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이번 제72회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과 퀴어종려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각본상을 받은 만큼 각본 자체의 완성도에 대한 기대도 물론 컸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보다도 이 영화가 퀴어종려상을 받을만한 영화일까 하는 궁금증이 더 컸고, 아직 관람하지 못한 셀린 시아마 감독의 전작 <톰보이>, <걸후드>, <워터 릴리스> 등과 관련해서 꾸준히 언급되는 감독의 '여성적 시선'이 더더욱 궁금했다. 이 영화는 177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시대극인데, 영화를 보다 보면 시대극을 본다기 보다는 현대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 영화가 시대적 배경을 묘사하는 데 부족함이 있었다는 말이 아니라, 인물들과 배경에 대한 묘사와 영화에서 느껴지는 메시지가 현대적으로 느껴진다는 의미다. 시대극에 퀴어 코드가 접목될 때, 인물들의 사랑을 '금지된 사랑'으로 치부하는 세계에 대한 묘사와 그 세계와 인물 간의 갈등이 큰 부분를 차지하는 양상을 띠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의 경우에는 그런 세계와 인물 간의 갈등보다 두 인물 개인의 갈등과 감정을 보다 뚜렷하고 세밀하게 직시한다. 어떻게 보자면 '시대극'이라는 개념은 사실상 이 영화를 수식할 수 있는 단어 중 하나에 불과해 보인다. 화가는 피사체를 관찰하고, 피사체는 화가를 응시한다. 저택에 도착한 후부터 마리안느는 엘로이즈를 관찰하기 시작하고, 초상을 그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아니, 명백히 말하자면 그전부터) 엘로이즈는 마리안느를 응시한다. "당신이 나를 바라보며 그림을 그릴 때 나는 누구를 바라볼까요?", 엘로이즈가 마리안느에게 하는 말이다. 마리안느는 엘로이즈의 모습을 화폭에 그리고, 엘로이즈는 마리안느의 모습을 머리와 가슴으로 그린다. 영화 안에서도 잠시 언급되기도 하는데, 이 영화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신화를 재해석하는 영화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에우리디케를 마지막으로 바라보는 오르페우스의 심정'을 재해석해내는 영화다. 특히나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슬픈 해후를 다시금 온전하게 재현해내는 순간이다. 그 순간에도 마리안느는 엘로이즈를 관찰하고, 엘로이즈는 마리안느를 응시하며, 화가와 피사체 사이에는 여전히 일정한 거리가 존재한다. 그 순간, "후회하지 말고 기억할 것", 그 말의 의미가 슬프고도 그립게 다시금 새겨진다. 엘로이즈의 응시와 마리안느의 관찰에 담긴 감정을 무어라 형언할 수 있을까. 그저 아름답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여성 서사로서도 퀴어 서사로서도 상당히 만족스러운 영화였다. 지금까지 본 여성, 퀴어 영화 중 최고라 꼽자면 조금 망설여지지만 근래 본 그리고 볼 여성, 퀴어 영화 중에는 단연 최고의 영화가 되지 않을까 한다. 사실 그런 생각들은 뒤로하고, 가급적 빨리 이 영화 안에서 휘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계속해서 느끼고 싶은 생각이 더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