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지니어슬
2019.11.29
‘정가영 유니버스’에는 감독님의 또 다른 자아 ‘가영’이 등장한다. ‘가영’은 항상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 먼저 내밀한 욕망을 보이며 구애하는데, 그 과정은 항상 가영의 주도 아래 노골적으로 그려진다. 그는 여성화자로서 ‘주체적인 연애’와 ‘여성의 성적 욕망’이란 화두를 꾸준히 꺼내놓는다. 이를 여성 감독의 눈으로 가벼운 주제마냥 툭 던진다는 게 확실히 새롭고, 또 결정적으로 흥미를 유발하기 때문에 가끔씩 이음새가 삐걱대더라도 계속해서 가영을 지켜보게 된다. 다만 대부분의 ‘가영’이 애인 있는 남자나 유부남과 비윤리적 관계를 형성하려 한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역시나 영화 <하트>에서도 그의 유니버스 속 비슷한 패턴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 이미 비윤리적인 관계를 맺고 있던 성범이 또 다른 비윤리적 관계를 평가하고 조언해주는 상황이라니, 어떻게 보면 참 웃긴 일이고 어떻게 보면 참 기가 찬 일이다. 거기에 황당무계한 장르적 설정들이 더해지면서 영화의 정체성이 흐려지는데, 다행히 그 때 영화가 2부로 접어들며 1부의 내용이 가영의 시나리오 속 내용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감독은 대본을 받아 든 배우와의 대화를 통해 관객의 목소리를 개입시킨다. 영화를 보고 관객들이 던질 만한 질문을 미리 상상하고, 시나리오를 읽은 배우의 감상을 통해 이를 짚어낸다. ⠀ ‘이런걸 만드는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요.’ ⠀ 직설적인 감상 표현을 듣고 가영은 잠시 상처받은 표정을 내비치더니 ‘이상한 관계’에 쌓인 생각들을 정리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여자들은 한번쯤은 이상한 관계를 겪게 되기 때문에, 그 때마다 극적으로 굴기 보다는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은 가벼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고. 그러면 더 견디기 쉬울지도 모른다는 말. 아마 감독의 매 영화가 시작되는 지점이 여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본인이 단순히 재미를 위한 거라고 해도, 자신에게 상처가 되었던 관계들을 영화로 풀어낸 ‘가영’처럼 실제 정가영 감독도 영화를 통해 성장하고자 했던게 아닐까. ⠀ ‘내가 성장하는 방식이니까 사람들이 말려도 계속 영화를 만들거’라고 대답하는 극중 ‘가영’처럼 정가영 감독 역시 계속해서 자신이 가진, 혹은 자신과 비슷한 이야기들을 꺼내고 반복하면서 자신을 가다듬고 성장하는 듯 했다. 아마 앞으로도, 꾸준히 그의 이야기들을 챙겨보게 될 것 같다. ⠀ 다만 그 과정이 아직까지는 납득이 안될 때가 많다. 예를 들어 대사가 가끔 허용되는 윤리적 한계를 시험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불안불안하다 싶을 때쯤 이 영화는 남자주인공의 입을 통해 ‘여자는 22살 이후에는 똥값이 돼’ 라는 대사를 기어이 전달하고 만다. 영화의 맥락에 큰 도움이 되는 대사도 아니었고, 가영이 이 말에 반박하는 게 아닌 수긍하는 것으로 컷이 끝난다는 것도 다소 충격적이고 불쾌했다. 다른 것보다 ‘재미’를 가장 중요시하는 감독님이다보니 모든 장면에 의미를 부여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확실히 그 부분은 영화를 보면서 불쾌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