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겉모양만 바뀌었지 그대로인 세상

얼핏 보면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캐스트 어웨이]의 아류작처럼 보이지만, 생존 그 너머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따듯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영화입니다. 세상과의 단절을 택한, 곧 자신만의 무인도에 표류를 결심한 두 김씨를 통해 삶의 희망에 대한 메시지를 조심스럽게 그리고 참 예쁘게 다루는 작품입니다. 한강 한복판의 작은 무인도 밤섬에서 펼쳐지는 남자 김씨(성근)의 생존기라는 기발함을 앞세운 코미디가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한강의 자원으로 연명하는 꽤나 리얼한(비위생적인) 삶의 방식이 충격적이지요. 마치 원시인으로 돌아간 듯 수렵과 채집으로 시작해 경작까지 도달하는 인류의 진화과정을 보는듯한 느낌도 재밌습니다. 삶의 막다른 곳에 다다른 김씨가 사회의 속박에서 벗어남으로 얻어낸 완벽한 심심함, 그리고 새롭게 찾아낸 짜장면이란 희망으로 이어지는 고난과 역경과 성취의 과정, 굉장한 흡인력의 이야기입니다. 무(無)에서 시작해 이뤄낸 짜파게티 장면은 굉장한 명장면이지요. 짜파게티라는 흔한 짜장라면 한 봉지로 희망의 상징을 만든 아이디어, 마치 신들린 듯한 기술은 정말 훌륭합니다. 남자 김씨라는 배우 정재영의 캐릭터는 다른 비슷한 장르의 작품들에서 보여주었던 인물들의 성격과 비슷한 면이 있지만, 이 작품에서만큼은 정말 특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온몸을 내던지는 고생도 고생이고, 무심한 듯하면서도 아낌없이 드러내는 감정의 폭발이 꽤나 인상적입니다. 지지리 궁상 코미디에 그치지 않은 인물의 서사와 연기, 그리고 연출이었습니다. 은둔형 외톨이로 자신의 방에서 자신만의 루틴을 갖고 사는 여자 김씨(정연)의 디테일도 좋습니다. 마음의 상처로 세상과의 단절을 택한 사람, 그리고 그런 사람이 바깥세상으로 발을 내딛는 것이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지를 잘 보여줍니다. 작은 희망을 향한 힘겨운 여정, 그것을 적절한 코미디를 섞어 자극적이지 않고 재치 있게 표현하는 연출 또한 감각적입니다. 전화도 우편도 아닌 원시적인 편지의 형태로 소통을 이어가는 두 주인공의 느슨한 관계도 독특하고 말이죠. 하나 아쉬운 게 있다면 여자 김씨의 바탕이 되는 서사가 남자 김씨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다만 개봉 당시에 비해 공황, 불안장애 같은 현대인의 질병에 관한 정보가 많이 알려지고 인식이 달라졌기 때문에, 여자 김씨에 대한 공감을 예전보다 더 깊게 할 수 있어 서사의 부족함이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두 주인공의 미래를 특정하긴 어렵지만 어쨌든 좋은 일이 있을 거라 믿게 되는 희망적인 결말도 좋고요. 15년이 더 지난 작품이지만 패배자를 양산하는 사회 시스템은 여전하고, 피처폰은 스마트폰으로 미니홈피는 SNS로 모양만 바뀌었을 뿐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기 때문에 지금도 충분히 공감 가능한 내용입니다. 다시 볼수록 새삼 놀라운 완성도로 흥행 실패한 작품이란 사실이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홍보가 일 잘못했죠 이건 국내판 포스터는 정말 처참합니다 저평가된 대표적인 사례의 작품으로 현재에도 통하는 좋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 좋은 영화입니다. 무엇보다 일요일에 짜파게티 먹기 전에 보면 이만한 게 없으므로 미리미리 짜파게티를 준비하고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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