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조항빈
2019.12.24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강요에 의해 결혼하는 귀족 아가씨의 초상화를 그녀 몰래 그리도록 고용된 화가가 그곳에서 지내는 며칠동안 느끼는 사랑과 우정에 대한 이야기다. 셀린 시아마의 작품을 본 적이 없지만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하는 감독이라고 어디선가 들은 듯 해서 이번 영화도 그런 맥락으로 많이 보게 됐다. 이 영화에는 여성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다. 자신의 의사와 관계 없는 결혼, 임신 뿐만이 아니라 금지된 동성애까지, 이 영화의 세 주요 인물들은 각자의 아픈 사연들을 가지고 있다. 이 세 인물들은 초상화라는 매개체를 통해 연결된다. 매순간 서로를 유심히 쳐다보며 관찰하게 되는 초상화 작업의 특성을 통해 영화는 이 세 인물들이 점차 쌓아가는 두터운 신뢰와 관계를 자연스럽게 묘사한다. 큰 저택에서 홀로 남아 마치 자신들만의 세상을 꾸린 듯한 이 세 여성은 그 안에서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시간을 가진다. 여성들의 자유가 매우 제한적이었던 시대에서 영화는 마치 주인공들에게 잠시나마 그 자유를 풀어주며, 이들에게 욕망과 열정과 사랑의 자유를 부여한 셈이다. 여성으로서의 연대와 이해를 넘어 사랑의 감정을 발견하게 된 이 영화의 두 주인공은 이 자유의 결정적인 열매와도 같았다. 이 열매는 단순히 성적 쾌락이나 한 순간의 낭만을 넘어 이 두 여성의 인생을 바꾸고, 주체적인 사람들로 살게끔하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화가와 초상화에 대한 이야기라서 그런지, 이 영화의 수채화와도 같은 영상미도 굉장했다. 화가 마리안느는 교육도 받고 세상을 돌아다니며 문화 생활도 즐길 줄 아는 사람으로, 어찌보면 상당히 현대적인 여성상이다. 이런 그녀에게 영화는 붉은 색의 색채를 부여한다. 뜨거운 열정으로 무엇이든 집어삼킬 기세의 불꽃의 은은한 붉은 빛으로 그녀의 방이 가득차기도 하고, 그녀의 드레스 또한 언제나 붉은 색이다. 한편 엘로이즈는 세상에 대한 경험도 많이 부족하고, 평생동안 제대로 된 자유를 만끽하지 못한 사람이며,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은 소소한 반항 뿐이다. 그런 그녀에게는 바다의 짙은 푸른색과 초록색 드레스가 부여된다. 영화에서 이 두 주인공이 가까워지며, 마치 팔레트 위의 물감처럼 이 두 주인공들의 색깔 또한 섞이게 되기 시작한다. 특히나 이 영화의 주제와 가장 밀접한 부분은 엘로이즈의 색깔 변화라고 볼 수 있다. 조금 씩 붉은 색 열기와 기운에 매료돼가며 타오르는 여인이 돼가는 엘로이즈의 이야기가 이 영화의 중심적인 메시지가 담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