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조항빈
2020.01.15
'남산의 부장들'은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된 10.26 사건과 그에 이르기까지의 40일 간의 기록을 중앙정보부장의 시선에서 다룬 영화다. 한국 현대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기도 하며, 밈화되기도 하며 한 시대의 극적인 종말을 선고한 이 사건을 우민호 감독이 어떻게 다룰지는 매우 궁금했다. 우선 이 영화는 그 전의 40일 동안 김재규/김규평이 겪은 일들을 보여주며, 그와 박정희와 차지철/곽상천과 김형욱/박용각과의 관계와 권력의 역학을 중심적으로 본다. 그 중에서도 중심적인 관계는 박정희와의 관계다. 목숨을 건 쿠데타를 함께 하며 평생을 상관으로 모신 군인으로서, 그리고 한 남자로서의 지극한 충성심이 어떻게 총구를 겨누는 지경까지 갔냐의 여정에 대한 과정이 이 영화의 이야기다. 실제 사건의 동기 자체가 상당히 복합적이라는 점을 반영하듯, 이 영화는 이유에 대해서는 명확한 정답을 제시해주지는 않는다. 이 정권이 가는 방향에 대한 회의감, 대통령에 대한 사사로운 배신감과 서운함, 아니면 자신의 안위에 대한 두려움. 영화는 40일 동안 벌어진 수많은 사건들의 연속과 그 사건들마다 김재규가 마주했을 법한 고민들과 딜레마와 결과들을 다양한 인물들과의 심리 게임을 통해 긴장감있게 보여준다. 요컨대 이 영화는 사건의 재구성이면서도, 더 나아가 심리의 재구성이라고 보는게 맞는 것 같다. 이 영화의 모든 출연진은 정말 일품이었다. '내부자들' 이후로 다시 우민호와 함께한 이병헌은 김재규의 심리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제시 안 해주는 이 영화의 의도에 맞게 상당히 절제된 연기를 보여주며, 관객에게 확답을 주진 않아도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릴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감정선을 표현하며, 특히나 언제 감정적 방점을 찍을지를 굉장히 영리하게 잘 잡는다. 이병헌의 주요 상대역이라고 할 수 있는 이성민도 이병헌에 못지 않은,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는 오히려 더 인상적이었던 연기를 펼친다. 박정희를 김재규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영화인만큼, 이성민은 박정희의 차갑고 무자비한 카리스마, 그리고 어쩔 때는 광기를 묘사하면서도, 김재규와 정말 긴 기간동안 여러 폭풍을 함께 견뎌낸 듯한 전우애, 충실한 부하에 대한 든든한 격려, 그리고 피바다 한가운데의 외딴 섬처럼 홀로 서있는 남자의 허무한 뒷모습까지 그려내며, 김재규의 총구가 흔들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완벽히 보여준 듯 했다. 곽도원, 이희준과 김소진도 이 거대한 도미노에서 각자의 역할과 의의를 잘 표현했으며, 무겁고 절제된 이병헌과 달리 좀 더 감정적이고 표현 많은 연기를 하며 확실한 대비를 보인다. 이를 통해 영화는 다사다난한 역사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서 깊고 근원적인 고민에 빠진 한 남자의 세상을 완성시킨다. 우민호 감독의 연출력은 이 영화의 인상적인 구도들과 느와르를 연상케하는 고대비 조명들에서 빛을 발한다. 인물들의 심리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영화에 걸맞게 클로즈업을 적재적소에 잘 쓰면서, 구도를 통한 시각적 스토리텔링도 많이 시도하는 점이 굉장히 좋았으며, 클라이막스에서는 필살기를 꺼내듯이 화려하면서도 긴장감이 넘치는 씬도 보여준다. 다소 안타깝게도, 해외 로케이션에서 찍은 듯한 씬들에서는 이런 장점들이 별로 안 보인다. 본인이 확실하게 통제할 수 있는 세트와 현장이 아니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미국과 프랑스를 배경으로하는 씬들은 유난히 텅 빈 느낌이 들었다. 이 여백은 청와대 집무실 안에서 느껴지는 의도적이고 꽉 찬 여백이 아니라, 미처 색칠을 다하지 못한 어설프고 공허한 여백으로 느껴졌다. 아무래도 '그때 그 사람들'과의 비교는 피치 못할 것 같다. 이 영화는 좀 더 광범위한 시간대를 다루며 좀 더 복합적으로 보긴 하지만, 어찌됐든 두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결국 10.26이기 때문이다. '그때 그 사람들'을 먼저 본 사람으로서는 꽤나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같은 사건과 인물들을 나름 비슷하게 그리면서도 이를 통해 하는 말과 보여주는 태도는 아주 다르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두 영화 모두 극적으로 각색된 부분이 많겠지만, 겹치는 부분들도 꽤나 많아서 10.26 사건의 전개에 대해서 좀 더 알게 되기도 했다. 우민호와 임상수의 차이점은 명확하다. 우민호는 이 사건의 역사적 의의와 평가에 대해서 좀 더 조심스럽고 소극적이며, 예술가로서 집중하고 싶은 부분, 다시 말해 인물들의 심리와 감정선에 좀 더 집중을 하며, 이 사건에 대해 "왜?"라는 질문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임상수는 정말 단도직입적이고 강한 주장과 평가를 내리며, 이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들이 과연 누구인가를 질문하며,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예술적으로 풀어냈다. 이 영화를 보며 나는 '그때 그 사람들'에 대한 동경심이 더 많아진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은 우민호의 인물 중심적인 심리극에 더 이끌릴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는 법적 분쟁을 각오하고 실명을 까면서까지 예술가로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가감없이 직설적이고 신랄하게 던지며, 완성도와 용기 두 면에서 모두 한국에선 보기 드문 수준으로 보여준 임상수의 '그때 그 사람들'에 더 애착이 간다. 참으로 시대를 앞선 영화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