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재윤
2019.12.07
스포일러 주의!
테이블 하나와 의자 두 개, 햇빛이 들어오는 자연 조명과 꽃, 그리고 다양한 카페 메뉴들로 펼쳐지는 네 커플의 이야기는 관객 앞에 내어지지만, 그 음료들처럼 여운으로 남겨진다. 영화 내내 주구장창 커피 마시며 대화하는 게 전부라니. 짐 자무쉬 감독의 <커피와 담배>, 그리고 커피와 담배를 패러디한 PTA의 <담배와 커피> 단편, 그리고 김종관 감독의 <더 테이블>. 전작들이 미국 위주의 일화를 다뤘다면 후작은 한국의 일화를 다뤘다고 봐도 무방할까? 이 작품의 대화는 과거를 생략했음에도, 과거가 인물들 눈앞에 생생히 펼쳐지는 대사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무엇보다 감독이 연출해 낸 배우들의 눈부신 연기는, 화창한 햇볕이 쏟아져서 그런지, 미모 때문인지는 몰라도 클로즈업된 화면에 넘치고 흘러 관객들까지 와닿는다. 이야기는 가면 갈 수록 미묘한 힘으로 관객들을 끌어당긴다. 감독의 필체는 예민하고 정적이며 섬세하다. 그를 화가로 비교한다면, 그의 붓 터치는 절제되어 있다. 드러내지 않으면서 드러내고 있다. 우리는 말소리라는 대화를 듣지만 대화 너머, 인물과 인물 간의 보이지 않은 이미지를 각자 머릿속으로 구현할 수 있다. 그의 붓은 표현되지 못한 심연 속으로 끝없이 침전한다. 이 침전은 이 대사에 이르러 절정에 달한다. "왜 마음이 가는 길이랑 사람 가는 길이 달라지는 건 지 모르겠어." 균열과 부조화의 말소리들 첫 번째 일화에서 유진은 회사에서 떠도는 각종 루머를 굳이 곧대로 믿고 물으며, 같이 사진 찍어 동료들에게 자랑하려는 창석에게 실망하고 자리를 뜬다. 그녀의 연기 활동을 그녀의 본 모습이라 믿으며 그녀에게 '변했다'고 말한다. 그녀는 '나 많이 변했어'라며 담담히 응대하지만, 그녀가 창석에게 바라는 점은 '예전 그대로의 자신'으로 봐 주었으면 하는 것이었을 테다. 그녀는 그에게 예전과 똑같다며 코를 만져보라고도 하지만 창석은 기억하지 못한다. 변하지 않은 것, 여배우가 아닌 그 이전의 그녀로서 대화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유진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이 영화는 이 첫 번째 일화를 비추어봤을 때 여배우의 미묘한 표정을 강조해서 찍고 있기는 하지만 어느 한 쪽의 시선만을 신경쓸 수 없다. 어떤 특정한 시점을 채택하고 있는 걸까? 주인공은 분명 네 명의 여성이다. 감독이 유려한 필치로 그려내는 네 명의 여배우의 표정과 대사는 그들의 마음을 투명하게 들어내려고 아우성이다. 그러나 그들이 내뱉는 말들은 그 자신의 본심과는 다르다. 그래서 더욱 알 수 없다. 이 균열과 부조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이 인물들의 심리을 포기하도록 부추긴다. '왜 그럴까?' 란 물음만 던질 수 있다. 두 번째 일화도 마찬가지다. 남녀는 앉아있지만 그들의 캐릭터와 상황은 그들의 대화를 통해 유추해야 한다. 인물들이 대화를 통해서 서로에 대해 반응한다. 관객은 호기심이 발동한다. 그들이 어떤 대사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까. 남녀는 오래간만에 만난 듯 하다. 그들은 속내를 말하지 않고 서로 우회하다가 남자 민호가 꺼낸 해외에서 사온 기념품들 이후로 그들은 급속도로 가까워지게 된다. 비로소 말로 못하던 서로에 대한 진심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여자는 저 혼자만의 상상이었을까봐 연락 한 번 하지 않았고 그건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김종관 감독은 솔직하지 못하고 의존적이며 쉽게 상처받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어리석음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이들의 솔직하지 못한 대화는, 그들을 불행의 나락으로 혹은 아슬아슬하게 행복으로 건져내며, 서로 각자를 억압하고 애써 자신의 진심을 부정하고 축소하는 방향으로 자신을 몰고 간다는 설정인 것이다. 결국 이 영화는 마음 가는 길과 사람 가는 길이 달라지는 초기 과정에 대한 탐구 정도가 되겠다. 마음 가는 길과 사람 가는 길이 달라지는 이유 특히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꽃잎을 떼어내고, 꽃잎들이 우수수 떨어져 있는 엔딩 씬은 남녀가 나눴던 대사 '마음 가는 길과 사람 가는 길이 달라지는 연유'란 대사와 어우러져 있다. 나무에도 마음이 있다면, 마음은 햇빛을 향해 무수히 전진하지만 몸에 해당하는 꽃은 바닥으로 낙화한다. 이 떨어짐은 남자가 꽃을 대하듯, '이미 죽어 버린 것들'로 취급 당한다. 회생 불가능함. 그들의 과거와 직결된 마음은 단지 여자의 결혼이라는 현실에 부딪혀 마음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결심'하는 것일 뿐인 것들을 '어차피 회생 불가능한 것들'이었다며 스스로 위안한다. 결심하고 결심 뒤로는 돌아보지도 않고, 어차피 '오르지도 못할 나무'였다고 생각해버리는 것이다. 인간의 전형적인 어리석음은 그들이 고뇌와 번민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편리한 방편이기도 했다. 그러나 동시에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수긍해버리는 단초를 제공했으며 그래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된 군상을 낳기도 했다. 나는 <더 테이블>이 풀어내는 서술 방식이 상당히 대담하고 직설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쓰라린 내용이다. 대단히 겉도는 방식의 대화체는 따뜻한 커피보다는 먹다 남은 식어버린 커피다. 피어있는 꽃보다 해체된 꽃이며, 연민보다는 냉소의 파편이 엿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