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스스로를 한껏 낮추면서도 지나간 것들에 애정을 두는 이 방식이 끝내 마음에 들었다.

<데드풀과 울버린>(2024)은 '데드풀'이 그랬듯 제4의 벽을 깨면서 배우와 배역의 경계를 허물고 '울버린'이 그랬듯 퉁명스럽고 무심하게 어떤 것을 지켜내는 여정을 묘사하는 영화다. 제법 오래 지속된 MCU 자체에 대한 피로감을 서사의 발판으로 삼는 방법은 그걸 자인하는 일이고, 라이언 레이놀즈와 숀 레비 등이 협업한 각본은 바로 거기서 시작한다. 21세기 폭스의 피인수로 단순히 미디어 제작 환경만 달라진 게 아니라 과거 마블코믹스가 여러 곳에 팔았던 캐릭터 영화화 판권으로 인해 분산된 이야기 조각들을 봉합하거나 떠나보내는 과정들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 점이 <데드풀과 울버린>의 바탕이 된다. ⠀ 이 세계관에 대하여 최근 몇 년에 걸쳐 누적된 피로감과 난관을 단번에 해소하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그럼에도 이야기는 계속되고 우리는 다음을 향해 어찌되었든 나아가야만 한다. 관람하는 시간선이 다양화되고 같은 상영시간 안에도 우리에게 노출되는 정보의 양은 많아졌지만 결국은 '수퍼히어로' 장르의 원류는 그리 먼 곳에 있는 게 아닌지도 모른다. 그것이 사진 한 장에 담긴 소박한 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일지라도, 혹은 원치 않는 '능력'을 갖게 된 이가 간신히 세계에 적응하기 위한 분투기일지라도. <데드풀과 울버린>은 기획을 성립시키기 위해 멀티버스 사가의 설정을 끌어오면서도 한동안 잊혔던 20세기 폭스 영화들에도 잠시나마 생명력을 부여한다. 스스로를 한껏 낮추면서도 지나간 것들에 애정을 두는 이 방식이 끝내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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