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라씨에이
2024.10.09
8.9/신의, 정의, 의리의 계약. 혼신과 헌신으로 지켜낸 암묵의 약속.
8.9/신의, 정의, 의리의 계약. 혼신과 헌신으로 지켜낸 암묵의 약속. / 상남자들끼리의 의리로 가득찬 영화임. 서로를 별칭이자 애칭으로 부르며 서로가 서로에게 목숨을 맡긴 채 하루하루를 넘기는 주인공 팀원들 간의 전우애부터 해서 단 한 사람의 팀원이라도 살리겠다는 존 킨리의 지휘관으로서의 책임감, 자신의 아들을 앗아간 탈레반으로부터 살아남는 것은 물론, 적의 적이자 전우인 존 킨리를 살려내고자 분투한 아흐메드의 숭고한 의지, 자신의 목숨을 살린 아흐메드와 그의 가족을 살리기 위해 다시금 적지로 돌입하는 존 킨리의 미친 선택, 그런 남편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기에 기어이 존을 사지로 보내주는 아내의 상여자스러운 의리까지. 여기에 보스의 명령이긴 해도 아흐메드와 그의 가족을 물신양면으로 보살피는 아흐메드 동생 부하의 헌신과 과거 존에게 목숨을 빚진 적 있는 존의 상관이 마련해준 비자, 존이 말하기도 전에 알아서 척척 뭐든 대령해주는 존의 군인 친구, 존과 아흐메드를 알아보고 뒤늦게나마 긴급으로 빵빵한 화력과 탈출 수단을 지원해준 용병 파커의 너스레도 인상적이었음. 어쨌든 진짜 상남자들의 뜨끈뜨끈한 의리로 한껏 달궈져 있는 영화였음. / 현대전을 배경으로 한 헐리우드의 여러 전쟁 영화들이 떠오르는 가운데, 그중에서도 <론 서바이버>가 가장 먼저 떠올랐음. 탈레반으로부터 쫓기는 가망없는 상황 속에서 무기도 잃고, 부상도 입고, 절벽을 거의 구르듯 내려오는 등, 극한의 상황을 겪어내는 주인공들이 등장하며, 주인공이 아프가니스탄 현지인의 도움과 희생으로 살아남으며 그 빚을 갚으려 노력한다는 점 등등이 닮아 있었음. 한편, 부상으로 움직이긴 커녕 정신도 제대로 못차리는 존을 데리고 오프로드와 산 속을 헤치며 100km를 이동해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아흐메드의 모습을 보며 영화 <커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가 떠오르기도 했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보여준 미쳐버린 초극한 상황까지는 아니어도 탈레반들이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압박감 속에서 건장한 남성을 실은 수레 등을 끌고 비포장길, 산길 등을 오르내리는 개고생을 보여주기에 충분히 극한의 개고생이다 싶었음. 더불어 두 사람이 이동하는 과정에서 잠깐씩 보여주는 거대한 자연의 풍광과 그 속에서 분투하는 초라한 인간의 모습이 대비되는 장면들에서도 <커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가 떠올랐음. / 영화 전반이 장르적 쾌감과 긴장감으로 가득차 있음. 일단 생각보다 별 일이 발생하지 않는 초반부 동안은 전투 및 대치 상황보단 미군인 주인공들이 적지 한가운데에서 임무를 수행할 때 누가 민간인이고 누가 탈레반인지, 언제 어디서 뭔가를 발견하거나 습격받을지 모르는 상황을 활용해 긴장감을 자아냄. 이후 폭탄을 발견한 주인공들이 탈레반과 치열한 교전을 벌일 땐 몇십 분 동안 참아왔던 걸 잠시나마 터트리듯 치열하고 박진감 넘치는 전투를 보여줌. 전투 직후엔 살아남은 두 사람이 산길을 오르내리며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탈레반으로부터 도망치는 전개를 통해 마치 <론 서바이버>를 연상케 하는 미친 긴장감의 도주극을 펼침. 존이 헤롱거리기 시작한 시점부턴 아흐메드가 정면으로 나서며 움직이지 못하는 존을 데리고 무려 100km 가량을 포장되지 않은 길로, 대부분 무동력으로 이동하고, 그 과정에서 탈레반에게 들킬 위기를 수차례 넘기며 첩보극을 방불케 하는 쫄깃쫄깃한 긴장감도 자아내가며 기적적으로 생존에 성공함. 시간이 지나 존은 일상으로 돌아오지만, 아흐메드가 여전히 미국 비자를 받지 못한 채 아프간에서 가족들과 함께 도망다니는 신세란 소식을 듣고는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며 그를 빼낼 방법을 물색하는데, 공무원 조직 특유의 전화 돌리기 신공이 펼쳐지고, 미국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은 답답함과 불안감, 초조함을 느끼며 심리적으로 몰리게 됨.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그가 가족들을 두고서라도 다시금 탈레반들이 우글대는 적지로 혼자 쳐들어가기에 충분한 계기와 동기가 마련됨. 그렇게 흔들리지 않는 굳은 의지로 아프간에 입성한 주인공이 아흐메드를 찾아내고 함께 탈출을 감행하는데, 생각보다 좀 급하게 흘러가는 감은 좀 있었지만 앞서 보여준 장르적인 볼거리들을 압축 요약한 느낌으로 전개되고, 막판에 진짜 시원시원하게 탈레반들을 초토화시켜줘서 장르적인 쾌감이 장난아니었음. / 줄거리만 봤을 땐 위기에 빠진 주인공 존 킨리가 아흐메드의 도움을 받아 생환하기까지의 전개는 초반부에서 마무리되고, 미국에 오지 못한 아메드를 존 킨리가 구하기 위해 분투하는 전개가 본론일 것이라 생각했음. 근데 영화는 오히려 반대로 아흐메드와 존의 생존극을 사실상의 메인으로 삼고, 존의 아흐메드 구출극은 후반부로 몰아서 비교적 간결하게 다루는 편임. 때문에 중반부까지 이어진 끈질기고 처절하기까지 한 생존극 전개에 감탄이 절로 나온 반면, 한편으론 후반부의 탈출극이 클라이맥스치고는 다소 급하고 싱겁게 흘러간단 느낌도 들었음. 허나 그래도 후반부 전개가 막 얼렁뚱땅 그려지진 않았고, 마무리에서 확실한 쾌감과 일말의 감동까지 선사해 주기에 어느 이야기에 중점을 뒀든 간에 결국 처음부터 끝까지 안정적으로 재밌는 영화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었음. / 엔딩 크래딧과 함께 뜨는 사진을 보고 설마 이것도 실화인가 하고 흠칫했는데, 사진들 속 인물들이 다 다른 데다, 별다른 설명도 없는 걸 보고 엔딩에서 띄운 텍스트의 내용, 탈레반 정부에 의해 처형당했거나 숨어 살고 있는 미군에 협조한 아프간 통역사들의 존재를 조명하려는 의도였던 것 같음. 단순히 완성도 높고 재미있는 전쟁영화로만 남지 않고, 나름대로의 의미도 살리고자 노력한 흔적으로 보여서 잠깐이지만 꽤나 주목할 수 있었음. / 후반 존 킨리를 돕는 용병 파커 역의 배우가 누군가 했는데, 목소리를 들어보고 잠시 배우 브래들리 쿠퍼인 줄 알았지만, 자세히 보니 드라마 <더 보이즈>에서 무자비한 싸이코패스 히어로를 연기한 안토니 스타였음. 드라마에선 마치 진짜 싸이코패스를 데려다 놓은 듯 전혀 말이 안 통하는, 초능력이고 자시고를 떠나 그냥 천성 자체가 일반인들과는 구분되는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처럼 보였는데, 여기선 얼마든지 말도 통하고, 어찌 보면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보통 사람의 모습을 보여줬음. / 후반 숨어 살던 아흐메드 앞에 존이 등장했을 때 존을 알아본 아흐메드의 표정에서 자신을 구하러 왔구나 하는 안도 이전에 뭔가 '기껏 죽을 똥 살 똥해가며 살려놨더니 여길 다시 기어들어 왔네;;;'하는 생각이 아주 잠깐이나마 읽히는 듯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