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션스
2024.08.21
스포일러 주의!
저마다의 신념을 품고 나아가는 삶
영화는 신의 유무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20세기 초반의 두 지성의 대화로 시작되었는데, 비단 종교적인 이야기만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영화를 흥미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했다. 정신분석학의 대가인 프로이트가 루이스를 분석하듯 건네는 말은 장난스러움 속에 뼈가 담겨 있었지만 왠지 미워할 수가 없었다. 루이스는 프로이트보다 한참 어리지만 그의 뜻을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견해를 꺾지 않는 굳은 신념을 보였다.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신의 존재 여부에 관한 논쟁이 벌어지면 격앙되어 얼굴을 붉히기 마련일 텐데, 두 사람은 처음부터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를 잃지 않았기에 감정적으로 변질되지 않았다. 덕분에 이들의 논쟁이 건강하게만 보였다. 예나 지금이나 논쟁거리가 될 여지가 충분한 유신론자와 무신론자의 대화가 이어지면서 각자의 이야기 또한 당연히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프로이트와 루이스가 각자 살아온 삶이 달랐기 때문에 저마다 신을 믿고 믿지 않는 현재에까지 이르게 된 거라 여겨졌다. 프로이트는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유대교 신자인 아버지와 살았는데, 어린 프로이트를 가톨릭 신자인 유모가 돌보면서 보편적으로 일컫는 신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하지만 유모의 종교를 프로이트가 접한 사실을 아버지가 알게 되면서 그녀는 쫓겨나게 된다. 아직 어린 프로이트의 입장에서 아버지가 믿는 신과 유모가 믿는 신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터이기에 이 사건이 상당한 충격으로 남지 않았을까 싶다. 또 한 가지 프로이트가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까닭은 딸 안나에게서 비롯된 것 같았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답게 프로이트가 안나의 정신에 대해서 깊이 탐구하는 장면이 등장했었다. 처음엔 이 장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할 수 없었지만, 안나가 무의식중에 언급한 말을 정정해 주는 장면에서 프로이트는 바꿀 수 없는 것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 보였다. 안나가 도로시라는 여자와 깊이 사랑하는 관계였기 때문에 프로이트는 딸을 위해서라도 신을 부정할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닌가 싶었다. 이렇게 과거 회상을 통해 프로이트가 무신론자가 된 건 가족의 영향이 컸다는 사실이 인상적으로 남았다. 한편, 루이스가 유신론자가 된 것 또한 그의 과거 영향이 지대했다. 프로이트의 어릴 적 경험과 같이 루이스 역시 어릴 적에 깊은 인상을 받은 한 가지 경험이 그를 신에게 인도한 듯했다. 고요한 숲속을 거닐던 중에 본 사슴이 현재의 루이스에게까지 생생하게 남아 있었던 걸 보면 그 아름다움에 감복해 이 모든 걸 창조한 신에게 경이로움을 느꼈을 거라 여겨졌다. 과학적인 시선으로 접근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어린 루이스에게는 신의 창조물로 보였을 테니 그 믿음이 굳건해진 게 이해가 됐다. 또 한 가지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을 당시에 바로 곁에 있던 전우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망했으나 루이스는 쏟아지는 총알 세례와 성큼 다가온 죽음 앞에서도 살아남은 경험 때문이었다. 죽음의 사신이 바로 곁을 스치고 지나갔다는 걸 생생하게 느꼈다면 당연히 신의 존재를 믿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지 않을까 싶다. 프로이트와 루이스가 이렇게 각자의 삶을 살아오며 상대방은 알 수 없는 여러 경험을 했기에 그들은 저마다 신의 존재를 믿거나 믿지 않는 현재에 이르렀을 것이다. 살아온 삶의 궤적이 한 인간의 신념을 굳건하게 했기에 서로 다른 이념으로 논쟁을 벌였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믿음을 깎아내리거나 비하하는 등의 불쾌감을 주지 않고 존중하는 건강한 대화가 이어질 수 있었다. 믿음의 뿌리가 단단하면 그만큼 흔들리지 않는 게 당연했다. 그로 인해 이들은 마지막까지 상대의 믿음에 관한 의견을 듣고 웃으며 헤어져 자신의 신념 속으로 다시 젖어드는 끝을 보여줬다. 너무나 건실하고 지성이 듬뿍 담긴 존중의 대화를 통해 삶과 신념에 대한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한 거라 여겨졌다. 또한 자신과는 반대되는 뜻을 가진 상대를 존중하며 이어진 이 영화가 건강한 논쟁이 무엇인지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프로이트를 연기한 앤서니 홉킨스의 지성미가 돋보였다. 그리고 카메오 외에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얼굴을 보게 된 매슈 구드 또한 역할에 잘 어울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