 만화 속 인간들에 비해 더 관용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는지 모르겠다. 첫 시즌의 방영 이후 30년이 넘는 세월만에 제작된 후속작에서 이토록 암울하고 비극적인 이야기를 다룬다는 것은, 그 긴 시간 동안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음을 방증하는 것은 아닐까. ㅡ 처음에는 기존의 로봇 센티넬이 아닌 인간이 기계화된 프라임 센티넬의 등장이 다소 과하게 느껴졌다. 일반인이 센티넬이 되어서 뮤턴트를 사냥하는 모습이 주는 비주얼적 충격에만 집중한 설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엑스맨의 주적인 센티넬이 혐오 그 자체를 상징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인간이 센티넬이 된다는 것은 내포하고 있는 의미의 측면에서 굉장히 중요한 설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뮤턴트에 대한 혐오가 얼마나 극에 달했으면 스스로를 무기화하는 것에 동의했을까. 게다가 이러한 혐오는 전염성을 가진다. 처음에는 일부에서 시작했을지라도 점차 세력을 확장하여 혐오감을 품지 않았던 이들까지도 잠식해버린다. 프라임 센티넬은 인간이 스스로 뮤턴트 사냥에 동원되었다는 점에서 너무나도 잔인하고 비극적이지만,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희망적이다. 시리즈에서도 언급되듯이 프라임 센티넬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인간성이 회복될 가능성이 있다. 만약 적절한 치료법을 개발해낸다면 그들은 다시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다시 한 번 관용이라는 희망을 기대해볼 수 있다. 사실 이 시리즈를 보면서 매그니토가 옳았던 것은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다. 찰스가 품었던 희망이 순진한 망상이었던 것은 아닌가 의심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꿈꾸는 것을 그만둘 수 없다. 그 긴 세월 동안 정말로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으면 어떤가.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 엑스맨이 다시 한 번 우리를 희망으로 설득할 것이라고 믿는다. ㅡ 완성도는 지금까지 영상화된 슈퍼히어로 장르의 작품들 중에서 최고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다. 90년대에 방영된 원작 시리즈의 작풍을 그대로 계승하면서 현재의 기술력을 가미한 애니메이션은 그저 감탄만 나온다. 각 멤버의 능력과 개성을 십분 살린 액션 연출도 훌륭하다. 에너지빔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사이클롭스, 상대가 누구든 무엇이든 다 때려부수는 로그, 적들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울버린까지. 모두 내가 엑스맨에 품는 기대를 완벽하게 충족시키는 활약들이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자신의 능력으로 동료들을 지켜낸 갬빗의 마지막 모습은 수많은 감정들을 느끼게 하였다. 기존 시리즈에서는 언급되지 않았던 오메가 레벨 뮤턴트 설정의 등장도 좋았다. 여신이라는 칭호에 걸맞게 날씨와 하늘을 지배하는 스톰의 모습은 엄청난 흥분감을 주었다. 1회에서 토네이도를 만들어서 센티넬들을 쓸어버리는 장면은 그저 경이로웠다. 마침내 인내심이 바닥난 매그니토가 지구 전체의 전자기장을 제어할 때는 소름까지 돋았다. 인류에게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단념했던 그가 스스로 지구의 전자기장을 되돌려놓는 장면은 이 시리즈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이다. 음악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기존의 스코어를 그대로 가져온 오프닝 테마는 한편 한편을 볼 때마다 절대 건너뛸 수 없는 부분이었다. 매회 오프닝의 영상도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에 꼭 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번 시즌의 오리지널 스코어들도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웅장하면서도 트렌디하고, 애상적이기까지 한 음악들은 각 장면의 완성도를 높였다. 특히 매그니토의 연설, 스톰의 편지, 서머스 가족의 상봉 등 마음을 울리는 장면들은 모두 그만큼 훌륭한 음악이 함께했기에 더욱 완벽했다. ㅡ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드는 시리즈이다. 장면 하나, 대사 하나까지도 허투루 쓴 것이 없다. 엑스맨 시리즈를 깊이 사랑하고, 그 안에 담긴 주제의식에 깊이 공감하는 사람들이 만든 것이 분명한 작품이다. 다음 시즌에서는 과연 어떤 이야기로 우리에게 설렘과 감동을 줄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2024년 7월 18일부터 20일까지 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