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팜므파탈캣
2024.10.21
강렬한 이미지에 강렬한 캐릭터. 하지만 시대의 힘은 이길 수 없는 것 같다. 가공하지 않은 꺼끌꺼끌한 여성 킬러는 아직도 참신한 것이라 생각한다. 131101
강렬한 이미지에 강렬한 캐릭터. 하지만 시대의 힘은 이길 수 없는 것 같다. 가공하지 않은 꺼끌꺼끌한 여성 킬러는 아직도 참신한 것이라 생각한다. 131101 - 강렬하게 문을 여는 밤의 거리. 정신이 나간 채 죽어있는 초록머리의 남자를 짐짝처럼 질질 끌고가는 대책 없는 뒷골목의 4인방이 고개를 든다. 어딘가 모자란 듯한 청년들의 사이에서 마약에 한껏 취한 표정으로 니키타가 앉아있다. 웃지도 울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 그녀는 이 모든 범죄가 즐거운 소년들과도 동떨어져있다. 그녀는 침착하다. 경찰이 등장함에도 니키타는 평온하다. 모두가 신명 나게 죽어나가는 순간에도 니키타는 살아있다. 특유의 가냘픈 몸매로 구석에 웅크린 채 평온한 표정을 가진 니키타는 세상일에 동떨어진 양 헤드폰으로 노래를 듣고 있다. 초점 없는 멍한 눈의 그녀를 발견한 경찰은 괜찮으냐는 듯이 그녀에게 안정을 주려 한다. 그리고 빵 - 무표정한 그녀의 얼굴에서 생기를 발견함과 동시에 총에 맞아 즉사한다. 푸른빛이 감도는 어둠 속에서 빨간 네온사인처럼 빛난다. 그 이름 니키타. 여인 니키타는 이렇게 시작된다. * 'La Femme Nikita'라는 원제는 직역하면 '여인 니키타'가 되는 불어입니다. ▶ 여성 킬러, 니키타 1990년. 영화 <귀여운 여인>의 '줄리아 로버츠'가 뭇 남성들의 마음을 훔치던 당대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영화 <니키타>는 아주 강한 충격이었다. 여성스러움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꾸밈없는 그녀의 모습은 조각조각 난 방황기 그 자체일 뿐이었다. 금세 쓰러져버릴 듯 가냘픈 몸에 힘없는 눈동자, 갖은 무신경함으로 뭉친 그녀는 보는 이에게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소년과 같았다. 애써 여성미를 가득 드러내어 스스로의 무방비함을 어필할 수 있는 복장 따위는 그녀에게 필요하지 않았다. 그냥 힘없이 앉아있는 모습 힘없이 물끄러미 바라보는 모습만으로 그녀는 상대방을 무장해제 시켰다. 그녀는 천부적인 뱀일지도 모른다. 세상에 관심 없다는 듯 슬금슬금 기어 다니다가 기회가 생기면 바로 콱 - 물어버린다. 그녀의 독은 강하다. 두 번의 기회 따윈 주지 않고 모두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그녀 스스로에게도. 니키타는 아주 강렬하다. 이제껏 있어온 여성 킬러 캐릭터들은 그렇지 않았다. 타고난 예쁘장한 외모 위에 섹시한 메이크업을 얹고 시크한 스타일링을 더해 한껏 보는 이를 즐겁게 해주었다. 그녀들은 시원시원한 액션과 비상한 지성까지 갖추고 있는 말 그대로 '사기캐'들이었다. <툼레이더>,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 <원티드>, <솔트>에서 아찔한 섹시함을 보여주었던 안젤리나 졸리나 <킬 빌>에서 아련한 섹시함을 보여준 우마 서먼, 영화 <제5원소>, <레지던트 이블>에서 가공되지 않은 신생아 같은 섹시함을 보여주었던 밀라 요보비치 등이 그러하다. 쿡 찔러도 주름 하나 생기지 않을 것 같이 아름다운 그녀들은 절대 좌절하지 않으며 모든 싸움에서 승리해나간다. 값비싼 원석 같은 그녀들은 전형적인 미녀 킬러 캐릭터들이다. 하지만 니키타는 다르다. 그녀는 꺼칠꺼칠 시멘트 바닥에서 조각나서 떨어져 나온돌멩이 같다. 한참을 뜯어보고 뜯어봐도 니키타는 '예쁘다'는 말에 버무릴 수 없다. 시종일관 정체를 알 수 없는 천을 빈곤하게 두르고 나오지만 그녀에게 '섹시하다'는 말도 잘 나오지 않는다. 허스키하게 쉰 낮은 목소리로 미녀 킬러의 매력을 한껏 더했던 다른 캐릭터들과 다르게, 그녀는 그저 철들지 않은 소녀의 고함소리만을 가지고 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발성은 그녀의 다듬어지지 않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현재까지도 니키타는 상당히 이례적인 섹시하지 않은 여성 킬러 캐릭터이다. "여성 킬러 = 섹시함" 이라는 공식을 철저히 무시한 그녀는 거칠거칠한 돌멩이 같기만 하다. 올리버 스톤의 <내추럴 본 킬러>에서 비슷한 느낌 등장하였던 여성 킬러 '말로리' 역시도 살인을 거듭해 감과 동시에 점점 섹시해지며 여성 킬러 공식에 답습하였다. 실제 여성 킬러 '에일린'을 모델 삼아 만든 영화 <몬스터>의 샤를리즈 테론을 제외하면 '니키타'는 전무후무한 캐릭터이다. ▶ 니키타의 아버지, 뤽 베송 뤽 베송 감독은 수많은 액션 영화를 흥행시켰다. 신명나는 액션뿐 아니라 독특한 소재와 이야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보는 이에게 시각적 즐거움 이상의 감성적 자극을 준다. <레옹>, <제5원소>와 같은 그의 초기 작품들은 아직까지도 독특하고 신선한 소재로 인정받고 회자되고 있다. 물론 최근에 그가 보여준 작품에서 이러한 매력을 찾아보기가 어려운 점이 아쉽지만 특유의 흥겨운 액션이 살아있음은 영화 <콜롬비아나>, <프롬 파리 위드 러브>, <트랜스포터>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뤽 베송 감독의 필모그래피로 미루어 보건데 그는 여성 킬러에 대한 상당한 로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니키타>의 니키타(안느 파릴로드)를 시작으로 이어온 그의 여장부 계보는 화려하다. <레옹>의 마틸다(나탈리 포트만), <제5원소>의 리루와 <잔 다르크>의 잔 다르크(밀라 요보비치), <블랑섹의 기이한 모험>의 블랑섹(루이즈 보르고앙), <콜롬비아나>의 카탈리아(조 샐다나), 연이어 언급하기 숨이찰 만큼 그는 니키타의 수많은 여동생을 낳았다. 그의 짝꿍 격인 배우 '장 르노'가 이 영화에서 중요한 역으로 등장한 것을 보는 것 또한 깨알 같은 즐거움이다. 둘이 감독과 배우로 연을 맺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만들어진 영화라는 것을 감안해보았을 때, 뤽 베송 감독은 클리너 '빅토르'에게 매우 큰 만족을 얻었던 것 같다. (4년 후 전설의 <레옹>이 탄생하였다.) ▶ 여인, 니키타 거친 돌멩이 니키타가 그냥 니키타가 아닌 여인 니키타인 이유는 간단하다. 무자비해 보이는 그 무기력한 눈빛 뒤에 깊고 깊은 애정결핍 덩어리 소녀가 앉아있기 때문이다. 고슴도치처럼 뾰족하게 세워놓은 그녀의 가시는 간단한 말 한마디, 잠깐의 눈빛만으로 가라앉는다. 흘러넘치는 불안한 애정을 가득 싸안은 니키타는 마음을 내어주는 것이 아주 쉽다. '디비전'의 상사 '밥'이 지극히도 사무적인 술수로 던진 말에도, 마트에서 친절하게 계산해줬을 뿐인 '마르코'에게도 온 마음을 내어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가녀린 여인으로서의 모습이 오히려 이야기에 방해가 되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깨놓고 이야기해 영화 <니키타>가 가지는 매력은 '캐릭터'에서부터 '캐릭터'까지가 전부이다. 뚜렷하고 충격적인 감각이 살아있는 캐릭터 '니키타'가 오롯이 남았더라면 더욱 좋았을 텐데 캐릭터의 색깔이 흩어지는 계기가 되는 '로맨스'는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인기를 얻으며 패러디되고 있는 드라마 시리즈 <니키타>에서도 이러한 로맨스보다는 로맨스에 기반을 둔 복수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러한 점은 이 영화에서의 마르코와 마리의 러브스토리가 다소 어색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근거가 된다. 니키타가 참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자신하기는 어렵다. 특출나고 신선한 메시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진득한 로맨스가 있는 것도 화려한 액션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현대의 매력적인 여자 킬러들의 큰언니 격이 되는 영화 <니키타>의 죠세핀이 가지는 의미를 생각하며 아직까지도 전무후무한 찾아보기 힘든 예쁘지 않은 여성 킬러에 대한 돌멩이적 신선함을 한 껏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인기리에 리메이크되고 있는 작품이 아닐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