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m.blue
2020.01.07
본능에 본능, 그 위를 뒤덮는 본능
<나의 사적인 여자친구>는 결국 '나'에 대해 되묻고 있다. 나라는 사람은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나는, 나는- 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들은 결국 본능과 마주한다. 애써 외면했을지도 모를 혹은 세상이 맞춰둔 기준에 부합하느라 미처 모르고 있었던 '내 안의 진짜 나'와 말이다. . 영화의 중반까지는, 온전히 클레어가 로라에게 가진 열등의식의 발화라고만 생각했다. 그 열등의식이 생물학적 남자인 버지니아에게로 옮겨져, 생물학적 여자로서 우월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라고 여겼다. 물론 그 감정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영화가 결국 나아가고자 했던 방향은 클레어 그 자체, 데이빗 그 자체였다. 로라의 절친 클레어가 아니라, 질레의 아내 클레어가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애써 외면해온 클레어 자신을 파헤쳤다. 데이빗 역시 마찬가지다. 로라의 남편 데이빗이 아니라, '버지니아'라는 가면을 쓴 데이빗이 아니라 그저 여성이 되고 싶고, 여성을 사랑하는 데이빗 그 자체였다. . <나의 사적인 여자친구>는 세상 모든 모순에 바치는 찬가처럼 보인다. 편견을 향한 비웃음이 섞여 있기도 하다. 의상 도착증이든, 게이든, 레즈비언이든 그게 무엇이든 간에 그들은 결국 '솔직함'에 도달했다. 나를 알고, 나를 드러내는 방법을 터득했으며 그것 역시 사랑의 모양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그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 가장 중요하게 작용했던 인물은 클레어의 남편 질레다. 한없이 다정하고 모든 것을 포용하던 그는 현재 사회에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정상인이라 불리는 범주를 대표하며 은연중 편견을 끊임없이 드러내기 때문이다. 상황만 놓고 봤을 때 그는 '불쌍한 남편'이 되었지만, 진짜 나를 찾아서 불행의 곁을 과감히 버린 클레어와 데이빗을 생각하면 질레 역시 어떤 인생을, 어떤 사랑의 모양을 마주할지 모를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를 보고난 후, 어딘가 모르게 공감되지만 다소 낯선 감정이 든다면 결국 질레와 닮아 그와 같은 과정을 겪어내고 있다는 뜻이 되지 않을까. 나 역시 마찬가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