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송씨네
2025.01.12
가족이라 말하기에는 빨고 빨리는 흡혈귀 같아.
비정규직 웹디자이너 정서는 뱀파이어 소재의 웹툰을 그리는 작가로도 활동 중입니다. 같은 회사에 일하는 남자친구 경현과 결혼을 앞두고 청약까지 당첨되는 겹경사를 맺죠. 하지만 날짜 내 입금하지 않으면 다음 예비 당첨자에게 넘어갑니다. 엄마 미영은 전 남편 영주에게 제대로 된 위자료도 못 받고 헤어졌죠. 미영은 영주가 썼던 차용증 붙은 색소폰을 보여주며 이걸로 받아오라고 얘기하죠. 영주는 동해 벌교 횟집을 운영하고 있고 영주의 새 아내인 주희와 그의 딸이자 정서에게는 이복동생인 정해가 살고 있습니다. 정서는 매우 활발하고 싹싹한 정해와는 친한 반면 새엄마라기보다는 그냥 아줌마인 주희와는 냉랭한 사이입니다. 영주는 횟집을 운영하지만 (과거 연주가였기에) 색소폰에 대한 미련은 약간 남아 있는 상태. 정해는 대학을 포기했고 뮤지션이 되려는 꿈을 가지고 있죠. 마침 영주는 건물주가 될 욕심으로 새 횟집 자리를 물색 중이고 사위가 될 경현도 장인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정서는 자꾸 가족들이 뱀파이어처럼 서로를 뜯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이혼한 아빠의 빚을 받아내 청약을 계약하려는 딸의 이야기. 고약한 관계는 정이라 부를 수 없는 지독한 악연으로 이루어져 있죠. 피가 부족하면 서로의 피를 빨고 반대로 빨리게 되는 우리들의 웃픈 자화상이죠. 피는 꼭 누가 얻어맞아야 생기는 게 아닙니다. 정서와 정해 자매의 (피어싱을 위한) 우정 귀 뚫기는 몇 시간도 안 되어 취소되고 엔딩에서 정서는 스스로 뱀파이어(?)가 됩니다. 정해는 아빠의 또 다른 절친인 경옥의 도움으로 독립을 위한 자취방을 마련하지만 대학 자금으로 주희가 벌어놓은 돈을 쓸 수 없습니다. 정서는 아빠 영주 주머니에서 돈이 빠져나올 생각을 하지 않자 군인인 친구 태준과 택시 기사 친구인 해정의 도움을 받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끝날 것 같거든요. 영화는 악덕업주들에게 고용당한 배달 라이더를 보여줍니다. 영화와 전혀 관련 없을 것 같은 이 장면은 정서와 경현이 일하는 회사에서 정서가 그린 일러스트가 불타면서 그 이유가 드러납니다. 뱀파이어 같은 남보다도 못한 가족들도 있지만 그 축에도 못 끼는 이들도 있는 걸 보면 정서의 행동이 이해 가죠. 안석환 씨를 제외한 숨은 연기 고수들이 가득한 영화이기도 하죠. 나애진 씨와 김진영 씨, 강봉성 씨 같은 신선한 얼굴도 있죠. 익숙치 않지만 베테랑 배우인 최정현 씨와 박현숙 씨의 얼굴도 기억해둬야겠습니다. 뱀파이어가 되지 못한 우리의 코리안 조커는 따릉이를 타고 마지막 퇴근을 하고 있습니다.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물리는 게 아닌 먼저 물어야 한다는 세상이 서글프기만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