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recréer
2020.03.06
회귀와 도피, 기억의 전쟁
“회귀와 도피” feat. <밤눈> 기형도 31년 전 세상을 떠난 시인을 떠올리며 53년 전 전쟁의 검은 페이지를 펼쳤다. 오래된 기억에 행로는 죽음으로부터의 회귀와 도피였다. 총 들었던 자는 훈장과 악으로 총 맞았던 자는 고통과 한으로 죽음의 페이지에 서표를 꽂고 삶이란 부조리로 향을 태운다. 다큐멘터리 ‘기억의 전쟁’은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학살 사건을 기록한다. 1968년 2월 12일 한국군은 퐁니·퐁넛 마을의 무고한 주민들을 공격한다. 살아남은 여성과 맹인, 농인 세 사람이 나와 참혹했던 그 날을 증언한다. 응우옌 티 탄 아주머니는 가족 잃은 슬픔을… 듣지 못하는 껌 아저씨는 한국군의 악행을… 가족을 잃고 시력마저 상실한 럽 아저씨의 담담함엔… 더 깊게 마음을 베인다. 이런 거대한 슬픔과 마주할 때면, 입속의 검은 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해, 염(念)할 엄두조차 바스락거린다. 다큐의 의지는 분명하다. 가리고자 하는 과거의 진실을 파헤쳐 시대 안으로 끌어온다. ‘Untold’란 영어 제목을 보아도 그렇다. 슬픔을 담고 사는 피해자 유가족과 훈장을 달고 사는 참전군인의 모습을 비춘다. 이길보라 감독은 말한다. “가해자임에도 큰소리치는 참전군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영화를 완성해나가는 과정에서, 어떻게 보면 그들 역시 또 하나의 피해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국가의 부름을 거역할 수 없었기에 푸른 청춘을 바쳤던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라고. 그러나 ‘전쟁의 소용돌이에 모두가 피해자’였단 마음 까지 다큐는 담지 못한다. 참전군인과의 정돈된 대화가 없어서다. 물론 그들 대부분이 성찰 없는 태도로 과격하게 행동하지만, 거리를 벗어나 진중하게 소통했더라면 어땠을까. 위안부 문제를 다뤘던 다큐멘터리 ‘주전장’의 시선이 부분 필요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후퇴시키는 망령일지라도 존중하며 다가가야 한다. 함께 사는 세상, 존중의 경청만이 갈등을 푸는 유일한 실마리기 때문이다. 나아가 ‘시민 사회’를 넘어 ‘국가’ 차원의 ‘그룹’적 대화도 필요하다. 그 날의 진실을 밝히는 공론으로, 사죄는 진심으로 시작되어야 한다. 국가와 군인, 나와 우리의 과거사 사죄는 결코 용기를 내거나 억울해야 할 일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당면한 전쟁처럼, 부조리한 삶에 소치고 역사적 책임이다. 해서 억울하게 희생된 넋을 위해,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 위로로 –추모의 향은 우리 곁에서, 늘 켜있어야 한다. 끝으로 31년 전 오늘, 별이 된 기형도 시인의 시로 기억의 전쟁을 함께 안아본다. 청춘을 검게 태운 별들이 이제는 무중력의 밤눈으로 자유롭게 빛나 돌기를…. - 밤눈 네 속을 열면 몇 번이나 얼었다 녹으면서 바람이 불 때마다 또 다른 몸짓으로 자리를 바꾸던 은실들이 엉켜 울고 있어. 땅에는 얼음 속에서 썩은 가지들이 실눈을 뜨고 엎드려 있었어. 아무에게도 줄 수 없는 빛을 한 점씩 하늘 낮게 박으면서 너는 무슨 색깔로 또 다른 사랑을 꿈꾸었을까. 아무도 너의 영혼에 옷을 입히지 않던 사납고 고요한 밤, 얼어붙은 대지에는 무엇이 남아 너의 춤을 자꾸만 허공으로 띄우고 있었을까. 하늘에는 온통 네가 지난 자리마다 바람이 불고 있다. 아아, 사시나무 그림자 가득 찬 세상, 그 끝에 첫발을 디디고 죽음도 다가서지 못하는 온도로 또 다른 하늘을 너는 돌고 있어. 네 속을 열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