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스포일러 주의!

영화는 어떻게 세상을 구원하는가

1. 떠나는 사람과 남겨진 사람이 있다. 떠나는 사람이 남겨지기도, 남겨진 사람이 떠나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가 되고 상처를 주며, 그 흔적들을 가슴 한편에 묻고 살아간다. 이 영화는 그런 상처들의 어느 한 자락에서 시작한다. 2. 에드워드 양의 <하나 그리고 둘>에는 3대에 이르는 가족이 등장한다. 혼수상태로 누워 죽음을 기다리는 할머니의 거친 손등에는 삶의 질곡이 담겨있다. 그녀는 이제 병상에 누워 침묵할 뿐이다. 그리고 말 없는 할머니를 향해 돌아가며 말을 거는 사위 NJ와, 그의 고등학생 딸 팅팅, 그리고 그의 초등학생 아들 양양이 있다. 이들의 삶을 감싸고도는 것은 말하자면 “비극의 신화”라고 불러도 좋을 무언가이다. 그들은 누군가의 곁을 떠나거나, 혹은 누군가로부터 남겨진다. 이 비극의 돌림노래는 세대를 거쳐 아버지에게서 자식에게로 상속된다. NJ는 처남의 결혼식장에서 우연히 30년 전 자신의 첫사랑 섀리를 마주친다. NJ의 말처럼 그는 그녀 외의 “다른 사람을 사랑한 적이 없지만”, 그는 아무 설명도 하지 않은 채 그녀를 떠났다. 섀리는 남겨졌고, 부서졌다. 30년이 지났지만 매듭짓지 못한 채 숨겨두었던 그들의 감정은 갈 곳을 잃은 채 허공을 부유한다. 하지만 여전히 달라지는 것은 없고, 삶은 그대로 계속된다. 팅팅 역시 설명받지 못한 채 남겨진 인물이다. 새로 이사 온 옆집의 또래 친구 리리와 친해지지만, 그 우정은 오래가지 못한다. 팅팅은 리리의 전 남자친구 패티와 교제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패티는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한 채 팅팅을 모텔 방에 홀로 남겨두고 도망치며, 그는 다시 리리에게 돌아간다. 그녀는 할머니의 품에 기대어 말한다. “왜 세상은 우리의 생각과 다른 걸까요?” 3. 그리고 키가 작은 소년 양양이 있다. 이 영화에서 양양은 두 가지 측면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부여받는다. 첫째로, 그는 아버지에게서 카메라를 선물 받았다. 둘째로, 그의 꿈은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시무룩한 양양에게 아버지 NJ는 카메라를 선물한다. 그 뒤로 양양은 카메라를 늘 들고 다니며,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을 필름에 담는다. 소년이 사진을 찍는 이유는 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해 짐작할 수 있는데, 이 대목은 영화를 통틀어 가장 큰 공명을 일으키는 순간이다. 그는 아버지에게 말한다. “아빠가 보는 걸 나는 보지 못하고, 내가 보는 걸 아빠는 보지 못 해요. 우린 반쪽짜리 진실만 보나요?” 이어지는 아버지의 대답. “그러면 사진을 찍어서 내게 보여주렴.” 어쩌면 이 비극의 기원은 양양의 말처럼, 우리가 반쪽짜리 진실만을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타자와의 관계 맺음은 곧 타자에게 절반만큼의 나를 내어주는 것이다. 내가 나의 뒷모습을 볼 수 없듯이, 타자에게 내던져진 “나”는 영원한 심연 저편에 존재한다. 반쪽짜리 조각으로 자신 앞에 던져지는 삶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그러므로 허망하다. 나머지 퍼즐 반쪽은 영원히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비어버린 삶의 한가운데를 어떻게 메울 것인가. 그래서 NJ에게 “모든 것이 달라질 것 같았지만 삶은 변함없이” 똑같다. 갇혀버린 것이다. 삶의 어느 순간이 다가오면, 양양의 두 어깨에도 비극의 무게가 실릴 것이다. 그는 누군가를 떠나갈 것이고, 또 누군가에게 남겨질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 그리고 그의 누나와는 다르다. 그에게는 구원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왜냐면 그에게는 카메라가 있고, 그것을 매개로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서 모으기 시작한다. 학교 선생님과 친구들은 초점도 제대로 맞지 않고, 왜 찍었는지 이유도 설명하지 못할 그 뒷모습 사진들을 보며 비웃는다. NJ가 영화 종반부에 이르러서야 양양의 사진들을 넘겨보기 전까지, 가족들은 그가 무엇을 찍는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소년은 그저 묵묵히 사진을 찍는다. 그에게 뒷모습은 “말해져야 할 무언가”이다. 혼수상태인 할머니의 의식을 자극하기 위해 할머니에게 말을 걸어보라고 요구받자, 양양은 할 말이 없다며 그것을 끝끝내 거부한다. 할머니를 향해 양양이 하고 싶었던 말은 영화의 마지막, 할머니의 장례식 장면에서야 전해진다. 양양은 이제 처음으로 남겨졌다. 할머니는 그에게 떠나지 않겠다고 했지만, 할머니는 결국 하늘나라로 떠났다. 양양은 “그 이유를 혼자 알아내야 할 것 같다.”라고 말한다. 그는 아직 어려서 그 이유를 알지는 못하지만, 언젠가 할머니를 만나러 가기 전까지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 볼 수 없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4. 이 가족의 구성원들이 겪는 상처를 인간 존재의 숙명적 비극에 대한 알레고리로 받아들인다면, 양양의 카메라는 그것을 치유하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영화를 상징한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영화' 그 자체의 본질에 대한 감독의 섬세한 독백과도 같은 것이다. <하나 그리고 둘>의 카메라는 철저하게 관찰자의 역할만을 수행한다. 클로즈업 숏은 배제되었고, 되려 의식적으로 인물과 거리를 두는 방식으로 촬영되었다. 유독 이 영화에서 유리창에 비친 인물들의 숏이 많았던 이유 역시, 상황 속 모든 것들로부터 철저하게 거리를 두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카메라는 그 자체로 뒷모습, 즉 “말해져야 할 무언가”를 찍고 있다. 그 편린들이 모여 한 편의 영화가 되고, 그렇게 영화는 볼 수 없는 것을 보여준다. ‘왜 세상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를까요?’라는 질문에 영화는 대답한다. 우리는 삶의 뒷모습을 바라보아야 하며, 그것은 어쩌면 영화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