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송씨네
2025.02.02
‘바쁜 꿀벌은 슬퍼할 겨를이 없다’란 말이 무섭게 다가올 때.
1940년 마을 공회당. 영화 필름과 영사기를 실은 이동 트럭이 도착합니다. 영사기사는 이번 작품의 재미는 보장한다며 자신만만한 목소리죠. 천스크린만 걸려있는 강당에 삼삼오오 어른과 아이들이 모입니다. 영화는 ‘프랑켄슈타인’(1931). 한편 양봉일을 하는 페르난도는 자신의 서고에서 유리로 만든 벌집통을 관찰하며 양봉 일기를 쓰고 있죠. 강당은 집에서 코앞이라 저만치 영화 대사가 뚜렷하게 들리죠. 아내 테레사는 전쟁 중으로 싸우는 누군가에 편지를 보내 전쟁터로 향하는 이동 우체통에 편지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이들 부부의 딸 들인 아나와 이사벨은 영화를 보고 집으로 향합니다. 언니 이사벨은 동생 아나에게 우물이 있는 폐가에서 영혼을 보았다고 얘기합니다. 어느 날 열차에서 병사가 탈출해 폐가에 들어섰고 거의 매일같이 폐가를 가던 아나와 마주합니다. 먹을 것을 주며 병사를 보호한 아나는 아빠가 아끼는 외투와 태엽 회중시계를 건네주죠. 하지만 그것이 화근이 될 줄 아무도 몰랐죠. 아나는 화가 난 페르난도를 피해 가출하게 되고 영화에서 봤던 프랑켄슈타인을 만나게 됩니다. 어린 두 자매의 눈으로 바라본 전쟁과 영화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클로즈 유어 아이즈’로 컴백한 빅토르 에리세의 초기작이 뒤늦게 개봉을 했습니다. 그러나 의외로 다작을 하지 않는 감독이기에 전작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한 상태에서 의외로(!) 우리나라에서 첫 개봉을 하게 되었습니다. 영화는 두 자매를 중심으로 보여주지만 특히 아나를 집중해서 보여주고 있죠. 언니 이사벨은 장난인지 아니면 진짜 몰라서 그런지 모를 상황에서 아나를 시험합니다. 흉가의 영혼을 만나본 경험이 있는지 의심스럽고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을 때 정말 죽기 직전이었는지, 기절이었는지, 연기였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아나를 당황하게 하죠. 어쩌면 진짜 영혼의 실체를 본 것은 아나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아있는 실물도 보았고 물결 너머에서 프랑켄슈타인을 닮은 정령도 보았던 것이죠. (흥미롭게도 1931년 제임스 웨일의 원작에서 프랑켄슈타인이 소녀를 실수로 빠트려 익사시키는 그 장면 직전까지만 영화 속에 삽입된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아빠의 양봉 일기 속 벌들은 우리의 모습이고 궤변을 늘어놓는 것은 어른들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벌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모른 체 바쁘게 살아갑니다. 리뷰 제목으로 인용한 격언은 원래 유명한 말이지만 전직 대통령이 쓰던 말로도 우리에겐 익숙한 문장이 되었습니다. 스페인 내전을 겪은 1940년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초반의 시대 배경을 나타내는 자막 하나만 나올 뿐입니다. 전쟁으로 서로 못 죽여 안달 난 상태에서 순수한 자매들은 이것이 그저 영화이거나 혹은 판타지적인 존재로만 여겨왔는지도 모르죠. 프랑켄슈타인은 강물에 떨어진 꽃을 어찌할 바 몰랐던 것이지 소녀를 위험에 빠지게 할 생각은 없었을 테니까요. 따라서 탈출한 병사는 그저 평범한 수백, 수천 마리의 꿀벌이거나 전쟁이 싫어 도망친 평범한 인간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죠. 저의(의도)가 없는 프랑켄슈타인 일 수도 있고요. 이동진 씨가 왜 이 오래된 영화에 찬사를 보낸 이유가 이해가 되는 대목입니다. 아나 역을 맡은 아나 토렌트는 이후에도 지금까지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빅토르 에리세도 그렇고 두 사람 모두 여전히 자신들의 열정을 이어나간다는 점은 반갑고 고맙다는 느낌이 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