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시네마 오네스트
2020.01.17
스포일러 주의!
사랑이라는 예술
마리안느는 엘로이즈의 초상화를 그려야만 하는 고용된 화가입니다. 하지만 엘로이즈는 그것이 결혼을 위한 초상화임을 알고 결혼을 원하지 않기에, 그녀에게 들키지 않도록 비밀스럽게 그려야만 하죠. 그래서 마리안느는 엘로이즈의 산책 친구가 되어주며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그녀를 자세히 관찰하면서 틈틈히 스케치를 합니다. 천천히 그녀를 관찰하며 눈, 코, 입, 손을 하나하나 그려나가죠. 그러다 마리안느와 엘로이즈는 서로를 향해 어느새 스며들어가던 사랑을 느끼게 되고, 짧지만 강렬하게 불타는 그들의 예술과도 같은 사랑이 시작됩니다. 제목부터 모호하지만 신비로운 느낌을 풍기는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우선 소리와 영상미의 아름다움을 먼저 말해야 합니다. 바다의 파도 소리와 캔버스에 칠하는 붓의 부드러운 소리, 장작이 타는 소리 등 영화가 담기 어려운 작지만 아름다운 소리들이 먼저 귀를 사로잡고, 여러 가지 색감을 나타낸 영상미가 눈을 즐겁게 하죠. 하나하나의 장면마다 특별히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를 담은 장면들이 많아 좋았습니다. 가끔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지루할 때에도 영상의 아름다운 색감이 영화에 대한 감정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죠. 감각적인 연출도 눈에 띕니다. 서로를 가만히 관찰하며 사랑에 빠지는 마리안느와 엘로이즈의 관계를 응시하는 장면 연출로 표현해 영화를 보는 우리가 두 인물을 가만히 관찰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죠. 두 인물의 사랑이 관심에서 격정적인 사랑이 될 때까지 인물의 감정선은 몇 번의 큰 변화를 겪지만, 연출에는 큰 차이를 두지 않아 과장된 연출로 인한 불편한 느낌도 없었습니다. 또 서로에 대한 관심과 짧지만 강렬한 시간, 그리고 이별에 대한 모든 감정을 거의 표정 연기로만 담아낸 두 배우(특히 엘로이즈의 엔딩 장면)의 연기도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죠.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두 여인의 사랑과 세 여인의 이야기, 그것뿐입니다. 인물의 격정적인 사랑과 그 안에 담긴 복잡한 감정을 아무것도 가미하지 않은 채 잔잔하게 드러내는 영화이죠. 마리안느를 바라보는 엘로이즈의 옷에서 타오르는 불꽃, 오르페우스 신화에서의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이야기, 그리고 에우리디케를 잊지 못하고 구애를 차갑게 외면했던 요정들의 돌에 맞아 죽음을 맞이하는 오르페우스의 마지막. 28페이지의 그림과 타오르는 불꽃, 오르페우스 신화는 모두 마리안느와 엘로이즈의 슬프고 짧은 사랑과 이후의 깊은 그리움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장면의 담긴 이야기와 감정의 깊이가 깊지만 잔잔하게 볼 수 있어 생각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영화 중간중간 표현되는 시대의 금기와 여성에 대한 당시의 차별 등 알게 모르게 스며든 다른 메세지들을 찾아볼 수도 있었고요. 다만 121분이라는 긴 시간을 시종일관 진지하고 잔잔한 분위기로 채운 영화이기 때문에, 잔잔함과 지루함을 잘 견디지 못하는 분들은 좋아하시지 않을 것 같네요. 아트하우스 영화를 참 오래간만에 봤는데 이렇게 조용하고도 강렬한 영화라니.. 한동안 영화를 곱씹어보며 생각을 계속하게 될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