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들래 님의 영화 <집으로...> 리뷰 - 키노라이츠
드라마 / 2002

2020.02.22 15:13:09
민들레꽃을 닮은 영화, 집으로...
커피를 홀짝거리며 개봉관에서 만났던 <집으로...>

7살 짓궂은 상우의 익살스러운 표정

77살 귀머거리 할머니와의 기막힌 동거를 시작하면서

할머니께 내뱉거나 하는 행동 하나 하나가 모두 밉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악동, 상우의 미소.

그 짓궂고 얄미운 미소를 관객들은 영화 전반부에서 자주 만나게 된다.

며칠만 버티면...

아니, 두 달만 버티면...

데리러 오겠다는 엄마의 이야기를 희망 삼아 할머니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상우.



할머니의 거친 손마디가 화면에 비추일 때마다 내 마음은 상당히 고통스러웠다.

평생을 저 손으로, 굽은 등으로 일만 해오셨을 할머니의 거칠게 쪼그라든 모습.

그 손으로 손주 녀석을 쓰다듬어 주자, 상우 녀석은

귀머거리 할머니를 병신이라고 하면서 할머니의 손길을 더럽다며 강하게 거부했다.

가슴을 쓸어 내리며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할머니의 기막힌 표정연기.

후라이드 치킨을 먹고 싶다는 상우의 메시지를 백숙으로 오해한 할머니.

그 백숙을 보고, 내가 언제 물에 빠뜨린 닭을 달라고 했냐며 울부짖던 상우.

할머니에 대한 불만으로 툇마루에 있는 요강을 걷어차고,

유일한 검정고무신 한 켤레를 감추어놓고 할머니가 돌길을 맨발로 걷게 하는 상우.

방안에서 롤러브레이드를 타면서 심심해하는 아이 상우.

캄캄한 밤, 화장실 갈 때면 할머니를 뒷간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게해야 안심하고 볼일을 보는 상우.

그렇게 할머니를 지독하게 괴롭혀도 할머니는 상우한테 더 잘해준다.

방안에 기어다니는 작은 벌레 한 마리에 기겁을 하는 상우.

할머니는 어두운 눈으로 기어다니시면서 벌레를 겨우 잡는다.

죽이라고 말한 상우 말에 아랑곳 않고 할머니는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날려 보내준다.

미물이지만 생명체인 벌레 한 마리에 대한 할머니의 애정은 바로 자연친화적인 삶의 모습이 아니고 무엇인가.



퍼주기만 하던 할머니의 사랑을 넙죽넙죽 받기만 하던 상우.

그러나, 후반부에서 상우의 마음은 서서히 따뜻한 기운을 발하며 할머니를 향해 열리기 시작한다.

소나기가 내린 날, 할머니의 낡은 옷과 자기의 옷을 사이좋게 널어놓고 짓던 눈웃음.

바느질하는 할머니를 도와 바늘에 실을 꿰어주는 상우의 행동.

다음날 먹으려고 남겨둔 쵸코파이 한 개를 할머니 보따리에 넣어주는 상우의 마음.

'아프다' '보고십다(상우식 표기)'를 공책에 써놓고 할머니께 한글을 가르치는 상우의 진지함.

영화 끝부분, 엄마와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타며 보여주었던 무뚝뚝하게 표현했지만 가슴 아렸던 명연기.

버스 뒷자리로 달려와 할머니를 향해 가슴을 쓸어 내리며 '미안하다'란 메시지를 보내는 상우.

상우를 떠나보낸 그 해 가을은 할머니께 어떤 빛깔이었을까?

할머니는 그 아름다운 길... 길... 길들을...

상우가 남기고 간 몇 장의 엽서를 가슴에 품고 걷고 또 걸었다.

어느새 늦가을의 서정이 밀려오는 할머니의 시골집풍경은 을씨년스러운 갈색풍경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할머니를 향한 내 마음의 슬픔의 빛깔도 계절의 빛깔과 기운이 바뀜에 따라, 서서히 쓰리고 고통스럽게 다가왔다.

오늘도 할머니는 상우를 그리워하며 그 길을 걷고 또 걷고 있겠지?

할머니가 걷던 그 길은 정녕 슬프도록 아름답고 정겨운 길이었다.



이 영화가 시작되고 5분이나 지났을까?

왼편에 앉아있던 친구는 훌쩍거리며 손수건을 찾기 시작해서, 끝나는 시간까지 울었다.

거의 후반부에서는 소리내어 울어서 주위사람이 거의 돌아다 볼 정도로...

나 역시 처음부터 가슴 여기저기 아려오는 느낌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할머니의 표정 하나 하나 내 가슴을 적셔놓기에 충분했으니까...

그 아린 가슴 구석에 맺혀있는 눈물은 결코 슬픈 느낌하고는 차별화 되어야 한다.

유쾌한 웃음을 깔깔거리며 웃다가도 가슴 한 쪽이 뭉클하게 적셔지는 느낌.

난, 여지껏 이렇게 아름답게 잘 만들어진 한국영화를 만나보질 못했다.

<집으로...>는 앞으로 늘푸른이 사랑하는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와이키키 브라더스>와 함께 베스트 3 영화가 된 셈이다.



이정향 감독은 이 영화를 이 세상의 모든 외할머니께 바친다고 했다.

물론, 나도 이 영화를 보면서 현재 생존하고 계신 외할머님을 떠올렸고

아주 어린 시절 방학 때면 기차를 타고 떠났던 경상도 두메산골 내 어린날 외갓집에서의 추억이 그리워졌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떠오른 또 한 분, 시어머님 생각이 나서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그리고 지천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민들레꽃이 보고 싶어졌다.

아파트 앞 보도 블럭 사이로 눈부시게 노란 꽃잎을 자랑하며 피어난 민들레꽃을...

아스팔트 갈라진 틈 사이로 질기게 피어나서 발하는 민들레의 강인한 생명력을...



지난 4월 조지훈 문학기행을 가서

그의 생소한 시 <민들레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오늘 교실 밖 식구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지는 詩다.




민들레꽃/ 조지훈




까닭없이 마음 외로울 때는

노오란 민들레꽃 한 송이도

애처롭게 그리워지는데,



아 얼마나한 위로이랴.

소리쳐 부를 수도 없는 이 아득한 거리(距離)에

그대 조용히 나를 찾아오느니.



사랑한다는 말 이 한마디는

내 이 세상 온전히 떠난 뒤에 남을 것,



잊어버린다. 못 잊어 차라리 병이 되어도

아 얼마나한 위로이랴.

그대 맑은 눈을 들어 나를 보느니.




(시집 {풀잎 단장},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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