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아이리시맨'은 마틴 스콜세지가 오랜만에 연출한 갱스터 범죄물로, 그의 초반기를 함께한 로버트 드니로, 조 페시, 알 파치노가 출연한 영화다. 이미 제작 단계에서 미친 캐스팅 소식에 넷플릭스 배급이라는 실망적인 뉴스에 디에이징으로 인한 개봉 연기까지, 스콜세지라는 이름 하나 만으로도 모든 영화 팬들의 기대를 받을 영화에 대한 내 호기심은 정말 하늘을 뚫었다. 그리고 '아이리시맨'은 '좋은 친구들' 같은 역사에 남을 마피아 범죄 영화들을 만든 감독이 어쩌면 자신의 필모그래피에서 최후의 마피아물로 남길 듯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조폭과 범죄 조직 관련 영화들은 자주 범죄 미화라는 딱지가 붙기도 한다. 비록 주인공들의 행동과 결말이 긍정적이지 않을지언정, 이들의 정신을 높게 사고 있는 어조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신세계'에서 이정재의 타락이나 황정민의 잔혹한 죽음이라는 결과는 범죄의 비인간성을 나타낼 수도 있지만, "부라더" 정신과 폼나게 죽는 뭔가 멋있는 모습들도 있지 않나. 이는 미국의 마피아 영화들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작은 범죄로 시작하는 양아치들이 조직의 계단을 오르며 나라를 뒤흔드는 간부나 보스가 돼가고 결국 자아와 편집증에 의해 자멸하는 패턴을 가진 이 서브장르의 틀은 '대부' 시리즈에서 완성이 됐다시피 하며, 그 이후에 지금까지도 모두 그 틀 안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아이리시맨' 또한 그 틀 안에 존재하는 영화지만, 그동안 나온 수많은 마피아 영화들 중에서 주제적으로는 가장 단호한 톤을 가지고 있다. '좋은 친구들'이나 '카지노'처럼 화려한 마피아물들을 한때 만들며 커리어를 쌓아올린 감독이지만, 이제 장로 거장이 된 스콜세지는 자신의 작품들을 한번 되돌아보는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그 시기를 함께한 배우들을 다시 소집하여, "의리"와 "가족애"로 단결한 범죄조직의 비겁하고 이기적이고 비인간적인 모순과 범죄로 모든 것을 얻는다는 허상에 빠진 사람들이 그 허상에서 깨어나올 때 깨닫는 엄청난 외로움과 비참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바로 그 의미에서, 이 영화는 마틴 스콜세지 최후의 마피아 영화가 될 것 같다. 로버트 드니로, 조 페시, 알 파치노가 모두 연기가 훌륭한 것은 뭐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이 작품을 위해 은퇴를 번복한 조 페시는 말할 것도 없고, 배우로서 전성기는 확실히 지난 드니로와 파치노가 거장과 다시 뭉치며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고 있는 듯한 모습은 영화 팬으로서는 정말 감동이었다. 이들의 존재감에서는 여전히 살인적이고 압도적이면서 매력적인 카리스마가 느껴져서 도저히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고 있지만, 이들의 표정에는 언제나 의심과 우울과 불안이 묻어있어 영화의 주제의식을 계속 전달하고 있다. 거사를 치른 후 술과 마약과 여자에 쌓여 파티하는 씬들은 짧게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듯하지만, 그 행복이 얼마나 허상적이고 불안정한지가 주연들의 대화와 목소리에서 느껴지고 조연진들에게서 보여졌다. 조연들도 정말 캐스팅이 미쳤다는 점도 하나의 관전 포인트였다. 레이 로마노, 바비 칸나발레, 제시 플레몬스, 안나 파킨에 하비 카이텔까지... 진정한 범죄의 서사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잠시 디에이징 얘기도 하자면, 이런 최신 기술에도 최고의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들에 놀라기도 했지만, 이런 최고의 연기를 온전히 반영해주며 감독의 비전을 이뤄주는 기술력에도 놀랐다. '제미니 맨'의 디에이징 기술이 가장 야심차고 수준 높다고 생각하지만, 가장 완성된 결과물은 이 영화의 기술이 아닌가 싶다. 물론 처음에는 약간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사실 이는 관객으로서 이게 디에이징된 배우라는 것을 인지하고 봐서 그런건가 싶은 것이, 어느 순간부터는 전혀 디에이징이 전혀 방해가 안 되고 그냥 젊은 모습의 배우들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최상급 마피아물들을 만든 감독이 늙어서 다시 젊은 시절의 작품들을 되돌아보는 영화인 만큼, 늙은 배우들을 젊은 대역들로 바꾸기보단 제작비를 더 쓰고 개봉도 연기시켜서 까지도 이 기술을 쓰려고 했던 이유도 이해할 수 있었으며, 그에 상응하는 좋은 결과물도 나왔으니 70대 후반 영화감독의 기술 친화력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새로운 기술의 능력과 한계도 알고, 단순히 그 기술을 쓰기 위해서 영화를 만드는게 아니라 영화를 위해 신기술을 적극적으로 기용할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비전을 실천하는 노장의 멋있는 장인 정신은 정말 감동적이다. 스콜세지 영화답게 매 씬의 분위기를 더욱 효과적으로 증폭해주는 삽입곡들도 훌륭했고, 델마 슌메이커의 날카롭고 화려한 편집에 찰진 대사들까지... 그야말로 스콜세지라는 거인의 힘이 느껴지는 영화였다. 샌디 파월의 의상에 시대를 풍성케해주는 프로덕션 디자인까지, 마틴 스콜세지는 어찌보면 자신이 생각하는 "시네마"의 어벤져스와도 같은 제작진을 통해 요즘에는 도저히 나올 수가 없어보이는 3시간 30분 가까이 되는 대서사극을 연출했다. 그 시도와 야심과 결과물에 대해서는 정말 인정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긴 러닝타임은 분명 호불호가 갈릴 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주인공이 상당히 수동적이고 애매모호한 캐릭터다. 이는 범죄와 폭력의 허무함과 비인간성을 표현하기 위한 또 하나의 수단이었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나쁘지 않고, 오히려 수동적인 주인공이었기 때문에 후반부에서 더욱 강력한 임팩트를 남기는 케이스라고 본다. 하지만, 그 수동성 때문에 긴 러닝타임이 꽤 루즈하게 느껴지는 것 또한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조 페시로 대표되는 마피아와 알 파치노의 지미 호파라는 두 절친 겸 은인들 사이에서 갈등하는 드니로의 프랭크 시런의 모습에서 상당한 몰입감이 있긴 했으나, 그런 부분들을 제외하고는 좀 늘어지긴 했다. "시네마" 논란으로 화제가 된 마틴 스콜세지의 발언들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어느 쪽 사람이던 이 영화를 보면 스콜세지가 정확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영화들은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못하고 있다. 현존하는 최고의 감독 중 하나인 스콜세지마저도 넷플릭스를 통해나마 개봉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스콜세지는 자신의 언어로, 그리고 영화의 언어를 통해 사장 논리에 의해 사장되고 있는 영화 문화, "시네마"에 대해 관객에게 토론거리를 던졌다. 덤으로 수작을 만들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