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라파엘
2025.03.07
고전 영화에 바치는 찬사이자 시간의 추억을 품은 유려한 몽타주
🌆 퀜틴 타란티노, 정체성과 감수성의 절정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퀜틴 타란티노 감독의 아홉 번째 장편이자, 그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감성적이며 동시에 가장 통찰력 있는 작품이다. 타란티노는 전작들에서 익숙했던 폭력과 복수의 미학을 잠시 내려두고, 할리우드라는 세계와 그 속에서 사라져가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애정과 존경을 시적으로 그려낸다. 이 영화는 1969년, 변화의 기로에 놓인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한다. 한때 주목받던 TV 서부극 스타 ‘릭 달튼’과 그의 대역배우이자 친구 ‘클리프 부스’, 그리고 그들의 곁에 살고 있는 떠오르는 신예 배우 ‘샤론 테이트’의 일상을 따라가며, 개인과 시대, 픽션과 현실, 영화와 삶이 뒤섞이는 복합적 구조를 시도한다. 그렇다고 영화는 복잡한 구조나 의도를 앞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타란티노는 하루하루의 풍경,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드라이브 중 만나는 풍경, 오래된 영화 세트장을 지나며 들려오는 배우들의 목소리 등을 통해 ‘영화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정서적으로 포착한다. 그것은 말 그대로 ‘원스 어폰 어 타임...’이라는 제목처럼, 동화적인 회고이며, 상실된 세계에 대한 로맨틱한 복원이다. 🎭 연기의 축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브래드 피트 디카프리오는 ‘릭 달튼’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배우라는 존재의 불안, 자의식, 허영, 열정, 그리고 진심을 모두 담아내는 복합적인 연기를 선보인다. 영화 속에서 그는 대중에게 잊혀져 가는 공포에 휩싸이고, 알코올에 의존하며 스스로를 자책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여전히 스스로의 연기와 직업을 사랑한다. 특히 촬영장에서 어린 배우와 연기합을 맞추는 장면, 그리고 감정을 폭발시키는 촬영 장면에서 디카프리오는 한 인물이 얼마나 오랜 시간 자기 열정을 놓지 않기 위해 애쓰는지를 진정성 있게 표현한다. 그의 불안은 현실적이고, 동시에 아름답다.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클리프 부스’는 전혀 다른 에너지를 지닌다. 그는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여유롭고 무심한 듯하지만 내면에 단단한 신념을 품고 있다. 그의 존재는 릭 달튼의 내면을 비춰주는 거울이자, 전성기를 잃어가는 할리우드 시스템에서 비켜선 자들의 상징이기도 하다. 피트는 이 인물을 통해 카리스마, 유머, 행동력, 그리고 묵직한 여운을 자연스럽게 조율하며,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는 완벽한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 샤론 테이트를 통한 영화에 대한 순수한 찬가 마고 로비가 연기한 ‘샤론 테이트’는 실존 인물로서도 중요하지만, 타란티노의 시선 속에서는 영화라는 예술의 순수함과 희망의 상징으로 그려진다. 그녀는 대사를 길게 하지 않지만, 스크린 속 자신을 보며 환히 웃고, 동네를 걸으며 삶을 즐기는 모습에서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보편적인 정서를 시각적으로 구현해낸다. 이는 단순한 미화가 아니다. 그녀가 상징하는 것은, 찰스 맨슨 일가의 비극 이전, 무언가가 아직 깨지기 전의 시대의 낭만과 순수다. 타란티노는 그녀를 통해 역사적으로 비극으로 끝난 이야기를 다시 쓰며, 영화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위안—상상력을 통한 구원—을 선사한다. 📺 시대 재현과 세트, 촬영기법의 완벽한 조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1960년대 말의 문화, 거리, 음향, 텔레비전 프로그램, 광고, 영화 세트장까지를 극도로 세밀하게 복원한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았던 관객마저도 그 시공간 안에 자연스럽게 들어가도록 만드는 몰입도는 타란티노의 고전 영화에 대한 애정, 미술·촬영팀의 공들인 작업 덕분이다. 특히 실제 영화 세트를 활용해 배우들이 연기하는 장면과, 고전 서부극이나 스파이 영화의 장르적 톤을 그대로 살려내는 장면들에서는 영화 속에 또 다른 영화가 존재하는 듯한 다층적 매력이 펼쳐진다. 과거의 영화 문법을 차용하면서도, 현대적 리듬을 결합해 과거와 현재의 시간성이 겹쳐지는 체험을 만들어낸다. 🎵 음악이 이끄는 감성의 구조 타란티노 영화답게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사운드트랙이 단순한 배경음이 아니라 이야기의 정서적 핵심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주인공이다. 60년대 라디오 방송과 광고, 시대 유행가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며, 관객은 단순히 ‘보고 듣는’ 것이 아닌, 그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된다. 특히 마지막 시퀀스에서 흐르는 The Rolling Stones의 “Out of Time”은 현실에서는 무참히 찢겨진 시간에 대한 안타까움과, 영화가 복원한 새로운 서사의 가능성을 동시에 암시한다. 음악은 그저 장면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서사적 복선과 정서적 마무리를 동시에 수행하는 감각적 장치로 활용된다. 📝 영화가 현실을 다시 쓰는 방식의 깊은 울림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그 자체로 타란티노의 판타지이자, 영화가 갖는 위로의 힘에 대한 진심 어린 헌사다. 실제로는 끔찍하게 살해당한 샤론 테이트와 그녀의 주변 인물들. 영화는 그들을 구하고, 그날 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세상을 보여준다. 그 결정은 현실 왜곡이 아니라, 영화가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영화적인 구원이며, 관객에게 잔잔하면서도 깊은 감정적 울림을 남긴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타란티노가 가진 장르에 대한 지식, 연출 기술, 시대에 대한 애정, 그리고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근원적 믿음이 총체적으로 응축된 걸작이다. 이 영화는 어떤 직접적인 메시지를 외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살면서 한 번쯤 느껴봤을 어떤 시대에 대한 향수,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애틋함, 그리고 누군가의 시간을 지켜주고 싶다는 감정을 조용히 되살려낸다. 마치 타이틀처럼, “옛날 옛적에, 할리우드에서…” 이 영화는 그렇게, 한 시대와 사람들을, 영원히 잊히지 않을 한 편의 동화로 남겨놓는다.
